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사노요코,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마음가짐이나 정신력의 범위에서 한계가 정해지는 것과 건강 상태나 육체적 조건의 범위에서 한계가 정해지는 것이 구분되고 판별되면서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는 세상의 숱한 말에 굳이 토를 달자면 ‘나이는 문제가 아니지, 다만 그 나이의 내 몸이 문제요’ ‘나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 뭐가 현실적인 문제로 닥칠지, 뭐가 좀 예상되는 게 문제요’ 하는 식의 말이다.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는 나는 ‘나이’라는 한계를 극복해 무언가를 성취해 본 적 없는, 중년이다.
“할머니도 고기 잡으러 가요.”
“하지만 나는 98살인걸. 98살 난 할머니가 고기를 잡는 건 어울리지 않아.”
씩씩한 수컷 고양이와 함께 작은 집에서 사는 98세 할머니가 있다. 고양이는 날마다 낚싯대를 메고 물고기를 잡으러 가며 할머니에게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권한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인걸” 98세의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하며 사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99세 생일날, 케이크에 꽂을 양초를 사 오던 고양이가 실수로 양초를 냇물에 빠뜨리고 겨우 5개의 양초만 남겨 온다. 결국 다섯 개의 양초가 꽂힌 다섯 살의 생일 케이크를 먹은 할머니는 이제 다섯 살 할머니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할머니도 가요.”
“하지만 나는 다섯 살인걸. 어머 그렇지! 다섯 살이면 고기 잡으러 가야지.”
“어머 그렇지! 다섯 살이면...” 다섯 살의 할머니는 뭐든 가능하다. 멀리 들판으로 나가고 냇물도 풀쩍 뛰어넘고 고기도 잡으러 간다. 여전히 할머니는 할머니지만 5살이 되니 모든 한계는 희한하게도 대수롭지 않게 사라진다.
사는 것이 재미난 순간은 이럴 때다. 마음을 부추기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소소하고 별것 아닌 동기를 느닷없이 만나는 순간이 있다. 별것 아닌 이유로 몸과 마음의 방향을 휙, 돌리는 순간 한계나 이유는 생각할 틈 없이 의외의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새로운 세상이라고 해서 급격히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거나 갑자기 휘황찬란한 순간을 맞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단하지 않아도 나는 몰랐던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생각지도 못했지만 의외의 재미에 괜히 마음이 들뜨고 신나는 정도, 그저 그 정도만 되어도 우리의 보통날은 생기를 띠고 윤이 난다.
동네 서점에서 <다시 보는 안데르센 동화책>이라는 강의를 들은 적 있다. 수업을 해 주신 K선생님은 예순쯤의 연세셨는데, 그해 대학원 박사 과정을 시작하셨다길래 대단하시다고 감탄했더니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으셨다. 60세가 넘어 무려 중국으로 유학을 가신 한 지인의 부인이 있으시단다. 느닷없이 맡게 된 손주를 키우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이 마무리될 것 같다는 예감에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때 손주 육아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결심하셨단다.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손주 육아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중국까지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하며 말하는 사람도, 듣던 사람도 모두 웃었다. 중국어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이메일 보내기조차 서툴었던 그분이 무려 중국 유학행을 감행했던 이유라고 하기엔 엉뚱해서 귀를 쫑긋하고 사연을 들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 어학당 같은 곳이었을 것 같은데 그곳에서 알아듣기도 힘든 중국어와 씨름하고 'PPT 만들기'의 장벽을 어린 동료들의 도움으로 뛰어넘으며 고군분투하는 일이 얼마나 고됐을까. "가면 이혼"이라는 으름장까지 무릅쓰고 감행했던 유학 생활이 1년을 넘고 2년을 넘고 3년을 넘었고, 마지막 학년을 남겨둔 시점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는 그분의 안부가 궁금해 K선생께서 그 댁으로 찾아가 소식을 나누었단다. 이야기 끝에 돌아오면 중국어를 가르치실 거냐 물으니 그분의 말인즉슨 당신은 중국으로 유학을 갔지만 그 배움을 이용해 중국어를 가르칠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학기는 모두 마칠 것이다, 그런데 거기 있다 보니 그곳 사람들이 할머니가 공부하러 왔다고 여기저기 데려가 주었는데 중국 디저트가 아주 다양하고 맛있더라, 돌아오면 중국 디저트 가게를 열고 싶다, 유학을 그렇게 반대했던 남편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라고 하셨다나.
그리고 연이어 그분의 말을 전하며 하신 말씀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걸로 뭘 할 게 아니라도 그걸 해도 된다는 거야. 중국어를 가르칠 게 아니라도 중국에 가서 공부해도 돼. 화가가 되려는 게 아니라도 그림을 배워도 되는 것처럼. 꼭 그걸로 뭘 할 게 아니어도 해도 된다고 하시는데, 참 맞는 말이지?"
그렇지. 그걸로 꼭 뭘 할 게 아니어도 무엇이든 해도 된다. 언젠가부터 무언가의 '시작'을 생각하면 "그거로 뭘 하려고?" "그걸로 뭘 할 수 있지?" 하는 질문을 당연한 듯했다. 그 질문 앞에 접었던 많은 시도가 떠오른다. 그걸로 뭘 안 해도 뭐든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전했던 K선생님을 2년쯤 지나 다시 만났는데 그때는 박사 과정을 수료하시고 논문을 쓰시는 일만 남았다고 하셨다. 대단하시기도 한데 너무 힘드셨겠다는 내 말에 일주일에 이틀, 서울로 공부하러 다니는 일이 당연히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지식이나 배움을 얻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재미있었고, 24시간 한다는 카페도 가 보고 새벽 편의점에서 그 이른 시간에 우르르 젊은이들이 들어오는 걸 보며 세상 구경을 하는 듯, 소풍을 온 듯 즐거웠다며 유쾌하게 웃으셨다. 그럼 이제 문학치료 쪽으로 뭘 하실 거냐는 내 질문에 "어이구 내가 이 나이에 그걸로 뭘 하게." 이러며 또 웃으셨다. 그 선생님도 그 '박사' 타이틀로 뭘 하려는 건 아니셨나 보다. 다만 그 배움을 원하신 것 같다.
나비도 돼도, 새도 돼도, 물고기도, 고양이도 될 수 있는 건 5살도 99살도 가능하다. 겨우, 생일 케이크에 양초 5개를 꽂았다는 이유로 5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좀 터무니없고 웃겨도 내게 ‘이유’만 된다면. 다만 그게 너무 소소해서 자칫 눈치도 못 채고 흘려보낼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양초 5개를 꽂고 5살이 되어 물고기를 잡으러 따라나설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양초 5개를 꽂고 축하 노래를 부른 후 99살을 맞고 나무 아래 의자에서 콩꼬투리를 까거나 낮잠을 잘 수도 있다.
“저어, 나 어째서 좀 더 일찍 5살이 되지 않았을까. 내년 생일에도 양초 5자루 사 가지고 오렴.”
세상을 바라보고 겪는 방식은 저마다 모두 다르다. 이유도 다르다. 이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영원히 5살 마음을 가지는 법을 알게 된 할머니처럼, 내 마음도 좀 터무니없고 웃길지언정 나만의 ‘이유’를 시시때때로 발견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그 K선생님을 떠올리면 드는 생각이 있다. 좀 '무모하다 싶은 일'을 벌이기 딱 좋은 나이는 항상 '지금'인가?
**커버이미지 ⓒunsplash
**인용글 출처: 사노 요코 《하지만하지만할머니》(상상스쿨,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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