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클레이 키건, 《너무 늦은 시간》, <남극>
여자는 서른일곱 살이 되었을 때, 깨달았다. “따뜻한 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스포츠카를 타고 파리를 달리는 일”은 이제 인생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란 걸. 그래서 그녀는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앉아 어린 시절 외웠던 자장가를 나지막이 흥얼거린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이제 그녀가 하루를 보낼 방법은 다양하다. 몇 시간이 집 청소를 할 수도 있고 꽃꽂이를 할 수도 있다. 물론 그늘진 거리를 벌거벗고 달리며 비명을 지를 수도 있고.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부른 <더 발라드 오브 루시 조던(The Ballad of Lucy Jordan)>의 가사 내용이다. 루시 조던의 이야기는 평소 그녀가 오르던 옥상 위로 올라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며 끝이 난다.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그 남자에게. 그는 그녀를 긴 흰색 차로 이끌고 그녀는 비로소 영원을 찾는다. “따뜻한 바람에 머리를 날리며 파리를 달리는 그 순간에.”
이 노래는 대표적인 여성 서사의 아이콘이 된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도 수록되었다. 영화의 두 주인공 델마와 루이스가 민트색 포드 선더버드를 타고 그랜드 캐년의 허공을 향해 질주하던 엔딩 장면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엔딩의 장면이 이 노래의 가사와 얼마나 절묘하게 겹쳐지는지는 최근에야 가사를 찾아보고 알게 되었다. 클레이 키건의 단편집 《너무 늦은 시간》에 실린 <남극>을 읽고 나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한 여자가 있다. 남편과 아이들을 세심히 챙겨 놓고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도시로 향하는 기차의 ‘일등석’에 앉은, 별 부족함 없는 중산층의 삶을 산다. “남편은 그녀의 말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것 외에 여자에게는 또 다른 목적이 있다.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고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한 것을 실행할 계획이다.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더 발라드 오브 루시 조던’이 그녀를 어느 술집으로 이끌었다. 감옥을 개조한 곳으로, 창문에 쇠창살이 쳐 있고 천장은 낮고 들보가 얹혀 있었다. -86쪽
그녀를 어느 술집으로 이끈 것은 예의 그 ‘더 발라드 오브 루시 조던’ 노래이다. 그 노래는 일상에 틈을 낸 균열처럼 그녀의 귀에 스미어 쇠창살이 쳐 있는 그 공간으로 그녀를 이끈다. 마치 일탈은 범죄라는 듯. 술집에서 여자는 남자를 만났다. 남자의 집으로 온 여자는 세면기 앞에서 면도하는 남자를 보며 “지금까지 알았던 남자들 중에서 가장 위협적이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혼자 살고, 고아였고, 만난 적도 없는 먼 사촌 외에는 친척도 없었다. 손가락에 반지도 없”는 남자다.
가족도, 사연도, 아무것도 없는 존재라…. 어쩌면 그래서 여자는 그 남자가 가장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라 생각했을까. 고려해야 할 관계나 상황이 적을 확률이 높아지면 그만큼 내 정보가 확산될 확률이 낮아진다. 물론 그의 정보에 대한 신빙성 또한 함께 낮아지겠지만. 그렇다면 그는 가장 위협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장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다.
그녀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살핌을 받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런 의무도 없었고,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거기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107쪽
남자는 여자를 씻겨 주고 헹궈 주고 수건으로 감싸 주고 머리를 빗겨 준다. 여자는 잠시 보살핌을 받는 아이인 듯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를 경험한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해야 할 일” 없이 거기 존재한다. 오랜 세월 아내로, 어머니로 살아오며 온통 돌봄과 책임으로 일상이 채워졌을 여자가.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살다가 멈춘 경험이 있냐고 물은 적 있다. 그 물음에 J가 “저 같은 경우는 결혼인 것 같아요”라고 대답해서 나머지 두 사람이 입을 맞추어 의외라고 외쳤다. 결혼은 대개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 새로운 출발 혹은 도전의 이미지로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은데 멈춤의 경험으로 ‘결혼’이라는 대답이 나올 줄은 미처 생각 못 했다. 그런데 나는 결혼을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한편으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개인의 삶에서 보면 그 어느 경험보다 자신을 멈춘 경험일 것도 같아서다. 누군가의 배우자, 부모, 사위와 며느리가 되며 그 각자의 새로운 자리를 채우느라 우리는 종종 자신을 멈추는 경험을 한다.
"남자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여자는 소파에 앉아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서 남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눈밭이 몇 킬로미터나 펼쳐졌고, 영하의 바람 속에서 펭귄들이 뒤뚱뒤뚱 걸어 다니고 쿡 선장이 잃어버린 대륙을 찾아 배를 몰았다." -94~95쪽
여자는 남자의 집에서 돌봄을 받으며 세상의 의무에서 벗어난 한 사람으로 잠시 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그녀의 앞에는 남극이라는 죽음과 냉기의 대륙이 펼쳐진다. 무리 속에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펭귄은 정해진 질서 속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이탈은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쿡 선장은 당대 유럽이 남쪽 어딘가 있을 거라 믿은 거대한 대륙 ‘테라 아우스트랄리스’를 찾기 위해 여러 차례 배를 몰아 떠났고 두 번째 항해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극권’을 통과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대륙에 닿지 못했고 “나는 이 남쪽의 땅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신한다. 있다 한들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일 것이다”라고 항해 일지에 기록했다. 결국 그는 지리학적으로는 남극 해역의 존재를 증명했지만 그 자신으로서는 발견 없는 실패한 항해였던 셈이다. 쿡 선장은 남극 대륙의 존재를 부정한 채, 이후 하와이에서 원주민들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그녀는 남극을, 눈과 얼음과 죽은 탐험가들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런 다음 지옥을, 그리고 영원을 생각했다. -112쪽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마지막 문장에서 눈에 와 박힌 것은 ‘지옥’이었다. 지옥이란 “각자가 생각하는 최악의 장소”라고 어렸을 적 수녀님이 한 말을 기억하며 “난 지옥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운 곳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반쯤 얼어 있지만 절대 의식을 잃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라고 했던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 그녀가 지금 있는 곳이 지옥이구나, 반쯤 얼어 있지만 의식을 잃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책을 읽었을 때는 다른 단어가 눈에 와 박혔다. 남극.
눈과 얼음과 탐험가들의 시체가 누워있는 곳. 탐험가들에게 남극은 ‘존재하지만 닿을 수 없는 대륙’이다. 닿으면 죽음을 맞아 시체가 되는 곳. 여자에게 남극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 같다. 존재하지만 가닿을 수 없던 곳. 일상 속의 반복과 순응에서 한 걸음 삐죽 벗어나 자신을 찾고자 하면, 죽음으로 멈춰 서야 하는 곳이다. 남자들의 일탈이 종종 ‘모험’이나 ‘자유’로 서사화되는 동안 여성의 일탈은 늘 파국과 처벌로 끝나곤 했다. 여성의 욕망은 여전히 가 닿아 살아남을 대륙이 없다는 것을 클레이 키건은 말하고자 했을까.
어둑함 속에서 그녀의 입김이 보이고 머리를 덮는 냉기가 느껴졌다. 차갑고 느린 태양이 동쪽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떠올랐다. -111쪽
기존의 세상에 맞서고 저항하다 결국 옥상에서 날아오르거나 그랜드 캐넌 허공으로 치솟아 왔던 여성의 서사는 처량하다. 그런 것이 실패가 아니고 자신의 운명을 두고 선택을 감행한 것이라 말하는 것도 이제 와 생각하니 또 처량하다. 세상은 왜 여성의 자유를 죽음의 온도에서만 증명하게 만드는가.
여자는 냉기에 휩싸여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 남자를 생각했지만 “아무 느낌도 없었”고, 남편과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두 번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런 무감각과 침묵 속에서도 여자는 기어이 마지막 온기를 포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차갑고 느린 태양은 언젠가 뜨겁고 강렬히 타올라 여자를 녹여줄 테다. 차갑고 느린 태양이 뜨겁고 강렬히 타오를 그 시간이 부디 ‘영원’만큼 긴 시간이 걸리진 않길 바란다.
우리가 영원이 얼마나 긴 시간이냐고 물었더니 수녀님이 말했죠.
“지구상의 모든 모래를 생각해 봐. 모든 해변과 모래 채석장, 해저, 사막을 말이야. 그 모래가 전부 모래시계에 들어 있다고 상상해 보렴. 거대한 요리용 타이머 같은 데 말이야. 일 년에 모래가 한 알씩 떨어진다고 했을 때 영원은 세강의 모든 모래가 모래시계 속에서 다 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야.” -97쪽
**인용글 출처: 클레이 키건, 《너무 늦은 시간》(다산북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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