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존 윌리엄스 《스토너》
교육자로서의 스토너가 점점 단단해지고 훌륭해지고 있을 때 '워커'와 '로맥스'라는 골칫덩이가 나타난다. 어이없이 닥치는 억울하고, 화나고, 기운 빠지게 하는 사건. 사람이 얽혀 일어나는 골치 아픈 일인데 그런 일이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임하는 일과 관련해 엮이면 몇 배나 분통 터질 것 같다. 그런 일을 겪고 있던 마흔셋의 윌리엄 스토너는 총명한 젊은 강사 캐서린 드리스콜과 “기묘하고 무서운 것”을 함께 품게 된다. 사랑이다.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270쪽
이 사랑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이보다 더 평범할 수 없겠다 싶은 결말로 이들의 사랑은 종료된다. 처음에는 도저히 감정 이입을 할 수 없는 그의 부인 이디스에 대한 반감으로 이들의 사랑이 애틋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캐서린의 첫 책에 “W.S.에게”라는 헌사를 보며 눈앞이 흐려지는 스토너처럼 사실 내 눈앞도 잠깐 흐려졌지만 어느 순간 부질없네, 싶었다.
타협은 현실에선 다반사일 뿐이다. 대체로 그저 그렇게 타협되고 정리되는 것이 인생에서 수두룩하다. 아무리 꾹꾹 누른 나름의 마음이 있더라도 ‘무엇’이 되지 못한 모든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선명할 수는 없고 그러니 정의되지 못하고 정체 없는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떠나버린 캐서린 드리스콜에게, 캐서린이 떠나고 급속히 늙어버린 스토너에게, 각자 어떤 무늬가 새겨졌을까 문득 궁금하다. 그러면서 갑자기 모든 인생이 안타깝기도 했다. 스토너도, 그의 부인 이디스도, 영혼의 한쪽 같은 캐서린도, 아깝고 아까웠던(이것은 내 감정이다) 딸 그레이스도.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중략) 상대가 여성이든 시(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350쪽
이렇게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며 산 스토너의 세월도 당연히 휙휙 흘러간다. 암 진단을 받고 퇴직과 생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스토너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에게 되풀이해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가 삶에서 기대하는 건 무엇일까. 스토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거듭 되풀이해 자문하는 저 질문에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어떤 감각이 그를 덮쳤을지는 책에서 직접 만나길 바란다. 나는 무엇을 기대할까, 저절로 함께 자문하게 되는 저 질문 앞에서 아직은 내 인생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하고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저러나 책장을 덮으며 느꼈던 묵직한 감동에도 불구하고 '이것이다! 이것이 감동의 지점이고 스토너의 인생에서 이런 것에 가슴이 벅차다'라고 할 만한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심지어 덮었던 책장을 다시 펼쳐 거듭 스토너라는 사람의 무늬와 결을 헤아려 봐도 '이것'이 내 감동의 원천이라고 정리되지 않았다. 스토너의 삶을 헤아려 보면 지극히 평범하기만 한 한 사람의 생애이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그런 평범함과는 다른 차원의 특별함이 있는 것도 같은데, 당최 선명해지지 않는 먹먹함의 정체에 답답했다. 정리되지 않는 감상에 쉽사리 책을 덮지 못하고 이리저리 책장을 다시 펼쳐보다 문득 다시 발견하게 된 문장이 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략)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388~389쪽
그의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의 책이 곧 우리 삶처럼 여겨졌다. 잊히기도 하고 아무런 쓸모없는 듯해도 분명 내 작은 일부가 '정말로' 거기에 있는 인생 말이다. 특별히 높이 평가되지도 않고 큰 쓸모로 기여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쉽사리 잊히기도 할 단순한 생(生)에도 각자의 영광과 희열, 분노, 억울함, 슬픔, 회한이 곳곳에 자리한다. 그런 것을 가지지 않은 인생은 하나도 없다.
“눈물이 나도록 기쁜 날들과 웃음이 나도록 슬픈 날들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모두 저 속절없는 0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모든 인생의 모순과 혼돈과 수긍을 거치며 결국 우리의 모든 삶은 속절없이 '공(空)'에 다다를 것이다. 스토너가 내게 준 먹먹함은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특별하지도, 무엇이 되지도 못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삶에서도 우리 각자의 영광과 좌절과 기쁨과 슬픔은 오롯이 자리하고, 그렇게 각자의 밀도로 모든 기쁜 날과 슬픈 날을 겪으며 도착하는 곳은 모두 한 곳이다. "속절없는 0"
그가 자신의 삶을 관조했듯 나도 따라 그의 삶을 관조하며 내가 다다를 '0'과 그 '0'을 앞두고 '무엇을 기대했나' 물어볼 나를 상상했다. 그때의 내가 어떤 무늬와 결을 가진 사람 일까도 상상했다. 그리고 이런 상상은 그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는 잊지 않고 가끔 곱씹어 봐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인용글 출처: 존 윌리엄스, 《스토너》(알에이치코리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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