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MO LC-A
"뭐 그런 장난감 같은 걸 카메라라고 샀냐?"
"어허! 장난감이라니요. 이게 어떤 카메라인데! 자그마치 소련 KGB에서 사용했던 스파이용 카메라라고요!"
(찰칵- 셔터를 눌러 보인다)
"푸하하핫~"
주변인들은 물론이고 나도 함께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스파이용 카메라라고 하기엔 셔터 닫히는 소리가 너무 경쾌하고 컸다. 찰칵-!
"그거 초점은 맞아? 초점은 어떻게 맞추는데?"
"그게. 뷰파인더가 좀 많이 간단하거든요. 그래서 연습은 좀 해야 돼요. 제가 거리를 잘 맞춰서 찍어야죠. 사실 잘 못 맞춘데요. 하핫~ 지 멋대로 찍힌다고. ㅋㅋㅋㅋ 그래도 색감이 끝내줘요. 비네팅이라고 주변이 터널처럼 어두워지는 건데, 와~ 진짜 색감은 환상이라니까요!"
"지금 처음 해외여행 나간다는 애가 그걸 샀다고? 초점도 못 맞추는 걸? 아니, 디카 산다면서?!!"
"아니 그게 색감이 끝내줘서... 그리고 이거 완전 수작업으로 만드는 카메라예요. 사람 손으로 일일이. 하루에 한 대밖에 못 만든다고요! 완전 멋지죠?"
"흐이그~~~ 인간아!"
소위 똑딱이 카메라, 토이 카메라라고 불리는 로모 LC-A.
로모(LOMO)는 ‘레닌그라드 광학기계 공동체(Leningrad Optic-Mechenic Union)’의 러시아식 표기 약자. '레닌그라드 광학기기 조합의 로모 콤팩트 오토 맷'이 LC-A의 본명이다.
로모는 1984년, 냉전 시대에 첩보용 카메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어 소련 광학 산업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던 로모사에서 생산했다. 초점, 조리개, 셔터 속도도 맞출 필요 없는 초간단 아날로그 카메라 로모 LC-A는 어두운 곳에서도 플래시 없이 피사체를 찍어내는 재주를 부리며 손바닥 안에 숨겨지는 콤팩트한 크기로 소련 KGB 스파이들의 손에서 활약했다.(첩보용이라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안 믿김. 나야 사랑해마지 않는 찰칵 소리지만 소리가 꽤 크다)
이후 소련의 몰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한 대학생이 체코 벼룩시장에서 로모를 발견한 뒤 새로운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2002년도에 내가 갖은 구박 속에 구입했던 로모도 오스트리아에서 온 것. 100% 핸드메이드, 일반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고급스러운 색감이 일부 마니아층을 사로잡았었다.
초점을 맞출 수 없으니 사진이 선명하게 잘 찍힌다는 보장도 없고, 뭔가 장난감 같아 허술해 보이는 디자인에, 그렇다고 당시 인기를 막 얻고 있던 디카와 비교해 가격이 싼 것도 아닌데 로모그래퍼라고 불리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 어떤 이는 찍는 사람이 아니라 카메라 지맘대로 찍는 삐딱함이 좋다나 어쨌다나.
여하튼 나도 초점 하나 맘대로 맞출 수 없는 그 지멋대로 삐딱이 카메라가 한 번씩 툭툭 던져주는 특유의 매력적인 색감이 환장할 만큼 좋았다.
올해는 로모 LC-A 탄생 25주년이 되는 해란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로모 LC-A는 단종되고 최근에는 약간의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로모 LC-A+가 팔리고 있다고. 하지만 로모그래퍼들에게 로모는 뭐니 뭐니 해도 로모 LC-A 카메라이지 않겠는가. 첫정인데, 하핫. 뭐 내가 가진 것이 LC-A이니 무조건 LC-A가 최고라는데 한 표!
엄청 사랑이 지극한 것 같지만, 그러고 보니 이 로모에 필름을 끼워 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동안 잠만 자고 있다는. 아, 불현듯 가슴을 파고드는 이 애틋함. 이참에 로모그래피 코리아 매거진이나 한번 찾아봐야겠다.
나의 첫 해외여행에 동반했던 로모는 기대보다 훨~~씬 나의 마음을 뿌듯하게 해주었다. 비록, 당최 왜인지 모르게 두 장면이 막 섞여있는, 심령사진이라 놀림받은 신기방기한 결과물도 있었지만. 하지만 로모와의 사랑에 한창 빠져 있던 내 눈에는 그 나름 또 매력이 넘치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