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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실생활자 김편집 Aug 30. 2015

#02 연필깎이

ⓒkimeungyoung


몇 년 전 직장 선배가 독일 출장을 다녀오며 연필깎이를 기념 선물로 주었다. 초록빛의 유리 잉크병 모양을 한 연필깎이가 맘에 쏙 들었다. 심이 닳은 연필을 돌돌 돌려 깎으면 뾰족해져 더 단단해 보이는 연필심이 쨘하고 나타났다.


마음에 들게 잘 깎여진 연필을 보면 절로 마음이 뿌듯해진다. 이미 멋지게 글자가 써진 것처럼. 이미 쓱쓱- 멋진 연필선으로 스케치가 그려진 것처럼.


 연필깎이로 처음 특허를 받은 사람은 프랑스 출신의 수학자 베르나르 라시몽Bernard Lassimone이라고 한다. 1828년의 일. 수학자의 연필이 어지간히 빨리도 닳았나 보다. 얼마나 성가셨으면 수학자가 계산을 멈추고 연필깎이 발명을.^^;   


그 이전에는 펜나이프로 깎았다고 하는데, 펜나이프라는 이름은 깃펜을 깎기 위해 사용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렇지. 서양에선 연필이나 만년필이 등장하기 전까진 주 필기도구가 깃펜이었다.


깃펜은 잉크를 머금고 있는데 탁월한 거위나 까마귀의 깃털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오른손잡이의 경우 오른쪽 방향으로 휘어진 새의 왼쪽 날개 깃털이 사용하기에 좋았다고 한다. 물론 왼손잡이라면 그 반대겠지. 그런데 깃펜의 깃털은 살아있는 새의 것만 사용했다니 거위는 예나 지금이나 수난이다. 지금도 산 채로 털을 뜯겨 옷이 되고, 이불이 되고... 쿨럭-_ㅜ


중요한 필기도구인 깃펜을 공급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 거위 농장이 넘쳐 났다고 하는데, 1795년에 프랑스 화가 니콜라스 자크 콩테(Nicolas Jacques Conte)가 '흑연과 진흙을 혼합하여 삼목으로 껍질을 씌운' 현대적 연필의 시초인 필기도구를 발명하고, 19세기에 만년필이 발명될 때까지 거위와 새들의 수난은 계속되었던 듯하다.


나에게 처음 경이로움을 주었던 연필깎이는 뭐니 뭐니 해도 하이-샤파 연필깎이다. 기차 모양의 그 연필깎이는 드르륵- 드르륵- 손잡이를 돌리면 눈 깜짝할새, 찔리면 죽을 듯 뾰족하게 잘 깎인 연필심을 쉽게도 뚝딱뚝딱 내주었다. 그것도 취향이란 게 생기니 자동연필깎이로 깎은 짧은 연필심은 싫어서 칼로 회귀했지만 말이다. 아니 샤프로 돌아선 것이었던가.






"이 녀석, 잠시를 못 가는군."

늙은 학자는 두리번두리번 책상 위에서 펜나이프를 찾았다. 얼마 쓴 것도 같지 않은데 금방 뭉뚝해진 거위 깃털 펜을 향해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맘처럼 움직이지 않는 굽은 손으로 천천히 펜나이프 칼날을 깃펜으로 가져갔다. 펜촉을 최대한 뾰족하게 다듬으려 흐린 눈으로 애써 초점을 맞추느라 늙은 학자는 절로 입이 앙다물어졌다. 



헤리트 다우Gerrit Dou <깃펜을 깎고 있는 학자>, 1630~1635년 경 作




#헤리트 다우 #깃털펜 #연필깎이 #하이-샤파연필깎이 #브런치북 #펜나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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