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는 끓는 물에 야채나 육류 등을 삶아서 육수가 우러나올 때까지 만드는 서양식 국물 요리이다.
내가 스프라는 음식을 처음 만난 건 10살 무렵이던가 엄마가 끓여주신 '오뚜기 수프'였다. 밍밍하면서도 짭쪼름하고, 달큰하면서도 고소했던 그 맛은 평소 느껴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맛이었고, 그 생소한 맛이 좋아 동생과 환장을 하며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아마 그 수프에 밥까지 비벼 먹었던가...
나중엔 돈까스 집에 가면 으레 따라나오는 그 수프에 후추를 듬뿍 쳐서 후추 맛으로 먹는 수프에도 한동안 흠뻑 빠져있기도 했다.
따끈할 때는 더할 수 없이 맛나던 것이 조금 식으니 느끼하다며 그릇을 물릴 정도로 오뚜기 수프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딱히 수프에 대한 로망도 사라지고 그 맛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는데 또다시 내가 수프에 입맛을 다시게 된 건 '레스토랑'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어 직장 생활을 하며 한번씩 동료나 친구들과 가게 된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난 수프는 학창시절 학교 앞 돈까스 집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또 다른 퀄리티로 감동을 주었다.
감자, 당근, 브로콜리 등의 야채가 큼직큼직하게 들어있는 먹음직한 수프를 앞에 두고 그 고급스러움에 감동했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그마저 베이스는 오뚜기 수프가 아니었나 싶지만 말이다.
이후 곳곳에 등장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난 브로콜리 수프니, 포테이토 수프니 하는 극강의 달달함과 고소함을 지닌 수프를 만나며 수프에 대한 애정이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강렬한 감칠맛 만큼이나 후덜덜한 달달함에 수프는 늘 먹어대기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음식이다.
이젠 그저 한번씩, 어쩌다 생각나는 정도?
그럼에도 수프가 못 견디게 생각날 때가 있는데, 허기를 살짝 때울 정도로만 속을 데워주고 싶을 때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 배부르고 싶지 않지만
속이 따뜻해지고 싶은 그런 날.
어쨌건, 수프는 여전히 내게 가장 따스하게 여겨지는 음식 중의 하나다.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그 환상적인 맛보다는 쌀쌀한 날씨에 만나는 기분 좋은 따끈따끈함으로 기억되는.
마치 '정'이라는 말랑말랑한 정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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