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이 년이 악쓰면서 나 싫다고 하더라. 언니, 화나서 하는 소리겠지? 허긴 뭐, 나도 천날만날 지가 이쁜 것만은 아니니까. 퉁쳤어.”
“엄마들의 착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애들은 엄마를 싫어해.”
“난 울 엄마 좋은데?”
“그건 너나 엄마나 늙어서지. 젊어서는?”
“어~ 그래 그래. 우리 엄마 끔찍했지, 진짜. 깔깔깔”
“부모 자식지간의 진정한 화해는 죽기 전에나 가능해. 너 죽을 때 되면 아마 완이가 널 무척 좋아하게 될걸. 피눈물을 토하며 울기도 할걸.”
- tvN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중
드라마처럼 극적인 사연이 아니더라도 "엄마, 정말 싫어!" 하는 말을 우리도 한 번쯤은 내뱉지 않았을까. 혹은 속으로 삼키고만 말았을지도. 딸이 엄마 싫다며 악을 써도 천날만날 저도 이쁜 것만은 아니니 싱긋 웃으며 그 모진 말도 퉁쳐줄 수 있는 엄마처럼 딸도 천날만날 좋은 것만은 아닌 엄마를 퉁치고 봐주며 산다. 생각해 보면 나는 '싫어한다'라고 단정 지어 말할 용기는 없지만 머리가 굵고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당최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한 모습이 눈에 들어와 건방지게도 한 번씩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살았던 딸이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 40대가 되고 50대가 되니 무섭고 무뚝뚝하기도, 철없는 소녀 같기도 하던 엄마는 점점 동지가 되고 친구가 되었다. '친구 같은 엄마' '친구 같은 부모님'이라는 말처럼 이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안 듣고 싶은 말이나 안 들어도 될 것 같은 말도 자연스레 건네지는 사이라는 뜻이다.
가령, 엄마가 하는 아빠에 대한 '쎈' 불평이라든가, 나랑은 하등 상관없을 것 같은 동네 아줌마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같은 그런 한탄이나 섭섭함, 엄마 세대의 일상다반사를 듣는 일은 아직 철이 덜 들었던 딸에게는 사실 성가실 때가 많았다. 철이 덜 들었다고 말하는 건 그 정도 이야기에도 노련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런 수다를 통한 카타르시를 위해 무조건 맞장구치며 엄마 편을 들어줬으면 그만일 것을, 매번 그건 그렇고 저건 저렇다며 따박따박 이야기를 재단하고 기어이 해결책이나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처럼 달려들다 결국은 입바른 소리랍시고 억장이 무너지는 말을 어리석게 휘두르곤 했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난 당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하는 극 중 인물 박완에게 순식간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싹수없고 삶의 요령마저 아직 설익어 혼자 똑똑한 줄 착각하고 '난 당신들이 궁금하지 않아요' 산뜻하게 말하지만 매번 그 꼰대들의 인생을 대하는 뜻밖의 깊이 있고 우아한 자세 앞에서 순간 멍- 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 느껴진다.
나는 내 반평생 동안 줄곧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특별히 친밀한 것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엄마를 싫어하는 딸은 나뿐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살아가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 딸은 옛날이야기 속의 심술쟁이 할아버지가 파냈던 잡동사니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 사노 요코, 《시즈코 상》 중
엄마와 나는 친밀했던가? 친밀했지. 친밀하지만 또 가장 상처 입히고 상처받기도 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예전에 서울살이를 하며 한 번씩 대구 집에 내려올 때가 있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아부지가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다녀서, 아부지가 청소를 도와주지 않아서, 아부지가 등산만 좋아하고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며 하소연하곤 했다. 하지만 매번 스트레스 해소는커녕 섭섭함만 한가득 더 짊어지곤 서러워하시곤 했는데, 불행하게도 엄마의 딸은 요따구 소리나 하는 덜 자란 딸이었기 때문이다.
"아, 뭐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아?"
"몇십 평생을 그렇게 살았는데 안 되는 건 그냥 좀 포기하세요. 엄마도 좀 별나."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화목한 가정'을 누리지는 못할 망정 하소연부터 들어야 하는 게 어느 땐 나도 스트레스였다. 듣다 못해 "왜 매번 똑같은 일로 스트레스받는지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참말로." 한 것이 사달이 되어 몇 시간의 냉전으로 이어져 엄마도 나도 입을 닫았던 어느 날, 그날 상상치도 못하게 엄마의 눈물을 보고야 만 때가 있다.
"그러면 이런 얘기를 니한테나 하지, 누구한테 하노. 알았다, 흑흑. 다시는 니한테 이야기 안 할게. 내가 맨날 니한테만 그러니 너도 스트레스받는 거 내 안다. 그래도 자식이... 흑흑흑. 엄마가 돼서 딸내미한테 이런 모습이나 보이고...흑흑흑."
엄마의 눈물에 깜짝 놀라 "아, 또 뭘 다시는 이야기 안 해. 제가 진짜 잘못했어요. 정말 정말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요." 싹싹 빌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싹싹 빌었었나? 싹싹 비는 척을 했었나?
엄마와 딸은 무조건 친밀한 관계이고 무조건 이해가 가능하니 모녀는 친하다고.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왜? 가족이니까. 무조건적 애정을 바탕으로 한 사이니까. 하지만 현실이 그렇던가. 그러니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 딸은 옛날이야기 속의 심술쟁이 할아버지가 파냈던 잡동사니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사노 요코의 글에서 위안을 얻었다. '아! 그래요? 나만 그런 줄!' 다행스러워할 문제는 아니지만 '많은 엄마와 딸들이 그렇겠지. 허구한 날 좋기만 한 사이는 아무리 부모 자식지간이라도 불가능하지. 이렇게 저렇게 퉁치며 다들 사는 거겠지' 새삼 생각했다.
엄마의 암소식을 처음으로 영원이 이모에게 전해 들으며 나는 분명히 내 이기심을 보았다.
암 걸린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 tvN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중
엄마에게 진심을 다해 싹싹 빌었지만, 사실 나의 속마음은 어땠냐면... 억울했다.
'아니 그런 이야긴 친구랑 좀 하고 마시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두 분의 자식인데... 두 분이 그렇게 안 맞는다는 얘기에 뭐 어쩌라고.'
엄마와 딸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경청을 해드려야 하는 것이 억울했다. 그러면서 내 부모의 사이가 훈훈하기만 해서 걱정이 없고, 외롭지 않고 평화롭기만 한 노년의 시간으로 부디 좀 '알아서' 잘 보내셨으면 하는 그런 영악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부모가 단단하고, 씩씩하고, 감히 견줄 수 없는 지혜를 가진 굳건한 태산 같은 존재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모님을 위한 것이었을까,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대개는 말할 것도 없이 나를 위한 것이다. 그렇게 태산 같이 무너지지 않고 계셔 주어야 내가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불효녀 같다는 느낌은 싫어요, 하는 그런 영악한 마음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드라마의 '장난희 딸 박완'은 내레이션이 흐르는 가운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호되게 스스로 뺨을 후려친다. 엄마의 암 소식 중에도 자신의 인생에 대한 걱정을 먼저 하고 있는 자괴감과 비참함, 아픈 엄마에 대한 슬픔과 애끓음이 가득한 꼭 그런 표정으로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본 적이 나도 있다. 그녀처럼 호되게 내 뺨을 후려치진 못했으나.
여든에 돌아가신 엄마는 일흔이 넘으시며 차츰차츰 거동이 불편했고 일흔 중반이 넘으시면서는 걷는 것에도 아주 많이 제약을 받으시다 결국 휠체어를 사용하셨다. 일흔이 넘으시면서는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언제 어디가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갑자기' 입원을 하시게 되면 나나 동생의 일상도 덜커덩- 멈추거나 쑥대밭이 되곤 했다. 이미 노인인 아버지와 생업이 있는 두 자식의 처지에서는 일상이 지뢰밭이 되곤 했다. 처음에는 엄마의 안위만 걱정이던 것이 그 입퇴원이 수없이 되풀이되면서는 그로 인해 어떤 내 생활이 어떻게 영향받을지 자연스레 그려지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명랑한' 내 생활은 그 앞에서 숨죽여지거나 취소되었는데, 그러니까 엄마가 아픈 와중에 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관한 스트레스였다.
가령, 꼭 가고 싶었던 콘서트나 듣고 싶었던 강연,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자리 같은 것은 '엄마의 입원'이라는 사건과 비교하면 취소되어 마땅한 것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 가는 대로,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설령 어찌어찌 갈 수 있게 되어도 '즐겁게' 가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못 가게 되면 못 가게 되어서 속상해했다. 그러면서 '너 정말. 이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 드니? 어휴 니가 사람이냐.' 내 바닥을 보는 경험에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당혹스럽고 부끄럽더라도 또 염치 없어지고 마는 것이 자식이다. 부모님도 사람이라 나이 들고 아프고 점점 사회관계에서 소외되고 약해지며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그 상실감을 분명 가족에게 기대어 채우고 싶을 텐데. 가족이니 무조건 사랑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은 사실 매일매일 부대껴 살아가는 '사람 사는 일'이 되면 참 가차 없어진다. '장난희 딸 박완'이 암 걸린 엄마 걱정에 앞서 제 삶을 먼저 걱정하는 것처럼.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치매에 걸릴까 하는 걱정은 내 삶이 흐트러질까 하는 걱정인 것처럼. 고난이 예견되는 시간 앞에서 누구보다 제일 먼저 나만 생각하는 것처럼.
실버타운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나는 늘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 옛날 노파를 버려두었던 산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내 노후를 위해서 모아둔 돈을 깡그리 쏟아붓고 매달 내 생활비보다도 많은 돈을 지불하는, 어처구니없는 돈이 드는 산. 그렇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나는 엄마를 증오해 온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사노 요코, 《시즈코 상》 중
당연히 사랑해야 할 대상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또는 온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그런 죄책감이 들면 우리는 방법을 찾는다. 그 부담스러운 마음을 덜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 찾는 것이 '돈'이 아닐까. 좋은 옷, 고급 여행 패키지, 좋은 음식, 좋은 시설의 실버타운, 좋은... 그 무엇들. 내 시간과 마음을 최대한 손해보지 않으며 생색낼 수 있는 그런 것들. 그런 조악한 것들로 찔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을 지우려고 애쓰며 산다. 그러다가 그 오랜 미움과 지긋지긋함도 결국은 사랑이었다고 퉁치며 언젠가는 화해하기도 한다. 비록 죽을 때나 가능하더라도.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어쩌다 부모님 이야기를 오래 했다. 최근에 사고로 부모님이 한꺼번에 입원하셨다가 퇴원을 하시며 일상이 난리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이런 시간이 점점 더 잦게 닥칠 것이라 마음먹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고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가득 찬다. 그때는 못 견디게 싫었던 것도, 이제는 못 견디게 그리운 것도 다 함께 떠오른다. '이제와 생각하니' 하며 뒤늦게 깨닫는 것들이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 살아계신 아버지께는 잘해야지, 싶지만 여전히 나는 제 버릇 못 감춘 퉁명스러운 딸이다. "아니, 왜 그렇게 안 하시는 거예요?" "아니, 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당최 이해가 안 되네." 막말을 일삼으며 말이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아, 우리 아버지께도 '퉁칠 것'이 있어야겠구나.' 유독 아버지께 다정과 친절, 배려가 서툰 딸내미이니 "우리 딸내미가 저건 저래도 이건 이렇게 해줘서 퉁쳤어" 할 만한 것이라도 평소 부지런히 쟁여두어야겠다.
어느 날은 엄마가 말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 주면 좋겠어.”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곧잘 “치매에 걸리는 게 낫다니까. 본인은 뭐가 뭔지 모르니까 말이야.”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치매에 걸려본 적도 없는 주제에 시건방진 말을 하지 말라는 생각이 든다.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엄마.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누구도 모른다.
- 사노 요코, 《시즈코 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