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이게모임' Sep 2018 : 헨리 데이빗 소로, <월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한 영감공유월례회입니다. 프로젝트팀 크라테가 청년 체인지메이커들의 더 '자기다운' 문제해결에 영감이 되길 꿈꾸며 17년 5월부터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출간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사랑받는 책으로, 저자가 1845년부터 2년간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경험을 기록하였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월든 호수 및 주위 숲의 모습, 또 그 속에 사는 온갖 동식물들이 생생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더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소박하고 검소한 삶만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저자의 사상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냈다.
모험기이자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서, 저자의 정신적 자서전으로써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면서 꾸짖고 충고하고, 격려하며 무한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변수가 많은 날이었다. 원래 오기로 했던 사람들 중 절반 가량이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 나는 이런 면에서 만큼은 유독 낙천적인 편이다. 사람이 많으면 온기가 더해지니 좋고, 적으면 서로 눈을 마주칠 기회가 많으니 좋다. 세 명이 남았다. 이것도 깊고 진득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라면 기회다.
어쨌든 나를 포함해 세 명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새로 온 모임원께서 클레이 질문카드를 활용해 아이스브레이킹도 진행해주셨다. 능숙하고 안정적인 진행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함께한 시간이 길든 짧든 간에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이어지는 <월든>의 명문장에 대한 감탄과 저자의 가치관에 대한 의견이 오고갔다. (그에 대한 뒷담화도...) 모임을 하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대화가 의미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모임은 늘 즐겁지만 동시에 늘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이번 모임처럼 당일에 부득이하게 참여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당장 한 시간 뒤의 일도 알 수 없는데 세상 만사는 어떻겠는가. 인간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지만 동시에 수많은 불확실성을 감당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함에 떤다.
불안함을 덜기 위해 우리는 갖가지 대비를 한다. 그리고 그 대비라는 것은 보통 물질적인 것, 혹은 물질적인 것을 축적하기 유리한 위치를 만들어주는 행위로 나타나곤 한다. 내 집 마련, 멋지고 실용적인 차, 고급 의류와 음식. 이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고학력을 목표로 하는 교육과 정보 수집, 보험 가입, 적금과 펀드 등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은 매력적인 외모와 피지컬도 한 몫 한다.
행운과 불운을 오가는 급변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로선 자연과 함께하는 삶, 간소한 삶을 지향하는 저자의 주장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소로는 책 속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그의 단호하고 직설적인 말투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현재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당장 내일, 다음 달이 걱정인데 최소한의 것으로만 생활하라니, 그리고 그것이 주는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라니. 불안함과 동시에 '정말 소로처럼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느낀다. 어쩌면 독자들의 현재 삶의 방식에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저자의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의심과 희망, 황홀함과 절망이라는 극단의 감정을 품고 대화의 문을 열었다.
"하루는 1년의 축소판이다. 밤은 겨울이며, 아침과 저녁은 봄과 가을이며, 낮은 여름이다."
S : 이 구절이 내게 참 새로웠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하루는 1년을 살듯이, 분기별로 나누어 지내보고 기록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일상을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자연처럼 소박하고 건강하게 되도록 하자."
J : 자선사업과 관련된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자선사업을 하기 전에 먼저 나를 살피자는 의미다. 먼저 자연처럼 소박하고 건강하게 되는 것, 그러니까 나부터 행복해지는 게 모두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 같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사람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전해지기 때문에, 나부터 행복해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이 오히려 지속 가능하고, 또 상대가 원하는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전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쓴 핀란드의 인류학자는 연구를 위해 티베트인들의 후손이 사는 인도의 라다크로 가서 7년 동안 지낸다. 그들은 원시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보통 옛 문화라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화자는 이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보았다고 한다. 우리는 주 5일을 일하지만 그들은 1년에 4개월을 일하면 나머지는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에 놀거리가 필요해서 축제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의 형태 역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일처다부, 다처일부, 다처다부 등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다. 가사노동 분담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물물교환과 협력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사노동 역시 ‘노동’으로 인정한다.
<월든> 역시 엄청 오래된 책이라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오래된 미래>의 인류학자가 시대에 뒤처진 문화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본 것처럼 <월든>도 오히려 배울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백만의 사람이 육체적인 노동을 위해 깨어있다. 그러나 백만 명 중 단 한 명만이 지성의 발휘를 위해 깨어 있고, 1억 명 중 단 한 명만이 시적인 혹은 신성한 삶을 위해 깨어 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H : 나는 헤르만 헤세가 남긴 '모든 사람은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혼은 결코 아니다.(As a body everyone is single, as a soul never.)'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에겐 살아있다는 느낌이 중요해 늘 내 상태를 관찰하곤 한다. 나의 이런 가치관과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인상 깊은 구절로 이 부분을 꼽았다.
<월든>은 명작이지만 나로선 모든 내용에 동의하기는 힘들었다. 강한 어조가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저자를 실제로 만난다면 굉장히 고지식하고 고집 센 사람일 것 같다고 상상하게 되었다.
‘무지란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데 알고 있는 것을 늘 과시해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무지를 기억할 수 있을까.’
H : 저자가 <월든>을 쓸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해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이 편리해지고 사람들의 지식도 풍부해졌지만, 소로는 반대로 무지를 강조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과시하기를 즐기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음식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비용 대비 큰 과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더라. 부자라면 좋은 차, 좋은 집 등을 자랑하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겐 맛있는 음식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자랑하기 좋다는 것이다. 가진 것. 아는 것을 남에게 자랑해야만 만족스러워 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때론 이물감을 느낀다.
일례로, 대학생 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원래 궁금한 게 참 많은 사람이다. 어느 날은 수업시간에 굉장히 사소한 것이 궁금해 질문을 했는데, 다음 질문자가 ‘앞에 질문 참 쓸데없는 것 같네요.’라며 대놓고 망신을 주었다. 사소한 질문이라고 해서 이렇게 면박을 당해야 하다니.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알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는 이 경험이 단순히 강의실에서 일어난 해프닝이 아닌 사회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40여 명이 모인 강의실이지만 이것도 하나의 사회니까.
'남의 생활에 대하여 주워들은 이야기만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S : 연예인이나 정치인, 재미있는 가쉽거리 등 남 이야기만 하는 세상이다. 조금 더 자기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H : 요즘은 진솔한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무얼 성취했고,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서 아쉽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내가 그런 사람이어서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침묵과 함께 반성의 시간...)
‘우리는 너무나도 철저하게 현재의 생활을 신봉하고 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반경을 그릴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변화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기적은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다.’
J : 컴퍼스가 떠오르는 말이다. 거리만 설정해두면 여러가지 길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월든>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 크게 감명받았다. 당시에 나는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선택지만 가지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고 다른 길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것을 찾아보게 되었다. 고마운 구절이다.
'우리는 집 짓는 일의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에게 넘겨주고 말 것인가?'
J : 어느 인류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오세아니아의 사모아 섬에 사는 아이들은 사춘기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사모아인 청소년은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냥 나가서 스스로 집을 지어 산다. 부모와 갈등이 있을 때는 홀로 거주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또 집 짓는 일에 익숙한 거다. 이들의 문화를 통해 우리가 사회적으로 사춘기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생태 건축과 자급자족하는 방법을 배워 바로 생활 속에 적용한 친구들이 있다. 손제작으로 물건을 만들어 클래스도 연다. 우리가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그들은 정말 잘 지낸다. 그 친구들을 보며 집 짓는 일이 사실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인데 우리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 집짓는 일이 사실 즐거운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집 짓기가 아니어도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건 즐거운 일 같다. 최근 필통이 뜯어져서 그냥 버릴까 하다가 자수실로 꿰매보았는데 생각보다 정말 괜찮더라.
H : 소일거리가 생각보다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이 너무 복잡할 땐 일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설거지나 청소 같은 단순한 일. 일하고 돌아와 푹 자고 나면 다음 날 ‘내가 왜 그런 걸로 힘들어 했지?’란 생각이 든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느끼게 된 것 같다.
‘집안일은 즐거운 기분전환이 된다.’
H : J의 감상에 연결하여, 집안일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좋은 점은 내 노력 없이도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수건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 사니까 그걸 내가 해야 되더라. 혼자 살면서 집안일이 되게 즐거운 일이고, 또 내가 굉장히 깔끔한 성격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사실은 청소변태)
원래는 집안일을 되게 귀찮아했었다.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주중 오전에 일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서 청소를 늘 열심히 하시기에 이유를 여쭤봤더니 ‘나는 청소란 정말 신성한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더 늙으면 이민을 가서 청소를 할거야.’라고 대답하시더라. 그 뒤로 청소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책 속에 쓰인 ‘너를 매일 새롭게 하고 새롭게 하고 새롭게 하라’는 말을 목욕탕에 새겼다는 탕왕의 이야기처럼 청소도 어떤 것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일인 것 같다.
'학생들 자신과 그 외 대학의 혜택을 입고 자라는 사람들이 직접 기초 공사에 참여한다면 이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한다.’
S : 재미있는 부분이다. 학생들이 등록금의 일부분을 돌려 받고 기초공사에 참여할 수 있다면 연대의식이 생길 것 같다. 건축에 참여하면서 '아 여기가 내 공간이구나'하는 소속감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H : 그 전에 이런 것들이 가치있는 노동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 요즘 이런 제도가 생기면 차라리 등록금 다 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J :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등록금을 낼 여유가 없다면 기초공사에 참여하는 대신 등록금의 일부를 면제 받고, 그렇지 않다면 참여하지 않고 전액을 납부하는 방식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남이 내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그 사람이 내 생활방식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나는 또다른 생활양식을 찾아낼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될 수 있는 한 많은 제각기 다른 존재들이 존재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J : 내 가치관과 맞닿아서 좋은 부분이다. 요즘 창업 조언을 받고 있는데, 내가 쓰고 있는 책 '레프터스(주류가 아닌 사람들)'에 담긴 가치가 반대에 있는 주류의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충고를 받았다. 나도 충분히 이에 동의했고, 다만 나는 또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모든 사람이 레프터스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공존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은 내 마음과 잘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도끼로 악의 뿌리를 내려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악의 가지를 쳐내는 사람은 천 명이 있다고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돈을 주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방식을 통해 자신의 가난을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바로 그 불행을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은 노예 한 명을 판 대금으로 노예 아홉 명에게 일주일에 단 하루의 자유를 사주는 경건한 노예 농장주와도 같다.'
S : 이 부분에서 소로가 선악에 대한 탁월한 시선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결국 어떤 행위든 악이 뿌리를 내리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어쩌면 누군가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돈일 수 있는 거다.
H : 악의 뿌리를 뽑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악이 없어지면 또다른 악이 생겨날 수 있을 것 같다. 선악은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S : 글쎄. 나는 과연 선한 일만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좋은 의도로 하는 일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모든 일에는 부정적인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비율로 따져보았을 때 긍정적인 영향이 더 많은 일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시인의 작품은 인류에 의해 읽힌 적이 없다. 오직 위대한 시인만이 그 작품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치품처럼 우리를 달래고 우리의 보다 수준 높은 몸의 기능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읽기 위해 발끝으로 서서 우리의 모든 깨어 있고 정신이 맑은 시간을 바치는 것만이 높은 수준의 진정한 읽기다.’
H : 내가 높은 수준의 진정한 읽기를 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요즘은 마음으로 음미하는 글을 읽었다기보다는 논리적으로 글을 읽었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두분은 어떨때 진정한 읽기가 가능한지 묻고 싶다.
S : 몰랐던 걸 깨닫는 순간의 짜릿함, 그러니까 ‘아하’의 순간의 짜릿함 때문에 글을 읽는 것 같다. 그래서 분석적인 책도 좋아한다. 평상시에는 에세이를 읽을 때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것 같다. 최근에는 유튜버 ‘오마르’ 쓴 에세이를 읽었다.
J : 난 주로 소설을 읽을 때 그런 것 같다. 2016년 1월 쯤에 편입을 앞두고 고전 독서모임을 나가게 됐는데, 모임장님이 모임이 끝나고 우리가 냈던 회비로 각자에게 맞는 고전소설을 선물해주셨다. 그때 받은 책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이런 저런 일들로 정신이 없어서 그 책을 1년 후에나 읽게 되었는데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 책은 각 캐릭터가 행하는 여러 선택, 그리고 선택과 연관된 심리를 뛰어난 통찰력으로 담아낸 점이 매력 요소다.
등장인물 중 ‘사비나’는 나비같이 가볍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자신의 부인을 버리고 사비나와 함께 있겠다고 하자 사비나는 그를 떠나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그 뒤로 아무도 만나지 않다가 쓸쓸히 홀로 죽는다.
나는 '나비는 날아다니는 존재지만 어딘가에는 앉아야된다’는 사비나의 말이 인상깊었다. 나도 항상 이 조직, 저 조직을 떠돌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나비같은 삶을 살았는데, 그랬기 때문에 하나의 조직과 소수의 인연들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과거를 되돌아보게 해준 책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삶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기도 하니 추천하고 싶다.
‘사람의 가치는 피부에 있지 않기에 만져서 그 가치를 알려 해서는 안 된다.’
H : 중고등학생 시절에 내가 사람을 사귀던 방식과 지금의 방식이 정말 많이 다르다. 어린시절에는 부모님이 바쁘셔서 항상 외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때는 친구라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고 서로의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서 함께한 시간이 마음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의 고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바운더리를 지키면서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들,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깊게 사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을 찾고 있다.
<월든>에 담긴 소로의 사상에 대하여 분석적이고 의미있는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사실 우리의 마음을 가장 깊이있게 채워주었던 것은 숨어있는 문장들이었다. 숲과 호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으며 바쁜 일상 속에 경직된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소로가 <월든>을 통해 우리네 현실과는 다소 어긋난 메시지를 (그것도 단호한 어조로)던지는 고집불통의 사내라 하더라도, 이런 황홀한 문장을 토해내는 사람이라면 그윽한 눈을 하고 턱을 괸 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문장들을 소개하며 끝을 맺는다. 이 문장들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발끝으로 서서 읽는 순간'을 선사하길 바란다.
화이트호수와 월든호수는 가장 커다란 수정이며 빛의 호수들이다.
만약 이들이 영원히 응결되고 훔칠 수 있을 만큼 작은 것들이라면 아마 제왕들의 머리를 장식하는 보석으로 쓰기 위하여 노예들이 캐갔을 것이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호수는 안개의 잠옷을 벗고 여기저기 부드러운 잔물결이나 잔잔한 호수의 수면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으며, 안개는 무슨 밤의 비밀 회의를 막 끝낸 유령들처럼 살금 살금 숲의 모든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