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한 것을 후회합니다
여자는 어이없었다. 여전히 그 남자만 좋았으므로.
매번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곳저곳 세상 구경을 하던 남자가 어느 날 문득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남자와 여자로 만나 함께한 시간이 아니었으니 이별 또한 남녀로서의 모습은 아니었으나 마지막 순간 쓸데없이 여자가 가져야 했던 모멸감으로 이후 그들은 함께할 수 없었다. 친구로서 함께 보낸 시간이었으나 더는 친구로서 함께할 수 없을 만큼 상처는 지독했다.
남자가 누군가의 남편도 되고 아이들의 아빠도 되고 그렇게 아기자기한 인생을 사는 동안 여자는 좀 씁쓸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인연을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었는데 여자의 내상은 꽤 깊어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덧나고 가라앉고 곯기를 반복하느라 할 수 없이 치유의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곯은 것이 마침내 터지고 딱지가 앉고 그러고도 한참을 빨갛게 부어있던 상처가 무사히 아물어 그 딱지마저 떨어질 무렵, 남자가 다시 여자 앞에 나타났다. 어리석고 어렸던 옛날이었다고. 이제야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뒤늦게 말하는 남자의 눈물이 여자의 손등을 타고 흘렀다. 여자는 다 부질없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사실을 말했다. 남자가 생각하는 지난 세월과 여자가 생각하는 지난 세월이 달랐으나 그것을 가리는 일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어쨌든 둘 다 어리석고 어리석었던 것은 사실이다.
참고, 참고, 참다… 그래도 안 되면, 도저히 안 되면 그때는 볼 수 있냐는 남자에게 여자는 담담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여자의 삶에서 그와 함께한 2,500여 일과 치열히 그를 지워나가야 했던 이별 후 2,500여 일이라는 긴 세월이 한순간에 무색해졌다. 어이없게도, 여자는 여전히 그 남자만 좋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