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25, 안녕 2026

by 김편

2025년 12월 31일, 자체 종무식을 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항상 자체 종무식을 합니다. 프리랜서니 혼자라도 합니다. 누구는 오늘도 울며 야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누구는 일찌감치 월요일에 종무식을 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저는 올해 여섯 권의 책 작업에 함께했고 마지막 작업을 한 책까지 무사히 출간되어 실물 책을 받아 들고 나니 한 해가 마무리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 책임과 응답과 같은 개념에 관심이 쏟아지며 작업이 어려울 것 같아 겁먹었던 고쿠분 고이치로, 구마가야 신이치로 학자의 <책임의 생성>(에디토리얼, 2025)은 지난겨울부터 작업해 올해 2월에 출간된 첫 책입니다. 뜻밖에 흥미롭고 재미있게(?) 작업했는데 두어 달 전에 동네책방 주인장이 책방에 오시는 한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이야기하시며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양한 곤란함과 함께 살아 나간다는 것’ 그리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4월에 나온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유유, 2025)는 유유 출판사의 세계문학공부 시리즈의 마지막 책입니다. 양자오 선생이 하루키, 헤밍웨이, 마르케스, 카뮈에 이어 릴케와 릴케의 문학세계를 풀어주었습니다. 저에게 릴케는 열다섯, 소녀 감성으로 옮겨 적던 추억의 시인인데 이 책을 통해 릴케라는 시인을 아주 새롭게 다시 만난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신과 예술을 사고하는 방식, 죽음과 애도와 삶을 대하는 방식, 완전히 다르게 구축한 죽음의 이미지, 세상을 보는 관점, 우리와 세상 사이 관계에 관한 사유, 시의 논리를 말하는 바를 독자께서도 꼭,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한여름에 나온 <10대에게 권하는 우리 문학>(글담, 2025)은 오랜만에 작업한 청소년을 위한 책이었는데요, ‘10대에 권하는 시리즈’ 중 우리 문학에 관한 책입니다. 인문학, 역사, 공학, 경제학, 영문학, 수학, 의학 등에 관한 책이 나왔었는데 이 책은 시와 소설뿐 아니라 희곡, 수필, 평론까지 폭넓게 문학 전체를 조망하며 다룬 책입니다. 청소년들에게 문학의 여러 갈래를 소개하는 안내서와 같은 책입니다.


<10대에게 권하는 우리 문학> 책 작업을 하던 중 우연찮게 청소년을 위한 책을 한 권 더 작업하게 되었어요. 에디토리얼 출판사에서 나온 <기후극장>(에디토리얼, 2025)입니다.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환경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황승미 선생이 쓰신 책인데 기후위기에 관한 역사, 과학 지식, 논쟁을 연극 대본 형식으로 쓴 청소년 교양서입니다. 흥미롭게도 플라톤의 <변론>,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등의 작품을 모티브로 기후위기를 기후의 측면에서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역사와 구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작품의 배경과 인물을 등장시켜 연극적 장치를 통해 풀어놓은 것이 몹시 신선하고 흥미로웠지요.


몇 해 전부터 한 해의 마지막 날 증명사진을 찍듯 작업한 책을 모아 사진을 찍어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한 권이 빕니다. 신예희 작가의 <나이 드는 몸 돌보는 법>(유유, 2025)인데요, 지금 제게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지난 사진으로 독사진^^;). 9월에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선물을 많이 한 책으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책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열 권은 족히 넘게 선물했음에도, 어느 날 갑자기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을 ‘또’ 만나는 바람에 급기야 출판사에서 증정본으로 받은 한 권까지 떠나보내곤 아직 채워 놓지 못했다는 사정이 있습니다(맙소사). 이 책의 부제는 ‘완경 전에 알아야 할 체력, 시간, 돈 준비 가이드’입니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계속 생겨나서 곤란할 지경일 만큼 “알아야 할” 것으로 꽉 채워진 책입니다. 문제는 여성 동지들이 갱년기가 닥치기 전에 읽어보았으면 좋겠는데 참, 그 일이 코앞에 안 닥치면 아무리 옆에서 떠들어도 ‘내 일’이 아닌 것 같은 게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올해의 책 증명사진에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책입니다. 발행일이 1월 14일이라...^^;; 이런저런 개인 일정으로 ‘무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하고 싶어서 담당 편집자에게 얼마나 어필을 했는지 모릅니다. 앨런 울펠트의 <오늘의 애도>(유유, 2026). 부제는 ‘슬픔의 시간을 지나는 이들을 위한 매일 치유 365’입니다.


2024년 2월 9일 엄마를 보냈습니다.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나도 아무렇지 않게 잘 흘러가고 있지만 수시로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바위에, 물풀에, 별별 것에 부딪히고 걸려 산산이 부서지다 갇혀 고였다 정처 없어지곤 합니다. 그런 마음에 꼭 필요한 원고 같아 일을 핑계 삼아 마음을 다독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365일, 매일매일 하루치의 명상이 담겨 있는데, 어떤 날의 내용을 보면서는 ‘이건 조금 식상한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 말마저도 지금의 제게는 필요한 말이라는 걸 느끼곤 했습니다. 그런 책입니다. 출판사에서는 “상실을 경험하고 슬픔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을 위한 회복의 마음챙김 가이드”라고 소개합니다. 내일부터 하루 한 페이지씩 독자가 되어 '천천히 느리게' 읽어 볼 생각입니다.


이렇게 한 해 마무리 인사를 합니다.

내년에는 또 내년의 책이 있을 테니 또 기다려주시고 사주시고 읽어주세요. ^^;;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KakaoTalk_Photo_2025-12-31-19-34-57 001.jpeg 2025년 종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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