잽을 던져라.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세상에이게모임' Aug 2018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by Nina




세상에이게모임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한 영감공유월례회입니다. 프로젝트팀 크라테청년 체인지메이커들의 더 '자기다운' 문제해결에 영감이 되길 꿈꾸며 17년 5월부터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문유석 저자의 <개인주의자 선언>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개인’이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어떤 모습인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 그러하기에 한국에서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현직 부장판사인 문유석이 진단한 한국사회의 국가주의적, 집단주의적 사회 문화를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가족주의 문화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개인들이 ‘내가 너무 별난 걸까’ 하는 생각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제풀에 꺾어버리며 살아가는 것은 거꾸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원인이 된다며 경고한다.
따라서 저자는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고 타협하고 연대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래야만 진영논리만이 확연한 정치, 과잉된 교육열과 경쟁 그리고 공고한 학벌사회, 서열화된 행복의 기준 같은 고질적인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구조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주의’와 동의어로 오해받는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얼마 전 한 스님의 인터뷰 글을 읽었다.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라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사유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또한 쉼을 강조하는 세상이지만 '깸'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라는 급하고 거센 물살을 타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보다는 세상이 최고라고 여기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정처 없이 떠돌다가 도착하는 곳은 '내'가 없는 곳이다. 모두가 최고라고 해서 내린 선택은 소속감은 줄 수 있어도 나 자체로 충만해지는 느낌을 줄 수는 없다. 그 선택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유명한 인디언의 문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열심히 달리다가도 갑자기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고 한다. 자신을 쫓아오고 있을 영혼을 기다리기 위함이란다. 저자도 <개인주의자 선언>을 통해 '과연 당신의 영혼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느 순간 사람들은 '살아남으려면 숨죽여야 한다'는 공식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숨죽임'은 응당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당연히 생각했던 '숨죽임'에 대해 반문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이니 바꾸어야 한다고 직언을 던진다. 그리고 이를 깨고 나올 솔루션은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말한다. 단호하게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는 그의 자신감은 어떤 근거를 두고 있는가? 또한 사회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개인주의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궂은 날씨를 뚫고 만난 '세상에이게모임'의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책에 대한 소회


N : 책 중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 부분에서 나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내가 나온 대학을 내가 원해서 갔지만, 당시에 인서울에 실패한 학생들이 차선책으로 우리 학교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보니 재수, 반수, 편입을 노리는 친구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신입생이라면 로망 중에 하나가 과잠(학과 점퍼)이다. 처음 받아 보는 과잠이기도 하고, 편하기도 해서 잘 입고 다녔는데 몇몇 친구들은 쪽팔리다며 입기 싫어했다. 저자는 '과잠이 전리품'이라고 말하는데, 친구들은 그런 맥락에서 과잠을 입기 싫어했던 것 같다. 자기 전리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과잠을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잘못된 권력구조에 합류하도록 교육 받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좀 슬퍼진다.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그걸 이용해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문화가 있다. 이런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타인에 대한 관용 부족으로 이어져서 약자 혐오와 위악적인 공격성을 낳는다.





S : 나는 '세상은 완고하고 인간은 제각기 어리석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겸손해질 수 있는 문장이었던 것 같다. 저자는 개인주의자임에도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더 나아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함이고 나머지는 방편이라고 말한다. 다소 차가운 어조지만 객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N : '개인주의'라는 것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굉장히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회복지학과에서 행정학과로 전과를 했는데, 사회복지학과를 다닐 때만 해도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람은 선해야 하고, 무조건 헌신적인 마음으로 임해야지' 라는 생각들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 나도 많은 압박감을 받았다. 근데 언젠가부터 '결국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것도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고, 나도 좋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어서 아니냐'는 얘기가 수면위로 올라오더라.


M : N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자가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라고 이야기한 부분이 떠오른다. 저자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합리적 개인주의'다. 나는 특히 이 부분에서 큰 영감을 받아 따로 글까지 썼다.




합리적 개인주의자인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를 풀어서 이야기 하면 '합리성을 전제로 한 개인주의자'다. 개인주의보다 합리성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성이 전제되고 나서도 고려되어야 하는 차이는 취향으로 존중받을 수 있지만, 합리성이 전제되지 않은 이기주의는 그럴 순 없지 않을까.


N : 맞는 말이다. 3부의 <문명과 폭력>부분에서 1960년대 68혁명과 플라워 무브먼트 등으로 인해 미국과 유럽에서 범죄가 급증했던 사례처럼, 개인주의가 아무리 좋아도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한 건 맞는 것 같다. 최근 크라테가 [월간사람:결]이라는 나다움 인터뷰 프로젝트를 새로 시작했는데, 첫번째 인터뷰이가 S다. 인터뷰 전에 사전질의응답이 있는데, '당신이 정의내리는 나다움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S가 ‘책임을 지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게 올바른 답이라고 생각한다.


M : 얼마 전 봉태규 부부가 강연한 영상을 봤는데 주제가 ‘책임을 지는 자유’였다. 봉태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자유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제약이라는게 생겼고 자기 자신에게도 제한을 두어야 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라는 게 그냥 마음가는대로 사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N : 젊은층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욜로(YOLO)도 요즘 비판을 받고 있지 않나. 한국이 마치 열병을 앓고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을 위한 사회로 넘어가기 위한 열병. 사람들의 의식이 점차 발전해가는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거다. 그 속에서 '아! 욜로라고 오늘만 살 것처럼 살면 안되는구나!’하는 생각도 하고 말이다.









-2부. 타인의 발견


M : 2부에서 굉장히 좋았던 구절이 있다. 저자가 인용한 황현산 선생의 글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따라서 서로 일깨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친밀한 세계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이 부분에서 서로가 서로의 현재가 충분히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인지 드라마 대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두 사람이 이별을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아프다면 그 관계는 아직 지속중'이라는 내용도 있지 않나. 세상이라는 게 결코 삼차원적인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삼차원의 세계에서는 느낌이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황현산 선생의 글처럼 느낌이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이상 삼차원적이지 않다.


S : M이 읊어준 부분을 들으며 역사공부를 해야되나 싶었다. 과거가 현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현재와 과거에서 비슷한 점을 도출해낼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니까.


N : 그렇다면 그 감수성을 두껍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고, 반대로 감수성의 두께가 얇아지는 이유는 뭘까? 요즘 감정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고민이다. 사는게 별 느낌이 없다고 해야하나.


S : 공감이 안 됐던 건지 아니면 공감할 여력이 없었던 건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M : 내가 속한 교육혁신단체 <새벽>에서 진행하고 있는 '고민형프로젝트'는 타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주요한 작업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정해둔 규칙 중 하나는 '본인이 힘들면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본인이 피곤하거나 상태가 안 좋으면 이야기를 하는 상대는 물론이고 본인도 마음이 다칠 수 있다.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가 아닐까?


S : 주변에 류마티스를 앓고 있는 친구가 있다. 나는 류마티스에 걸려보지 않았으니 그 친구의 아픔을 알 수가 없다. 그런 것처럼 직접 겪어보지 않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일이어서 감수성이 옅어지고, 공감이 잘 안 되는 것일 수 있다.




그 뒤로 공감뉴런과 시냅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S : 나는 '직업은 직업일 뿐 자신의 전부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최근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욕구가 강해지다보니 취미활동을 하는거에 대해 죄책감 같은 게 느껴지더라. 이 부분이 위안이 되었다.


N : 화제를 바꿔, 2부의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부분에 대해 더 이야기 해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 변화가 일어났어도 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가 없는 것들이 많아서 더 힘든 것 같다. 크라테도 그렇지만 새벽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M : 어제 '디자인씽킹 결과공유회'라는 행사를 다녀왔다. 프레젠테이션 중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디자인씽킹 과정 중 솔루션 도출에 관한 부분이었다. 본질을 정확히 파고든 솔루션 뿐만 아니라, 본질에 가깝거나 본질에 접근이 가능한 솔루션 역시 시도해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보통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었다. 왜 그동안 본질을 정확히 뚫고 가는 솔루션이 아니면 시도해보려는 생각도 없었을까 싶다.


N : 나는 그런 면에서는 비교적 유연한 것 같다. 크라테가 해왔고,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고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럴 만한 깜냥이 된다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하지만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상 일은 모르는 것 같다. 저자가 과거에 자신의 공으로 성공한 줄 오해했던 조정 사례처럼, 내가 이것 저것 판가름하고 핵심과 본질을 궁리한다 한들 결과는 어찌 될지 모르는 것 아닐까. 사람마다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다 다를테니 말이다.









S의 멋진 바지



-3부.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M :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부분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려면 작은 책임부터 부담없이 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며, 생각보다 '책임지는 것'을 연습해볼 수 있는 매개체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임을 졌음에도 실패했다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과감하게 실패에 대한 의무를 면책해야 하지 않냐는 부분도 좋았다. 책임에 대한 실패를 충분히 면책할 수 있는 구조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N : 얼마 전에 팟캐스트를 들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니어들에게 어떻게 일을 가르쳐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그 중 한 분이 고민하시던 것은 '어떻게 하면 혼내지 않고 일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였다. 주니어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언가를 혼나지 않으며 배운 적이 없었고, 그 과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를 반복하기는 싫으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문제는 혼나기만 하며 일을 배워왔기 때문에 '혼내지 않고 가르쳐주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가 질책하기만 하는 것에 익숙해 포용해주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임을 마무리하며


M : 본인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시는지? 이 책을 읽는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자기는 그럼에도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더라.


N : 나는 아마 공동체주의자인 척하는 개인주의자인 것 같다. 아직 개인주의자가 되기에는 용기가 없다고 해야 하나.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될 만큼 성숙하지도 못한 것 같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점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엄마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나에게 ‘넌 사회생활 하긴 글렀다’고 말한다. 그래서 엄마한테 '어떻게 하면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무조건 ‘네네’ 해야 된다는 거다. 너무 놀랐다. 그건 그냥 호구인데...? 아직까지 기성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더라. 이런 일들이 있으니 아직은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S : 나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합리적 개인주의나 공동체주의나 결국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어쨌든 개인의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면 결국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M : 어찌보면 공동체와 개인 중에서 어떤 곳에 방점을 찍느냐가 다를 뿐인 것 같기도 하다.


S : 나는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개인주의자다. 사회적 시선이나 기준같은 것은 스스로 계속해서 헤쳐나가야 하는 요소인 같다. 최근에 개그맨 양세형이 개그를 잘하게 된 이유가 계속 잽(Jab)을 던져 봤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영상을 봤다. 계속 잽을 던지면서 상대가 언제까지 버티나 보는 거다. 그러다가 맞기도 했지만, 계속 맞다 보니 '여기서 더 하면 맞겠구나' 하는 감이 생겼다더라. 그런 것처럼 우리도 잽을 계속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미움받을 용기, 혹은 맞아볼 용기를 가지고.












주변에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 저기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그리고 비슷한 처지인 나에게도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꼭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개인주의자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그 마음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변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개인주의자는 되고 공동체주의자는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더불어 개인주의자든 공동체주의자든, 개인의 가치관을 존중해줄 수 있는 너그럽고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아야겠다. 저자의 말대로,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