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청년, 1987의 질문을 이어가다

'세상에이게모임' Jan, 2018 : 장준환 감독, <1987>

by Nina

세상에이게모임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한 영감공유월례회입니다. 겨울(Dec-Jan) 시즌 테마인 '영화모임'을 진행하며, 장준환 감독의 <1987>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이번 세상에이게모임은 영화인문학 강좌 '배부른소크라테스'의 운영자이신 강종원 스토리텔러님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이 글에는 <1987>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7년 한국,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이한열의 죽음에 모두가 분노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는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갔고, 거리에는 독한 최루탄에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그런다고 뭐가 바뀌는데요?'라고 소리쳤다.
1월 세상에이게모임에서 오고 간 이야기는 그 때 그 시절만큼이나 뜨거웠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1987>은 무엇을 남겼을까? 글을 통해 그 현장을 그려내보고자 한다.









인간은 모두 공통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가며,
그것을 제대로 묘사하는 영화만이 이해될 수 있다.
- 구로사와 아키라


누구에게나 인생영화가 있다. 내 인생영화들의 공통점은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이다.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땐 가브리엘 마리노 감독의 <시크릿 월드>를 보고 회복할 힘을 얻었고,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를 보며 인생의 재미란 무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요즘같이 취준에 자존감이 바닥날 땐 <인턴>을 다시 틀어 말끔한 정장 차림에 너그럽게 웃는 로버드 드 니로를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내 인생영화들은 모두 내가 이해할 수 있고, 또 나를 이해해주는 영화들이었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마련이니까.


<1987>을 보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애처럼 분해서 울던 내 자신이다. 또 생각은 어찌나 많아지던지, 며칠간 <1987>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관련된 자료를 끼고 지냈다. 그런 내 모습이 놀라웠다. 나는 역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게 <1987>은 인간의 고민을 묘사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고민해야 할 것을 던져주는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행한 모임원 중 한 분이 '1987년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1987>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를 '우리'일 수 없게 했던 수많은 불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분노하며 촛불을 켰던 자리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고 믿고싶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담보로 뛰어들었다. 그 기저에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들과 분명 접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7년과 2018년, 31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아래 내용은 모임에서 실제로 주고 받은 대화 중 일부를 작성한 것이며, 가독성을 위해 추가/수정하였습니다.






Q. 영화 어떠셨나요?


- 존 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만 가슴이 더 찡했어요. 영화라기보다는 사실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1987>이 끝나지 않고 계속 되는 느낌이예요.

- 도 비슷한 생각이예요. 지금 상황과 그때가 계속 비교가 됐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더 합리적인가?', '지금은 더 나아졌나?', '그럼 왜 우리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 등등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1987년의 사건들이 지금으로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들이 계속 되어야 해요.



- 좋았는데, 다만 너무 남성 위주인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연희가 나오긴 하지만 가상의 인물이고, 현실을 외면하잖아요. 그 외에 여자라곤 슈퍼집 아줌마, 연희 엄마, 친구밖에 없고요... 당시에 분명히 여성운동가들도 있었을텐데 왜 그들은 영화에 나오지 않았을까요? 픽션이긴 하지만 너무 남성중심적으로 치우쳤다고 생각해요.

- 화를 보며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어요.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 것처럼, 자기 분수를 모르고 비교가 되지 않는 싸움을 하는 무모함, 또한 그럴 수 있는 강인한 용맹함을 뜻하는 말이예요.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던 사람들은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운 거잖아요. 어찌보면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해냈을까 싶어요. (사마귀가 굉장히 많았던 거 아닐까요...)

- 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동안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또 많은 사람들이 울었고요.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게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어요. 박종철의 화장한 유골을 그의 아버지와 형이 강가에 뿌려주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장면에서는 정말 내 아들, 내 동생이 죽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어요. 제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닌데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요?



- 한열의 운동화가 기억에 남아요. 운동화를 신으면 신을수록 밑창이 닳는 것처럼, 현실을 마주하다보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갈망과 염원도 닳는 것 같아요. 하지만 후반부에서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고 쓰러지면서도 운동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잖아요. 그건 닳을지언정 죽어가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염원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해요.






Q.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세상에 알린 건 소수의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어떻게 그런 일을 했을까요?


- 는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사실, 각 인물들이 단순히 정의를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에서는 최환 검사가 중간에 사표를 내고 변호사로 일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팩트는 (그대로 남아서) 지검장까지 했거든요. 권인숙 성고문 사건 때에 검찰이 진실을 은폐했다가 여론이 크게 반발했었기 때문에 박종철 사건 역시 그냥 눈감을 경우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단 걸 알았을 거예요.

- 의해요.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각자의 직업윤리를 지킨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을 때 오는 괴로움이 직업윤리에 따라 옳은 선택을 하면서 피해를 입는 것보다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 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성경에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와요. 예수의 제자들이 재판관 앞에서 증언할 때 하는 말이예요. 진실규명에 나섰던 사람들 역시 박종철의 죽음을 직접 보거나 들었고, 그 사실을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명백하다고 느꼈을 거예요.





- 화에서 감독이 인물과 인물, 과거와 현재의 연결성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한 인물만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고 쇼트트랙을 하듯 여러 인물이 서로 진실 규명에 협력하잖아요. 또, 연희가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았다는 신문 기사를 발견할 때, 매대에 초를 진열하고 있었는데요, 이 장면이 당시 민주화항쟁과 최근의 촛불시위를 연결하는 장치(?) 역할을 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감독은 <1987>을 통해 1987년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랬듯, 2018년의 우리도 우리 손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이렇게 해서 도대체 뭐가 바뀌는데요?"



- 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너 왜싸우냐'는 질문에 '이렇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이 장면이 답인 것 같아요. 앞으로 (연희의 대사처럼)'이런다고 뭐가 바뀌는데요?'라고 묻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거예요. 그 때마다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어요.

- 통 사람들은 세상이 바뀌길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상을 바꾸려면,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면서도 그 속에 사회혁신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실 세상에 완전히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무언가가 해결되면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기 마련이예요. 하지만 저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기다리지 못해요. 잘 하다가도 끝이 보이는 것 같지 않으면 의심하고 금방 포기해버리잖아요. '옳은 것'의 정의, '문제'의 정의는 계속해서 바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과정은 어떻게 가꿔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 쩌면 우리는 우리가 믿는대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동성애가 아주 큰 죄악이거나 무서운 질병이기 때문에 동성애를 없애는 게 옳다고 주장하잖아요. 다만 저는 옳은 것이나 믿는 것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건 '타인이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1987년에 시민들이 원했던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이었어요. 민주주의가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결국 어떤 것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또한 사람을 위한 일이예요. (그러니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Q. 나에게 '사회문제해결'이란...






바로 내 문제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는 것


내가 더 잘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나를 드러내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것




자신을 너머 같이에 가치를 따르는 것















질문을 던지는 영화, 질문이 있는 삶



"카메라는 불행한 일들과 그들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무기이다." - 빔 벤더스



영화를 통해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영화가 우리로 하여금 삶에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질문은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달리 볼 수 있게 하며, 달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1987>은 '현재의 민주주의,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가져왔고, 영웅에 의한 혁명에 물음표를 남겼다. 그리고 연희의 입을 통해 '도대체 이런다고 무엇이 바뀌냐'는 질문을 끊임 없이 관객들에게 전했다.


1987년, 작은 불씨에 불과하던 열망은 평범한 사람들의 '왜'라는 질문을 땔감으로 거대한 불꽃이 되었다. 그리고 2018년의 어느 겨울 저녁,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이 1987년의 질문을 이어간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변화는 누가 만들어가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이런다고 도대체 뭐가 바뀌는 걸까?"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1987년의 질문을 이어가길 바라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