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찾기

by 김편

약속 장소를 착각해 괜히 먼 곳까지 다녀오느라 1시간이나 늦은 친구는 도착하자마자 건망증이 아니라 치매라며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중년의 내 친구는 아직도 내게는 열다섯 살 그때 아이로 보이곤 하는데, 현실은 어른이라 어른으로 사느라 분주하다. 직장 다니랴, 고등학생 아들 돌보랴, 집안 살림하랴, 살림력 제로인 친구(맞아요, 접니다)에게 반찬 나눔 하랴... 정신없는 게 당연하다.


바깥의 스산한 겨울숲 풍경이 오롯이 한쪽 면을 가득 채운 넓은 전시실 가운데 작은 오두막 같은 것이 덩그러니 놓였다. 허윤희 작가의 2001년 작, <관(棺) 집>을 2025년 재구성한 설치작이다. 그 주변으로 2001년 남랑스에서 제작한 원작의 아카이브가 소개되어 있다. 관(棺)은 시신을 넣는 관이나 곽을 이르는 말이다.


<관집일기>라 제목 붙인 허윤희 작가의 드로잉북 영인본에서 그대로 옮긴 노트를 관람객들이 볼 수 있도록 설치해 놓았는데 이리저리 펼쳐보다 눈에 꽂히는 페이지가 있다. '관집'의 바닥으로 쓸 헌 문짝을 발견해 이리저리 모양과 사이즈를 스케치한 페이지에 적힌 메모였다.



그것은 한 짝 한 짝이 홈이 파여 조립할 수 있게 돼있었다. 낡아서 통로문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좋은 나무(Eiche)*로 잘 손질된 것이었다. 한쪽은 색칠이 되어있고 다른 쪽은 나무색 그대로인데, 세월에 닿고, 먼지가 싸여 뿌옇게 때가 탔다. 하지만 신기하기만 한 것은 문으로써의 수명이 다했지만 다시 조립하여 내 작은 Hüttc**의 바닥으로 쓰니, 또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쓸모없는 천덕꾸러기도 발견하는 자에 따라 다시 유용한 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 제자리 찾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좋은 집의 재목이라도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

-허윤희, <관집일기>(Coffin House Diary, 2001) 중에서


*Eiche는 떡갈나무나 참나무를 뜻한다.

**Hüttc는 아마도 작은 오두막(Hüttchen)을 말하는 듯하다.



요즘 '퇴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잘 손질된 것"이라는 말과 "제자리 찾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눈에 박힌다. 하여간 사람은 관심 있는 것 위주로 보기 마련이다.


"잘 손질한다"는 말이 눈에 들어온 것은 '잘' 손질하려면 그것의 재질과 본성도 파악해야 하고, 그 쓸모도 분명히 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늘 해오던 터라 그렇다. 글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주제가 선명해야 그 목적에 맞게 재질과 본성을 이리저리 재고 다듬을 수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갈팡질팡하는 순간 글도 난삽해지는 것이고 그렇게 난삽해진 글은 이리저리 재서 다듬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어떤 모양으로 다듬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자리 찾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퇴고를 하다 보면 문단의 순서를 아예 바꾸어야 할 때가 있다. 쓸모없는 글은 아니나 제자리가 아니어서 어정쩡해진 글을 꼭 맞춤인 자리를 찾아 들어앉혔을 때 제 몫을 다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화가의 노트를 읽으며 쓰다 멈춘 글이 떠올랐다.


멸종 위기종의 식물을 그리고 초록숲의 나무를 설치해 놓은 전시장에서는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이차는 것 같았다. 그렇지. 그야말로 '같았다.' 아무래도 실내 전시장은 공기가 갇혀 내 친구의 비염을 돋운다. 에취, 에취.


작가가 매일매일 주운 나뭇잎을 세밀화로 그리고 짧은 단상이나 글을 함께 기록한 <나뭇잎 일기>(2008~2021)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매일매일의 작업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예술"이라니. 친구와 함께 감탄하며 고개를 쑥 내밀고 봤다.


전시장에서 나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허윤희 작가의 전시가 준 뜻밖의 감동과 그 감동이 준 활기로 작품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즐거웠다. 문득 이강소 작가의 전시장에서 도슨트의 이야기가 떠올라 또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쓰윽 그어놓은 획을 보면 어떤 분들이 그러기도 하십니다. '저래는 나도 그리겠다' 네, 저렇게 그리는 걸 평생 하는 것이 예술가이겠죠."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정녕 이게 내가 한 것인가?!' 놀랄 만큼 훌륭한 것을 내놓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훌륭한 것을 다시, 다시, 또다시, 계속 내놓을 수 있냐는 것은 연마의 차원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주제를 선명히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도 그렇게 쓴 글이 얼마큼 훌륭할지, 어디까지 훌륭할 수 있을지는 갈고닦는 시간이 쌓여야 가능하다. 매일매일 하루를 살아내야 이룩되는 일이다. 막상 책상 앞에서 미술관으로 도망쳐 와서는 그림 앞에서 자꾸만 쓰다 멈추고 온 글을 떠올렸다.


KakaoTalk_Photo_2026-01-06-00-03-02.jpeg 허윤희, <관집일기>(드로잉북 영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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