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으로 살고 있으니 사람들이 한 번씩 묻는다. “외롭진 않으세요?”
“외롭지! 안 외롭겠냐?” 면박성의 농담을 하며 웃기도 하고, 아직까진 괜찮다거나 아직까진 견딜만하다는 정도의 말로 주로 가볍게 넘기는 편이다. 일찍이 정호승 시인께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시 <수선화에게>(1998) 알려준 가르침을 나도 가끔 떠올리며 모든 존재가 그러려니, 하며 사는 정도다. 그런데 이런 내게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뼛속까지 시리게 고독했던 어느 밤이 있다.
30대였으니, 아주 오래된 과거의 어느 밤이다. 별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머리 터지게 고민하던 것이 있던 날도 아닌 그저 보통날의 밤, 다만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하고 깜깜했던 것 같다. 그 고요한 어둠 속에서 자려고 눈을 감은 순간, 불현듯 생각했다. ‘아, 이렇게 살다가 죽을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고 죽겠구나. 아니, 단 한 사람은커녕 나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죽겠지. 마지막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단 한 사람도. 그리고 나도, 죽을 때까지 단 한 사람의 이해도 받지 못하고 죽겠지.’ 누구도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갑자기 온 우주에 나 혼자인 듯 느껴지며 무서워 잠이 다 달아났다. 그건 내 모든 세상이 흔들릴 정도의 고독감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쓰고 있자니 너무 과장인가 싶지만 할 수 없다. 그 밤, 내가 느꼈던 고독감은 그만큼 무지막지했다.
누군가 외로움을 묻거나 말하면 나는 간혹 그 밤의 고독감이 떠오른다. 외로움은 모든 존재의 숙명이라는 시인의 가르침을 감안하더라도 그건 좀 감당하기 벅찼다. 그런데 우연히 접한 또 다른 한 명의 시인을 통해 오히려 그보다 좀 더 극한의 막대한 침묵과 고독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른 연재에서 「19호실을 가다」라는 소설을 이야기하며 떠올린 시인인데, 미국 시인 폴 볼스는 <고독의 침례식>(baptême de la solitude)이라는 글에서 사하라 사막에 가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침묵’에 관해 이야기했다. “단단한 바위처럼 꿈쩍도 없이 정지한 곳 (…) 경이롭고 절대적인 침묵이 지배하는 곳”인 사막은 한 번을 방문하든 열 번을 방문하든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이 ‘침묵’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적막한 장소 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이 머물고 있던 요새나 마을 성벽 안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고, 혹은 거기 그대로 서서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그 적막과 고독에 흠뻑 잠길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를 프랑스에서는 ‘고독의 침례식(La baptême de la solitude)’이라고 말한다. 침례는 세례를 받는 사람의 온몸을 물속에 푹 담가 그 몸의 죄를 사하고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는 의식이다. 그렇게 고독에 흠뻑 잠기고 난 사람은 이제 그곳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완벽히, 혼자서, 절대적인 침묵과 고독에 잠길 사막에 적어도 한 번은 서 있고 싶다. 고독으로 흠뻑 잠기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전혀 다른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사막이라는 극한의 장소에 비하면 미천하지만, 옛날 그 어느 밤에 내가 느꼈던 고독도 침묵 속에서 감지했던 것 같다. 어렴풋하지만 그 밤 이후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던 건 막대한 고독의 한 부분을 얼핏 봐버린 것 같아서다. 그 밤 이후 치열하게 침묵으로 깊숙이 잠겨 들었다면 정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50대로 접어들기까지 여전히 나는 단 한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나를 온전히 알거나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고독한, 평범한 사람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나는 어느 한 인물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와 “한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란 정말 심오한 일이구나. 뭔가 알 것도 같은 느낌적 느낌이지만… 모르는 거겠지?”라고 SNS에 긁적였다. 그런 심오하고 난해한 일을 파헤쳐보자고 달려들 자신도, 에너지도 없는 나이라 그러고 말았다. 다만, 궁금하다. 죽을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비극일까, 단 한 사람의 이해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이 비극일까. 전자는 고뇌로 이어지고 후자는 슬픔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