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 넘어 은퇴하신 아버지께서 퇴직금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휘청이실 때, 엄마는 호기로웠다. 엄마는 잔일에는 약하고 큰일에 강한 스타일이다. 양말을 벗어서 아무 데나 두고, 방마다 불을 끄지 않고, 끊임없이 문을 열어두고 다니시는 아버지께 한없이 스트레스받고 속을 끓이시고 분통을 터트리셨지만, 아버지가 퇴직금을 한방에 날려버리셨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며, 되레 아버지보다 대범하게 괜찮다고 안심(?)시키셔서 당시 나는 그게 그렇게 큰일인지 미처 생각지 않을 정도였다. 그냥 살다 보면 생기는 그런 일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따로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서 30대 초반인가부터는 몇 년 동안 집에 생활비를 댔다. 얼마 안 되는 월급에서 쥐꼬리만 한 돈이었지만 그래도 부담되는 돈이었는데 또 아주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그때도 그냥 살다 보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때라고 무던히 생각했다. 몇 년 뒤에 아버지가 다시 취업을 하셨지만, 그래도 육십 대 중반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엄마는 경제적 능력도 없는 당신이 자식들에게 폐만 끼친다고 넋두리한 적이 있다. 그때도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었고 뭐 그런 생각을 하시냐고 무심히 대꾸했다. 나중에 부모님께서 아예 연세가 드시고는 이런저런 병원비와 생활비 부분이 동생과 내 몫이 되었다.
육십 대를 지나 칠십 대의 엄마는 점점 더 건강이 나빠져 입원과 퇴원이 잦았고 허리디스크 수술, 고관절 수술을 거치며 거동이 불편해져 70대 초중반쯤엔 장애등급을 받았다. 엄마가 육십 대 중반쯤 내가 이직을 하며 서울살이를 하는 통에 엄마의 건강과 관련한 입퇴원을 남동생이 도맡아 내내 마음의 짐이었다. 팍팍한 서울살이에 경제적으로도 힘든 때라 동생의 수고가 여러모로 컸다.
하나 도움이 된 건 2017년쯤인가, 이리저리 알아보고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던 이동지원서비스 '나들이콜택시'를 신청했던 건 두고두고 잘했다 싶다. 시내 안에서는 어지간한 거리의 요금이 1천 원대이고 멀어야 3천 원이 안 되니 부담 없이 택시를 탈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운전을 못 하시게 된 뒤로는 거의 집에만 계셨는데 "갑갑하면 한 번씩 택시 불러서 너희 아부지랑 저기 화원유원지에 가서 바람 쐬고 온다"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좋았다. "응, 응. 엄마. 자주자주 나들이 타고 아부지랑 바람 좀 쐬요!"
부모님께서 칠십 대 중반쯤에는 나도 대구로 돌아와 그나마 동생의 짐도 조금 덜고 나도 마음의 짐을 좀 덜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잦은 입퇴원과 건강 이슈에 내 마음이 생각보다 금방 지쳐서 나도 놀랄 정도였다. 그러니 때로 한없이 다정하게 굴다가도 금방 한없이 뾰족한 마음이 되었다. 한 번은 엄마가 "돈 좀 펑펑 써봤으면 좋겠다" 하시는데, 갑자기 못 견디게 분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요양보호사 비용이나 불규칙하게 언제 부담이 될지 모르는 병원비, 목돈이 들어가는 가전제품(엄마는 물건은 제대로 된 걸 사야 하는 성미셨다) 구입 같은 것이 내게는 일상의 부담이었는데 엄마는 뭐 그런 말씀을 하시나 싶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용돈을 충분히 드리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속 지친 딸내미라 '노인이 뭐 그래 돈 욕심이 많으신가, 지금도 아예 안 쓰시는 것도 아니면서...' 생각하며 그저 어이없어하기만 했다.
2년 전 구정 전날 돌아가신 엄마는 구정 전날 밤 11시 이후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 낼모레면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온갖 생각을 곱씹는데, 얼마 전에는 엄마가 "돈 좀 펑펑 써봤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야, 퍼뜩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때는 그 연세에 뭐 그리 돈 쓰고 싶은 일이 많은가, 속 좁게만 생각했는데, 요즘 명절을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퍼뜩 '아,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싶다.
명절이 오니 이 사람, 저 사람, 챙기고 싶은 사람이 많다. 이번에 초등학교 졸업하는 조카도, 대학교 졸업하는 절친의 딸내미도, 늘 응원해 주시는 친한 언니랑 형부도, 친한 선후배, 가족, 외숙모, 사촌 오빠, 동생도, 친한 친구, 선배, 후배, 동료들... 고맙고 챙기고 싶은 사람이 끝도 없다. 돈 좀 맘껏 써서 그네들이 뛸 듯이 좋아할 최고로 좋은 것으로만 안겨주고 싶다. 그러며 엄마가 절로 떠오른다. '아, 엄마는 걱정 없이 부담 없이 마음껏 베풀고 싶었구나'
경제 활동은 일찌감치 끝난 노인이, 병원비로 자식들한테 신세만 진다 싶은 늙은 엄마가, 그래서 자존감을 내려놓아야 했던 자존심 높던 사람이 했던 말이구나… 뒤늦게 알 것 같다. 엄마의 오빠, 동생,조카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녀, 손녀, 고마운 동네 사람들, 딸내미 아들내미 며느리에게 얼마나 돈 좀 펑펑 쓰고 싶으셨을지... 퍼뜩, 알 거 같다. 젊을 때는 누구에게 뭐도 사주고 누구에게 뭐도 사주고 펑펑 쓰며 살았었다는... 어느 날 귓등으로 들었던 엄마의 '옛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내내 가난했던 엄마의 짠한 마음을 일찍 알아봐 주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는 요즘은 또 어떤 마음을 놓치며 살고 있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또 한 해가 흘렀다. 마음이, 아니 마음에 무심해지는 어른이 되지 말자고… 두서없는 생각을 하며 때늦은 다짐을 한다.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연재 브런치북은 20화로 마무리 짓습니다.
그동안 읽어 주신 분들께 배꼽 인사를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