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재미

#05

by 김편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 모임을 했다. 모임 멤버는 세 명인데 그중 한 명이 사는 지역이 달라 매주 온라인상에서 각자의 글을 나누었다. 인터넷신문 기자, 동네책방 책방지기, 프리랜서 편집자, 셋이서 글은 쓰고 싶은데 혼자서는 나태해지기 일쑤이니 마감 시간을 정하면 뭐라도 쓰지 않을까 싶어 만든 소모임이다. '마감'에 '재미'를 붙이면 마감도 재미나게 보일 거라며 모임의 이름을 '마감 재미'로 정했다. 마감을 어길 시 1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곤장 규칙도 있다. 하루는 멤버 중 한 명인 동네책방 주인장에게 책방 운영하랴, 애들 돌보랴, 글 쓸 시간이 없겠다고 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시간이 많더라고요."


책방 일하며 독서모임이나 프로그램 운영하랴, SNS 홍보하랴, 애들 돌보랴, 본인이 생각해도 글 쓸 시간이 부족할 줄 알았는데 막상 글을 쓰려니 생각보다 틈새 시간이 많아서 놀랐다는 대답을 하는 그녀의 말이 신선했다.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담이고, 시간이 아예 없다고 노상 말하고 듣는 것에 익숙해져 살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았다는 말이 그렇게 새롭게 들릴 수가 없었다. 그만큼 새롭게 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그렇네' 하며 절로 수긍도 한 것은 머릿속을 순식간에 스치는 내 자질구레하고 수많은 자투리 시간 때문이었다.


유튜브 채널, 웹소설, 인스타그램 동영상, SNS 등등이 가득 채우고 있는 내 '헛된' 시간을 가감 없이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은 몹시 거북한 일이지만, 어쨌건 그녀 덕분에 내 헛된 시간, 즉 다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자투리 시간을 들여다본 것이다. 사실 그런 시간이라도 내게 충족감으로 남는 시간이라면 그건 또 별개이다. 그건 그냥 즐기려고 작정한 즐거운 시간이니까.


어디서 무얼 하고 놀았건 집으로 돌아올 때 “아~ 오늘 참 재미나게 놀았다!” 하고 있는지, “에이~ 시간이 아까워. 왜 이런 데에 내 시간을 썼지?”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지켜야 할 시간인지, 가차 없이 정리해야 할 시간인지 알 수 있다는 나의 제주 친구 이야기처럼 놀더라도 하나 아쉽지 않고 모자람 없이 뿌듯하다면 그걸로 된 거다. 하지만 무의식중이라도 스스로 "내 헛된 시간"이라고 말하는, 아까웠던 시간이 있다면 그렇게 보낸 시간 때문에 내 다른 어느 시간이 부족하고 부대끼고 몹시 아쉬워졌을 테니 문제다.


이럴 때마다 습관처럼 생각나는 책 제목 하나, 《너무 바쁘다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불안해지는 순간 중 하나는 내가 내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인데,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속도와 연관된다. 내가 원하는 삶의 속도란 지금보다 더 빨라야 한다거나 더 느렸으면 좋겠다는 의미는 아니고 매 순간, 아니 모든 순간이 내가 ‘원하는’ 속도였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내 주위의 사람과 내가 사는 사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살피고 들여다볼 수 있는 속도로 살고 싶다. 그런 일을 시간에 허덕이고 치이느라 지나치거나 모르는 체하거나 놓치는 일이 없길 매번 이렇게 바라면서도 어리석은 욕망에 져서 순간, 순간 허투루 살곤 한다. "내가 시간이 많더라고요" 하던 그녀처럼, 나도 사이사이 내 쪼개지고 흩어진 시간을 모아봐야겠다. 넉넉한 시간은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여유로운 마음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다.


IMG_7560 복사본.jpg “사람을 가장 고무시키는 것은 데드라인이다.” 광고음악 작곡가 스티브 카르멘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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