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남자, 세상에 차임벨을 울리다

체인지메이커 청년들의 월례회 '세상에이게모임' : Jun, 2017

by Nina




삶이 설렌다는 것은, 내 마음이 새로운 만남의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을 울린다는 것.

길을 지나다 만난 꽃들을 손끝으로 쓸어보는 것처럼, 내 마음도 반가움에 한쪽 귀퉁이를 바르르 떠는 것이 아닐까. 인연이 닿은 사람들, 새롭게 품게 된 꿈, 늘 갖고 싶었던 물건,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생각들까지.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만남과 이별로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 내 마음을 가장 잡아끄는 것은 단연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이다.


'어른'을 향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상처받을 일이 많아졌고, 여러번 담금질 당한 뒤에는 만남과 이별에 놀라울 정도로 담담해진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왠지는 몰라도 난 이런 '담담함'을 통해 뿌듯함보다는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때묻지 않은 마음들이 묻혀가는 것 같아서다. 순수함이란 때론 파도처럼 요동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맹랑한 날것의 감정으로 대변되기도 하기에.


두 번째 모임은 나를 오랜만에 담담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 자리엔 옹기종기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 얌전한 원피스를 입고 입술을 붉게 칠한 20대의 내가 있었지만, 실컷 조잘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본 유리창엔 눈가가 투명한 10대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사실 내가 늘 같다고 생각해왔다.(욕이 아니라 비유다.) 개는 감정을 숨기는 게 능숙하지 않은 동물이다. 마음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 존재들이지만, 항상 꼬리가 먼저 선수를 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때문에 투견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꼬리가 잘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상대에게 감정을 들키면 안되기 때문이란다.


아무튼, 나 역시 내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한다. 아, 문맥상 핑크빛 장면을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애정에 더 가깝다. 누군가에게 쉽게 정을 붙이고, 한 번 정을 붙이고 나면 이것 저것 퍼준다. 그러다보니 가끔 상처를 주기도, 혹은 받기도 하고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이 개같은 성미는 마치 무한동력이라도 있는 듯 도무지 멈출 줄을 몰라 가끔 애를 먹는다.


나의 개같은 성미는 열정과 궁합이 잘 맞는다. 내가 열정을 느끼는 일을 하는 도중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들에겐 그렇게나 적극적이고 친절한 인간일 수 없다. 그래서 일할 때 나를 알게 된 사람과, 사적인 자리에서 나를 알게 된 사람은 나에 대한 첫인상이 지극히 다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종이인형처럼 흐물흐물하고(?) 멍청한 사람이 된다. 이건 통제가 안 되는 부분이라 그냥 포기하고 산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모임에서는 나의 개같은 성미가 나름대로 잘 발휘되었다. 사실 너무 잘 발휘되어 문제였다. 모든 모임원이 다같이 만나게 된 것이 처음인지라,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싶어 일부러 함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셨다. 친해지는 데는 먹고 마시는 것이 빠질 수 없기에 내 마음은 쉽게 따뜻해졌고, 또 그래서 쉽게 조잘댔다. 퍼실리테이터로서는 낙제점이었다.




그러나 침묵하기엔 모임원들 하나하나가 가진 이야기들은 밤하늘을 넘실대는 풍등처럼 간지럽게 빛났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 친구들, 나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과연 나는 이들만큼 누군가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는가? 결국 나 좋자는 일만 하고 있지는 않았나 싶어 갈비뼈 안쪽이 욱신거렸다.


이 소중한 친구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모임에도 참석했었던 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추구하는 교육혁신단체 프로젝트위기를 운영중이다. 두 번째 모임 날에는 같은 팀원인 도 함께 왔다. 역시 첫 모임에 이어 두번째 모임에도 참석한 은 울산 소재의 대학 내에서 인액터스 활동 중이다. 유기견 관련 프로젝트를 꾸리고 있어 관련된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 모임에 참석했다고 한다. 매번 먼 거리를 달려오는 열정이 대단한 친구다.


캐나다에서 지내며 한국어 교육에 보람을 느꼈다는 은, 더 많은 외국인들이 쉽고 재미있게 한국어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건장한 청년이다. 홀로 I Love Korean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은 통합적사고 컨텐츠 회사 파노라마인드 대표 중 한 명이다. '개인이 빛나면 조직이 죽는다'는 회사 중심가치 때문에 사진을 촬영하거나 소소한 인터뷰를 하는 것에도 조심스러워했다. 사람들이 '누가 파노라마인드를 하고 있느냐'보다는 파노라마인드의 가치관(통합적사고)을 먼저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한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주된 주제가 되었던 것은 '중심'이다. 선한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청년들에겐 부족한 물적자원에 허덕이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중심을 잃고 돈이나 유명세에 눈이 멀어 방황하는 일도 많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이 그쪽으로 흘러갔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순간 자폭해야한다고 백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다.




중심을 잃으면 자꾸 다른 것에 집중하게 돼요. 돈이든, 남들의 시선이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들어 진정한 가치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란다. 크든 작든, 소셜이든 논소셜이든 어느 조직에서나 진정성은 중요한 가치다. 긍정적인 의미로 이슈가 된 조직의 사례들은 '이제는 진정성의 시대'라는 진실을 향하고 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정의로운 일을 했을 때 '그렇게까지 해요?'가 아닌 '요즘 다 그렇게 하지 않나요?'라는 반응이 나오는 세상이 오길 기대한다. 그런 세상은 생각만해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갖게 한다. 그렇기에 세이모의 청년들 역시 남들이 무모하다고 여길지 모르는 꿈을 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눈빛으로 몸짓으로 뜨거운 마음의 빛깔을 뿜어내는 이들 사이에 둘러싸여있자니, 나는 오롯이 나일 수밖에 없었다. 개같은 내 성미에 못 이겨 세상 적극적이고 친절하고 싶었던 또다른 자아는 잠자코 침묵했다. 나름 낄끼빠빠를 할 줄 아는 녀석인 듯 하다. 진실됨엔 진실됨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내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 그렇다해도 이번 모임에서 적어도 나만큼은 중심을 잃었다는 것에 변명할 여지가 없다.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러 가서 리더인 척을 마음껏 하고 왔으니, 후회감이 쓰나미급이다. 문득 개같은 성미의 20대 여인이 진솔한 나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나 답게 사는 삶이 크라테와 세이모가 추구하는 가치이건만, 때론 나 다운 것이 이토록 쓰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 말고 아무도 없는 거 아냐?'를 걱정하던 첫 번째 모임에 이어, 두 번째 모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곧 세 번째 모임도 다가온다. 감개무량하기 짝이 없다. 이제는 '어떻게 더 오래 할 수 있지?'를 고민하게 된다. 다만 크라테, 그리고 세이모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나 스스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기 전에 자폭의 여부를 고민해야 할테지만...



크라테의 자폭 순간을 연상했다면, 요 정도다. 워낙 작은 조직이라 퐁- 소리로 충분하다.



70억이 넘는 지구인 중에서 완벽히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쌍도 없다. 모두가 각자의 색깔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은 그 사이를 관통하는 공통된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치관이 어떤 것이든, 함께 추구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있다. 세이모 구성원들은 단순히 개인만을, 우리만을 위한 이익이 아닌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익을 만들어가길 원한다. 눈 뜨고 코 베이는 험난한 세상이기에 혹자는 '그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이 청년들이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청년들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이들이, 그리고 내가 중심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내 인생도 더욱 설렐테니.


다음 모임을 예견한 듯, 마음 속 차임벨이 울려댄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