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의 간결한 답변
누군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최근에 읽은 소설, 에세이 혹은 만화책 같은 것을 이야기하거나, 읽은 책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아무리 책과 담을 쌓고 지낸 사람이라도 학교를 다녔다면 교과서는 반드시 읽었을 테지만, 최근에 읽은 책이 교과서라고 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학생일지라도 '어제 6교시가 과학이었으니까 가장 최근에 과학 교과서를 읽었어요.'라고 말할 확률은 매우 낮다. 교과서는 그 어떤 책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접한 책이지만, 보편적인 책의 범주에서는 자연스럽게 빠지고 만다. 오히려 공부에 사용하는 '도구'라는 면에서 교과서는 소설'책'보다는 볼펜이나 노트 같은 학용품과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교과서는 학생이 알아야 - 한다고 어른들이 생각 - 하는 어떤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이다. 하필 책의 형태를 한. 그렇기에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어도 교과서의 내용을 굳이 기억하지는 않는다. 근의 공식으로 2차 방정식의 해를 구할 줄 알고 뉴턴 운동 제2 법칙을 외우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교과서가 전달하는 지식을 기억하는 것이지 교과서에 쓰여 있는 텍스트나 이미지 그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학생의 일부가 되지만, 교과서라는 매개는 자연스럽게 잊힌다.
교과서 편집자는 그런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이다. 편집자는 저자를 섭외하고, 교과서의 전체적인 구성을 짜고, 원고를 검토하고, 원고의 내용을 적절하게 배열하고, 사진과 삽화 제작을 진행하고, 디자인을 의뢰하고, 교정 교열을 본다. 교과서가 교육과정을 잘 반영했는지, 내용에 오류는 없는지, 심사 기준에 어긋난 내용은 없는지, 그래서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꼼꼼하게 확인한다. 사실상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심사를 받고 공개되기까지 모든 과정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러나 교과서 편집자는 교과서에 관여한 그 누구보다도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할 이유도 없다. 교과서는 그저 어느 학교의 교탁과 책상에 펼쳐져, 지식을 올바로 전달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 지식을 담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어떠했는지, 그것이 어떤 구성으로 배열되어 있었는지, 전체 내용이 어떤 짜임새를 갖추었는지 같은, 편집자가 물밑에서 정교하게 짜 맞추었던 문제들은 교과서의 궁극적인 목표 아래에서는 모두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판권 한 귀퉁이에 실려 있는 편집자의 이름자 안에 교과서를 완성하기 위한 무수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그저 그 이름의 주인만이 안다. 어차피 잊힐 숙명을 가진 책의 탄생을 위해서 은밀히 애쓰는 것, 그것이 교과서 편집자가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