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츠타야에서 찾다

'세상에이게모임' Nov, 2017 :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자본론>

by Nina




세상에이게모임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한 영감공유월례회입니다. 가을(Oct-Nov) 시즌 테마인 '독서모임' 진행을 준비하며, <지적자본론>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CCC(Culture Convenience Club)의 혁신적인 서점, TSUTAYA.
츠타야는 일본 전역에 1,400여 개의 매장을 둔 일본 최대 서점 체인이다.
츠타야를 이처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은 무엇인가? CCC는 츠타야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 그리고, 츠타야의 사례는 '세상에이게모임'의 구성원들처럼 사회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Changemakers, 이하 체인지메이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가?
CCC의 대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았다.



출처 : 매일경제



최근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일본의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내는 풍경과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죽은 입맛도 돋우는 맛집들은 일탈과 먹방을 꿈꾸는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게 일본 여행이 흔해진 상황에서 혹자는 '요즘 일본 안 가본 사람이 어딨냐?'고 하는데, 그게 바로 나다. 나는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갈 생각 조차 없었다. 사실 내게 일본은 그리 큰 감흥을 주지는 못하는 곳이었다. 과연 내가 돈을 들여 갈 만한 곳일까를 고민했을 때, 대답은 No였다.


그러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을 읽고 문득 일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츠타야에 가야겠어'라고 생각했다는 표현이 더 잘 맞겠다. 나처럼 해외 여행이라곤 동남아로, 그것도 라오스만 두 번 가본 게 전부인 고지식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나는 엄청난 라오스 팬이다. 심지어 내년에도 또 라오스에 가려고 했다.) 이런 내게 일본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 것은 츠타야가 가진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라는 콘셉트였다. <지적자본론>에서 언급되는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라는 콘셉트로 서점의 혁신화에 성공한 츠타야와 CCC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지적자본

책 제목이 <지적자본론>인 만큼, 지적자본이라는 키워드를 빼 놓을 수 없다. 마스다는 어느 기업의 생존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내에 지적자본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유물사관에 의하면, 사회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이루어진 '하부구조'와 이를 토대로 구축된 이데올로기 등의 '상부구조'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에 앞서 존재하기 때문에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상부구조는 변화가 둔하다. 이러한 구조의 특성은 각 상-하부구조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마스다의 예시를 들자면) 주가는 일분일초를 다투어 오르내리지만, 정치 체제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하부구조 내에서 역시 같은 이치로, 공장의 생산 효율성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의 작업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마스다는 이렇게 하부구조에 비해 더디게 발전하는 상부구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기획 회사의 목표이며, 그 원동력에 '지적자본'이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클라우드'를 형성한 집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스다에 의하면, 기존 시대에서 성공, 발전, 지속가능성 등의 척도를 인프라, 금전적 이익 등으로 측정했었다면, 이제는 지적자본의 활용을 통한 변혁으로 가늠하게 되는 시대다. 또한, 이러한 지적자본은 아래에서 설명할 '디자인'이라는 방법을 통해 혁신한다.





2. 디자인


기업은 모두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기업은 앞으로의 비즈니스에서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마스다는 모두가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다소 절박한 말로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그는 모든 상품은 모두 기능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가지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한다. 만약 그릇이라면 넙적한 모양에 물결 무늬인 디자인과 음식을 담아 먹는다는 기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디자인은 부가가치'라고 치부한다.

마스다에 의하면 이들처럼 '일단 기능이 좋은 상품이 최고지! 디자인은 그 다음이고.'라는 주장하는 것은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구매 플랫폼이 존재하는 '서드 스테이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이 부족했던 '퍼스트 스테이지'와 상품이 넘쳐나 효과적인 플랫폼이 필요했던 '세컨드 스테이지'는 이미 지났다. 고객들은 이미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마음에 드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인이란 이제 기업이 사활을 걸고 배양해야 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디자인은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디자인이 '제안'과 같다고 주장하며, 수 많은 플랫폼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겪는 고객들은 누군가 상품을 제안해주길 원한다고 말한다. 디자인이란 머릿 속의 생각을 가시화하는 것이기에 결국 고객에게 상품을 제안하는 것과 같다. 단, 정말 우수한 디자인이라면 단순히 상품만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상품을 계기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CCC에도 적용되어, '고객가치'와 '라이프스타일 제안'이라는 두 가지 중심철학으로 자리잡혔다. 고객의 입장에 서서 상품을 디자인하고, 그들에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 이것이 CCC, 그리고 츠타야만의 색깔이다.





3. 휴먼스케일

휴먼스케일(Human Scale)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위치나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하는 건축용어로,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설계한 '클라인 다이섬 아키텍처'가 설계 당시 고려했던 사항이라고 한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은 고객들로부터 '편안하다'는 평가를 자주 듣곤 하는데, 그 이유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적당한 공간, 빛과 그늘의 균형,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아낸 조화로운 풍경이 있다. '클라인 다이섬 아키텍처'와 마스다는 이것들을 휴먼스케일이라고 표현한다.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균형과 조화로움, 즉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은 전체 건물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하는데, '클라인 다이섬 아키텍처'의 클라인은 그 이유로 '사람은 너무 넓은 공간에 방치되면 불안해진다'는 점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이루고 있는 3개의 건물은 의도적으로 각각 가장자리가 미묘하게 어긋나도록 설계되어, 고객이 항상 건물의 일부분 밖에 볼 수 없도록 했다.

마스다는 이러한 휴먼스케일의 개념을 조직 내에도 확대 적용하여, 추후에는 '사람이 조직 안에 매몰되는 일 없이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케일'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1,320제곱미터의 널찍한 공간에 서적과 잡지를 언제나 열람할 수 있으며 식사도 제공하는 카페, 자유로운 라운지, 풍부한 자연광 등을 갖춘 공간이 탄생했다.













마스다의 메시지, 그리고 체인지메이커


"사회적 기업가는 단지 물고기를 주거나 잡는 법을 가르쳐는 주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물고기 잡는 산업에 혁명을 일으킬 때까지 쉬지 않습니다" -빌 드레이튼




<지적자본론>에서 소개된 CCC의 철학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다양한 측면에서 풍부한 인사이트를 남겼을 것이다. 또한 나는 수많은 체인지메이커들이 이미 알게 모르게 '지적자본 기반의 디자인'을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스다가 <지적자본론>에서 제시한 여러 개념은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지만, 나는 이러한 개념들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충분히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체인지메이커들의 사례에 비추어보며 실감하게 되었다.

(예시로 참고할만한 청소년 체인지메이커들의 사례를 아쇼카한국 서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다.)



본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우연히 발생한 일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



체인지메이커들에게 있어서 '우연함'이란 매우 친숙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우연한 경험을 통해 사회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그것이 실천으로까지 옮겨지는 케이스를 많이 봤다. 나 역시 우연한 계기로 크라테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우연히 놀라운 경험을 했을 때 그 일과 자기 자신 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존재함을 느끼고 삶을 변화시킬 힘을 얻는다.

하지만 반대로 그 '우연한 경험'이 과연 나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가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해 지속적인 행동의 원동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그 간극은 무엇이 결정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감과 용기가 그에 대한 답인 것 같다. '나도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인식, 그리고 '나도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음이 없다면 문제 해결에 대한 필요성을 자꾸만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혹은 정말 그 사회 문제가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스다도 책에서 언급했지만, 일단 무언가를 해 보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럴 '자유'가 있으므로.


<지적자본론> 속 마스다의 가치관 중 특이하다고 느꼈던 점은, 그가 '자유'를 정의내리는 방식이었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즉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성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 자유다. 마스다의 정의에 따르면 우리가 사회 문제를 정말 '문제'라고 인식할 때, 더불어 그 문제가 모두의 책임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해야 할 일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해야 할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몫은 우리의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부산물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0에는 아무리 무엇을 곱해도 0이다. 1을 만들어 내야 비로소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이 장차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에게 각자 자신만의 '1'을 만들어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면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듯싶다.



다만, 나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그러나 긍정적인)부산물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현실에 뒤처진 맹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좋은 가치를 가진 일은 좋은 부산물들을 끌어온다고 확신하며, 그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마스다가 츠타야를 창업한 뒤 디자인과 휴먼스케일에 대한 중요성의 실감이라는 부산물을 얻게 된 것처럼.


사회 문제 해결에 뛰어든 체인지메이커들은 자신만의 '1'을 만들기 위해 용기를 냈다는 것 자체로 훌륭하다. 그리고 1을 만들고 나면 그에 대한 부산물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그리고 그 부산물은 우리에게 또다른 부산물, 또다른 가르침과 감동을 줄 것을 믿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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