책을 쓰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1)
나는 24살이 되어서야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내내 이과 공부를 했기에 화학과를 지망하여 들어갔지만 학기가 지날수록 ‘내가 이걸 왜 배우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3학년이 시작되기 전,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전과를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내 적성은 문과에 더 가까웠다.
학창시절에 진로적성검사를 하면 늘 문학적 소질이 다분하다는 결론과 소설가, 국어 교사와 같은 직업이 차례로 나열되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이런 적성을 가지게 된 데에는 하루에 서로 다른 종류의 신문을 3개나 구독하시고 역사책을 즐겨 읽으시던 아버님의 영향이 크다.
국문학과로 옮기고 싶었지만 경쟁률이 치열할 것 같다는 판단에, 할 수 없이 행정학과로 전과를 했다. 공무원 준비를 할 요량이었다. 3~4학년 내내, 졸업 후 1년 동안 꼬박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 ‘이것이 진짜 나의 길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부모님의 뜻이었고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평생 동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숨겨진 나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일, 남들보다 뛰어나게 잘하는 일, 적은 노력으로도 티가 팍팍 나는 일, 주변에서도 잘한다고 인정해주는 일, 그 일을 하면 내가 행복하고 그것을 하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나만의 천직’을 찾고 싶었다.
그때부터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평소 글과 책을 가까이하시던 아버님 덕분에 나 역시 어릴 때부터 글과 책에 익숙했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일기 쓰기, 독후감 쓰기, 글짓기, 서예 등 글과 관련된 각종 대회에 참여만 해도 최소 장려상은 받게 되었다.
필기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똑같은 내용을 이렇게 편집하고 저렇게 편집하며 가장 효율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방법을 나름대로 연구하는 걸 즐겼다. 덕분에 시험기간이면 내 노트는 항상 친구들 사이에서 족보처럼 떠돌아다니느라 정작 나는 내 노트를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아, 나는 글을 쓰거나 편집하는 걸
어릴 때부터 즐겼고, 잘해 왔구나!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에디터’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지원서를 준비해 신입으로 당장 일할 수 있는 기업들에 도전했고 한 신문사에 입사했다.
신문사에서 내가 맡은 일은 매월 100쪽 정도 되는 월간지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때마침(?) 선임 에디터가 갑작스럽게 퇴사하는 바람에 나는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채 매일 퇴근 후 혼자서 과월호 월간지들을 정독하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익혔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원고를 받아서 교정·교열하고, 주제를 정해서 알맞은 인물을 취재하여 글로 풀어내는 작업이었다. 이 일을 하며 나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성취감을 느꼈다. 상사로부터 인정도 받았고, 일 잘한다는 소문이 퍼져 회장님께 따로 불려가 격려도 받았다.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그때부터 나는 에디터로 살았다.
200권이 넘는 원고를 만졌고 교정·교열, 윤문, 리라이팅, 대필 등 다양한 작업으로 내 안의 한계를 깨나가며 즐겁게 이 업을 계속하고 있다. 더불어 지금은 출판사 대표로서 하루에도 여러 권의 소중한 원고들을 검토하며 글을 마주하고 있는데 그러한 매 순간이 참 행복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