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이게모임' July 2018 : 박은영,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한 영감공유월례회입니다. 프로젝트팀 크라테가 청년 체인지메이커들의 더 '자기다운' 문제해결에 영감이 되길 꿈꾸며 17년 5월부터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박은영 저자의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리랜서 에디터인 저자 박은영은 자신처럼 회사를 다니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을 하거나 직접 회사를 차려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저자는 잡지사 에디터로 살던 시절, 당연하듯 밤을 새고 매달 돌아오는 마감에 허덕이면서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 일을 통해 만족감을 얻고 있나?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듯, 저자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답을 얻기로 한다. 그래서 '삶의 기준이 명확해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또래들'을 만난다. 레저 선박이라는 새로운 놀이 문화를 개척한 보트 제작자, 100년의 기록을 위해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는 생물 과학 일러스트레이터, 고객 만족감이 높은 맞춤 웨딩 디렉터, 개성이 넘치는 현대적 생활 한복을 만드는 한복 디자이너, 지역 주민과 일감을 공유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가, 음악을 만들고 만화를 그리는 영화감독, 새로운 노동 형태를 재밌게 보여 주는 오브제 창작자,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산수책을 만드는 번역가, 누구에게나 개방된 LGBT 전문 서점을 오픈한 디자이너, 함께 잘 살기 위해 꾸준히 공동의 일감을 만들어 나가는 청년 운동가 등 저자는 15팀의 청춘들에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그들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덤덤히 담아낸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가는 길은 5분 남짓 걸리지만 더위 탓에 잠시라도 밖에 있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이런 무더위에도 함께 해주신다니, 세상에이게모임(이하 세이모)가 참 복이 많구나 싶다.
이번 모임은 참 오랜만이고 유달리 반갑다. 지난 몇 달간 최소 인원 수가 채워지지 않아 모임을 진행하지 못했었다. 이번엔 한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반가운 얼굴들도 함께한다. 또한 지난 몇 달간 '업'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었기에, 하고자 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번 주제 도서가 의미가 컸다. 모임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 줄지, 그리고 나는 어떤 영감들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면 이런 점들이 좋다. 나에게까지 그들의 지혜로움이 전해진다.
모임 주제 탓인지 전봇대에 붙은 구인 광고지가 유난히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열차에 몸을 싣고 휴대폰을 켜 괜시레 직무의 종류를 검색해본다. 이렇게나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왜 '내 일'은 못찾고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짐칸 위 광고란 속 '핸드폰만 보는 당신! 천생연분이 옆에 있는데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어요.'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 나는 지금 현실 속 인연들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나의 업도 머릿속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 속 등장한 크리에이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만에 만난 모임원들은 무더위에도 다들 얼굴이 좋아보였다. 먼저 도착한 분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군복무 때문에 그동안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던 한 친구는 복무 기간 중 남는 시간을 이용해 꿈을 야무지게 키운 것 같다. 이런 저런 고민들을 털어놓기에 잠자코 듣다가 '나는 네 편이야. 어차피 네가 마음가는 대로 할 걸 알거든!' 했다. 삶에 있어서 최종 선택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지와 응원이다. 오늘 밤 자기 전엔 스스로에게도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해주기로 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음 가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그들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쓸데없이 호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꼭 남들을 따라가야만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이겠는가. 세상은 남다른 사람들이 있어야 앞으로 굴러간다. 그들은 매일 앞으로 구르며 우리 앞에 어떤 가능성들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꿔라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T : 저도 살아가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많은 공감이 되었어요.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찾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전에 프로젝트를 하면서 영상도 찍곤 했었는데 '내가 왜 그런 걸 했지?'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어요. 결국엔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H : 저는 책을 읽지 못해서 보내주신 팟캐스트를 들었는데요, 이런 사람들(크리에이터들)도 고민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상을 너무 깊이 꿈꾸면 현실을 살기가 힘든 것 같아요. 저도 제 삶을 통해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느꼈던 것들이 터무니 없는 것들은 아니었구나'하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D : 저도 H님처럼 책 대신 팟캐스트를 들었지만, 앞에 두 분의 의견에 아주 공감해요. 저는 원래 계약직 패션 MD로 일을 오래 했는데, 그랬기 때문에 (직업적인 면에서)취약계층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잡으려고 기술을 배웠어요. 사실 저는 미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삶은 미술을 계속 하는 거지만, 이상이 돈벌이가 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최근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사고 경험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직업에 대한)현실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생기게 됐어요. 내가 해야될 것이 명확해지고 나니 그 다음은 쉽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동화작가가 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만약 내가 온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안 된다면 그저 받아들이면 돼요. 그 안에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을 모색하면 되니까요.
-사회적기업가 신윤예
B :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매일 마감에 허덕이고 야근에 치이는 삶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책 제목이 저자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가지고 있는 걸 버리고 원하는 삶을 선택해도 괜찮다고요.
M : 책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이 '접을까, 말까?'더라고요. 책 제목이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서 성공사례만 넣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의외였어요. 또 제가 최근에 <프랙티컬 지니어스>라는 책을 읽었는데, 모임 주제 도서랑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서 소개하고 싶어요. 이 책의 저자는 천재성을 개발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기업 'Genuine Insights Inc.'의 창업자예요. 그는 실질적인 능력을 의미하는 실질자산과 어떤 일에 대한 열정 같은 본질자산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천재성이 발휘된다고 주장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책 속 크리에이터들과는 다르게) 우리가 너무 한가지 일로 자신의 분야를 제한하고 있다는 거예요.
T : 카네기 인간관계론이 생각나네요.
(M과 T는 정다운 담소를 몇마디 더 나누었고, 책도 공유하는 훈훈한 사이로 발전했다.)
H : 저도 D님처럼 고등학생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어요. 삶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 삶에 대한 조급함이 생겼어요. 인정욕구가 강해졌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하는 게 있는데 얻지 못하면, 혹은 중간에 멈추면 내 가치가 없어지는 건가?'. 원하는 일을 항상 찾아다녔는데, 그 과정이 나를 괴롭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원하는 일을 찾는 걸 내려 놓게 됐어요.
D : 좋아하는 일은 자꾸 변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좋다, 싫다 구분짓는 게 싫어져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행복의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T : 저는 다른 관점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냐’고 묻고 싶어요. 제가 워낙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예전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쭉 늘어놓고 동시에 시작했어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모든 걸 다 잘 할 수는 없더라고요. 대신 새로운 목표를 세웠어요.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사는 거요.
B :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 싫어하는 일도 혼재되어 있다고 느껴요. 저는 김미경 강사가 언젠가 강연을 통해서 이야기 했던 '7:3 법칙'이 맞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3만큼 하려면 싫어하는 일을 7만큼 해야 한대요. 제가 좋아하는 일은 글을 쓰고 디자인을 하는 거지만, 그 과정 속에서 분명히 싫어하는 요소도 존재해요. 글이나 디자인 작업이 마무리 되고 나면 굉장히 뿌듯하지만, 머리를 쥐어 짜며 쓰는 과정은 피하고 싶죠.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이에요. 하지만 식물 세밀화를 그리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긴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감당하는 제 모습을 보며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생물과학일러스트레이터 이소영
D : 저는 현실적인 면을 보게 되네요. 먹고 살기 위해 그 일을 하다보니 잘 하게 된 것 아닐까요? 경제적인 독립을 더 빨리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책 속 크리에이터들 같은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봐요.
H : 저는 오히려 그들에게 원동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적었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 사회가 나의 노동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원동력을 방해하는 것 같아요. 예로 대기업의 마케터와 소기업의 마케터를 비교해보자면, 둘 다 같은 종류의 일을 하고 있지만 소기업의 마케터가 훨씬 적은 임금을 받으며 저평가를 받게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저의 노동력에 대한 평가가 고정되어 있는 게 저로 하여금 동기부여를 힘들게 만들더라고요.
M : 저는 원동력이 어느 순간 특정한 계기를 통해 얻어지거나 꾸준히 채워지는 거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에요. 대신 스스로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다거나 판을 까는 편인 거 같아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은 그냥 스스로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길렀다고 했고, <프랙티컬 지니어스>에서도 자신의 주변을 천재들로 채움으로써, 자신이 처한 현실을 천재성을 꾸준히 발휘할 수 밖에 없는 '천재들의 세상'으로 만들라고 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천성적으로 일을 벌리기 전에 남에게 마치 그 일을 이미 하고 있고 꼭 이뤄낼 것처럼 떠벌리곤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 덕분에 욕을 먹는 경우도 꽤 있지만 반대로 많은 걸 이뤄내기도 했거든요. 일을 하겠다고 하면 주변에 결과물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일을 하는 제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런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저에게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제가 안 하면 왜 안 하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생겨서 조금은 억지로라도 하게 되고요.
모임을 목적으로 갔지만, 개인 상담을 받는 기분이 들었던 건 왜였을까...? 내 고민이 자연스럽게 질문 포인트로 스며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모두들 얼마나 열심히 대답을 해주던지. 참으로 자상한 사람들이다. 다음 만남엔 조금 더 괜찮은 퍼실리테이터일 수 있기를.
'꼭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라고 묻던 T의 말이 마음에 맴돈다. 반드시 죽고 못 사는, 혹은 남들과는 다른 일을 하며 사는 것만이 가치 있는 삶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각자에게 맞는 삶의 방식도 제각각이다. 책을 읽으며 의외라고 생각했던 지점도 이와 맞물린다. 책 속에 등장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미친듯이 사랑하기에 그런 삶을 선택한 건 아니었고,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도 서로 달랐다. 몇몇은 가업인 현재의 일이 하기 싫어 도망치다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고, 몇몇은 '한번 해 볼까'라는 가벼운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내 일'을 찾는 것은 이토록 가늠하기 힘든 일이다.
책 속 크리에이터들은 남들이 닦아 놓은 길 대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그래서 참 대단하다. 하지만 세이모에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꼭 특별한 길을 가야만 대단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들처럼 꾸준히 더 나은 ‘나’를 고민하고, 성실하게 삶이라는 책을 써 나가는 사람들 역시 대단하다. 고민을 이어나가는 것이 포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고민을 계속해서 이어간다면 우리는 괜찮을 거다.
나와 세이모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누구든 원한다면 그리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변화가 더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하고, 약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저자가 프롤로그에 남긴 따뜻한 말을 띄우며 글을 줄인다.
모두 잔잔하나 끊이지 않는 변화를 꿈꾸는 밤이 되시기를.
크리에이터들을 만나고 이들의 일상을 살펴보며 얻은 답이 하나 있습니다.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건, 복이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건 네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건 상대방이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 묻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저는 몇 번의 회의감을 느끼며 찾은 방법 중 하나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를 오래도록 유지하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