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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실생활자 김편집 Sep 30. 2015

#11 벼루

ⓒkimeungyoung



쓰윽싸아~ㄱ

자세를 바로 하고 벼루에 먹을 수직으로 세워 쓰윽싸악 먹을 갈면 짙은 묵향이 그윽하게 피어오른다.


국민학교 3~5학년 동안 서예를 배웠다. 그땐 그 깊은 묵향이 그렇게 좋은 줄 미처 몰랐다. 수업 시간에 맞춰 서예반에 도착할 무렵이면 그 특유의 향이 은근히 번져 복도까지 가득 차 있었다. 그럼 엄하신 서예 선생님과 쥐죽은 듯 고요~할 서예 수업 시간이 절로 묵직하게 다가와 어린 가슴을 짓눌렀다.


당시 학교에서는 방과 후 특별활동으로 몇몇 수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서예반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사실 스스로 하고 싶어 시작한 서예가 아니라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라 당시엔 어린 마음에 뭔가 모를 억울함과 불만이 있었다. 게다가 소질이 있다며 부모님께 권유해 서예를 배우게 하셨던 선생님은 막상 수업시간에는 계속 잘못한 점만 지적하시고 칭찬에도 박하시니 어린 마음에 시무룩해 있기도 했고 또 내 마음먹은 대로 실력이 늘지도 않아 이래저래 서예 수업은 골치 아픈 시간이었다.


게다가 방학 때도 계속되는 서예 수업으로 맘껏 놀러도 못 다니고 방학 중 2~3주를 무거운 서예가방을 메고 계속 학교에 나가야 했으니 그 불만이야 오죽했겠는가.


4학년 여름방학 중 어느 한날이었다. 서예 수업이 있던 3층 교실로 오르는데 그날따라 날씨도 더운데 답답한 교실로 들어서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벼루가 들어있어 더 무거웠던 가방도 그날따라 배는 더 무거운 것 같고. 그래서 가방의 끈을 잡고 휙- 두어 칸 위로 가방을 던졌다. 그리고 가벼워진 몸으로 계단을 오르고 또 가방을 휙- 던져올리고 또 계단을 오르고 다시 휙-. 그렇게 3층에 도착해 서예 교실로 들어섰다.


까만 깔개를 깔고 먹과 연적, 문진 그리고 벼루가 든 나무상자를 열었다. 어떤 수업이든 세팅이 먼저. 아니 그런데... 맙소사!!!! 이 무슨 난리란 말인가. 벼루의 앞 귀퉁이가 깨져있었다. 그것도 먹물을 고고 있어야 할 앞부분이.


엄마에게 벼루를 다시 사야 한다고 돈을 받으며 미안했던 마음이 잊히지 않는다. 너무 어이없이 깨버린 벼루라. 벼루가 왜 깨졌냐는 엄마의 물음에 차마 계단에서 던졌다는 말은 못하고 그저 모르겠다고만 할밖에.  


그렇게 다니기 싫다고 징징거렸지만 어린 날 서예를 배운 경험이 영향을 줬는지 세월이 흘러 30대가 되어선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싶어 반년을 매주 대구와 서울을 오갔다. 그윽한 묵향과 붓이 싸~악 화선지를 스치는 소리에 새삼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1시간 40분쯤 기차를 타고, 지하철 타고, 인사동을 지나 캘리그래피 수업이 있는 교실로 들어서면 반가운 묵향에 한껏 설렜다.    


뭐 그렇다고 재주를 한껏 부리며 지금도 실력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냐면 그건 아니고. 다만 복잡하고 좁은 방 한 귀퉁이일지라도 작은 책상에 늘 벼루와 화선지를 펼쳐놓았을 뿐이다. 그냥 그게 다다. 흐흣. 마음 시끄러울 때 천천히 먹을 갈고 있노라면 벼루에 먹이 쓰윽쓱 갈리는 소리와 은근히 퍼지는 짙은 묵향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혀주어 좋다.






"무릇 옛 사람 말에,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없어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나는 평소 서적을 읽는 것을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삼았지만 일이 많고 분주해서 책을 읽고 외울 여가가 없으면 일찍이 그 말을 생각하곤 했다. 이 책가도 그림을 보고 마음으로 즐기니 그 말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정조, <홍재전서><일득록>


책가도를 통해 학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셨다는 정조. 책을 어루만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 만큼 학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지녔던 임금님이 바라보며 즐겼을 <책가도>는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이응록(1864~1871), <책가도> 10폭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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