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는 거실 한귀퉁이에 책상을 놓고 일하는 터라 거실에서 일하고, 거실에서 밥 먹고, 거실에서 잠도 자는 ‘거실생활자’다. 작업하는 거실 앞으로 창이 있고 그 창이 골목을 향해 나 있어서 일을 하다 보면 간혹 골목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가 쫑긋해진다.
“낙지가 왔어요, 낙지. 싱싱한 세발낙지가 왔어요. 성큼성큼 살아 숨 쉬는 싱싱한 세발낙지가 왔어요.” 하는 판매 트럭 아저씨의 확성기 소리를 들으며 “성큼성큼?” 어색한 표현에 혼자 웃다가도 성큼성큼을 대신할 부사를 쓸데없이 궁리하기도 하고, “아니, 애들이 와서 했지. 먹어 봐” 하며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소리가 들리면 괜히 혼자 흐뭇해 씨익 웃기도 한다.
그런데 어제는 골목에서 희한한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나 좀 잠깐만 도와줘요. 응? 잠깐만.” “아니, 저 바빠서…” 하는 대화에 뭔가 싶었다. 그러더니 또 잠시 있다 “총각, 잠깐만. 잠깐만 나 좀 도와줘요.”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목소리는 탄식한다. “하이고, 어쩌노. 아무도 없네”
그쯤 되니 좀체 남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나도 무슨 일인가 싶어 베란다 너머로 골목을 내다보게 됐는데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시던 한 할아버지를 불러 세우신 할머니가 또 사정하고 있다. “아저씨, 나 좀 도와줘요, 예? 잠깐이면 된다. 저기 의자가 낑겨서…” 무슨 사정인지 그 애절한 부탁에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세워두고 대문 쪽으로 따라가신다. 조금 있다 “아~ 이게 낑겼구만” 하시며 할아버지는 그 집 대문 안으로 사라지셨다.
사연인즉, 버릴 소파를 혼자 집 밖으로 내려다 힘에 부치신 할머니께서 그렇게 한참을 길목에 서서 행인들에게 SOS를 보내신 거다. 잠시 후 작은 2인용 소파를 끌고 나오셔서 골목에 내놓으신 할아버지께서는 이걸 처리하려면 동사무소에 이야기를 하면 된다, 스티커를 사서 붙여야 된다, 하는 정보를 할머니께 알려주었다.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알려줘서 고맙다, 몰랐다며 맞장구를 치시더니 오늘은 주말이니 내일 동사무소에 가면 되겠다며 할아버지께 연신 인사를 하셨다.
뭔가 잘 해결된 것 같아 책상으로 돌아와 다시 원고에 집중했는데 두어 시간이 흘러 초저녁쯤 되어 골목에 그 할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너거들이 응? 집 정리한다 그케도 연락 하나 없고 응? 들여다보지도 않고 응? 그래봐라, 그래! 그렇게 한번 해 봐!” 역정 내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자식으로 추측되는 가족에게 전화해 화를 쏟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마치 당신의 외로움을 주장하는 듯했다. 사납고 앙칼졌다. 한껏 털을 세우고 위협에 맞서는 한 마리 짐승처럼 처절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만큼 할머니의 고립감이 절박하게 전해왔다.
그 목소리가 꽤 간절했는지 다음 날 책상에 앉았는데 불현듯, 골목을 메우던 그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노년의 외로움이 설움, 원망과 뒤범벅되니 퍽 애달프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갑갑하게 여겨졌다. 비혼에, 독거 프리랜서라는 내 정체성이 맞을 노년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짐작되어서인 것 같다(아, 나는 전화할 자식도 없지-_-). 취약한 경제력은 둘째치고, 물리적인 힘이 부족해 닥칠 현실적인 살림의 난관은 혼자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걱정이 할머니의 사정을 보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내 설움을 내세워 누군가에게 역정 내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따라붙는 건 아직은 내가 뭘 몰라서일까.
이 사람, 저 사람 붙들며 도움을 청해야 했던 괴로움과 당혹이 다른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되는 걸 보자니 어쩐지 씁쓸하고, 그런 안타까운 처지의 상황이 또 안쓰럽다. 그러며 거실에 앉아 생각한다. 원망과 섭섭함을 쌓는 일을 경계하는 것이 나이를 먹으며 가져야 할 가장 큰 마음 자세 중 하나겠다. 어떤 이유로든 원망과 섭섭함, 서러움을 내 속에 쌓는 일은 스스로 제 삶을 팍팍하게 하는 빌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