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춤추게 되었다”

#04

by 김편

한 번씩 책상을 벗어나 책 이야기나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하러 간다. 특히 글쓰기 강의에서는 평생 글을 써 본 적이 없다며 수줍어하는 어르신을 한 번씩 만나는데 의외의 글맛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아트센터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4주간의 글쓰기 강의에서 한 할아버지의 발표 글에 마음속으로 폭죽이 터진 것처럼 벅찼던 적이 있다. 더불어 내 삶에 윤기를 더하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새삼 생각하게 한 글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당신의 친구가 멋지게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포츠댄스 학원을 알아본 후 학원 앞까지 갔는데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아 발길을 돌렸고 대신 스포츠댄스에 관한 책을 사셨단다. 그렇게 책으로 춤을 배워보고자 했는데 책을 읽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학원에 다시 갔고,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산에 가서도 혼자 연습하고 집에서도 연습하며 열심히, 열심히 노력한 결과 결국은 신나고 활기찬 음악에 맞춰 “행복하게 춤추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행복하게 춤추게 되었다”라는 문장을 직접 읽으실 때 겉으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내 마음속은 이미 환호성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렇게 할아버지께 행복을 주었던 춤인데 “요즘은 무릎이 아파서 춤을 추지 못해 안타깝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되니, 내 마음까지 다 안타까웠고 강의실 여기저기에서도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르신의 “행복하게 춤추게 되었다”라는 표현처럼 내 생활에도 “행복하게 ○○하게 되었다”라고 할 만한 유쾌한 사건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생업이나 자기 계발을 위한 일 말고, 온전히 내 기쁨과 재미를 위한 일로 무엇이 있을까, 궁리해 보았는데 이것저것 떠올려도 막상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러던 중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한 지인이 그림 그리기 모임을 시작하자고 권해왔다.


매주 한 번, 정해진 시간까지 그림 한 장을 그려 지정한 온라인 공간에 올리는 모임으로, 마감 시간을 어길 시 벌칙도 정했다. 정해진 시간과 벌칙이 있으니 약간의 긴장감도 주고, 평소에도 그리기에 관심이 있었으니 기쁨과 재미를 위한 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지금 내 책상에는 고체물감과 색연필, 미니 드로잉 수첩 그리고 기초 드로잉 교재가 있다. 마치 글쓰기 수업의 어르신처럼 혼자 산에서 연습하는 기분으로 혼자 서툰 선들을 그어 볼 작정이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조금 설레고 웃음이 난다.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행복하게 그리게 되었다”라고 쓰는 날이 올까. 사실 아무것도 한 것 없는데 이미 좀 행복하다.


먹고사는 일을 위해서든,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든, 무언가에 집중하고 단련해 나갈 때 얻는 즐거움이 있다.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오로지 나를 위해,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무언가를 익히는 느낌은 의외의 활기를 준다. 물론 이런 활기가 꾸준히 좀 오래 지속되어 할아버지처럼 신나고 활기찬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르면 더 좋을 것이고. 혹은 그러다 좌절을 맛보더라도 그것대로 또 좋을 것 같다.


아픈 무릎 때문에 중단된 어르신의 스포츠댄스 도전기에 안타까움만 남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찾아 알아보고, 그 책을 읽으며 배우고, 또 학원에서 듣고 보고 배우고, 혼자 산에 올라 “이렇게 저렇게” 연습해 보았던 모든 시간들, 마침내 음악에 맞춰 행복하게 춤추었던 모든 순간이 할아버지 삶에 윤기를 더하며 고스란히 당신의 것으로 남았을 테다.


반들반들, 삶에 윤기를 더하고 생기를 더하는 일은 이런 일이지 않을까. 저절로 벅차오르는 기쁨을 즐기는 것, 소소한 기쁨에 혼자서도 빙긋 웃는 것, 그런 순간을 그저 지나치지 말고 붙들어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그렇게 삶에 윤기를 더하며 어떤 나이에 이르러도 나를 즐겁게 하는 일에 내가 무심하지 않길 부디, 바란다.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오로지 나를 위해,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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