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어른의 즐거움

우치다 다쓰루 《무지의 즐거움》

by 김편

미즈카미 쓰토무 《흙을 먹는 나날》

'거실생활자 김편집'이지만 간혹 책상을 벗어나 글쓰기 수업도 하고 독서 모임도 참여하며 즐기는 소소한 시간도 있다. 오랜만에 외출했다가 우연히 동네서점 앞에서 반가운 어른을 만났다.

60세가 넘어 뒤늦게 대구에서 서울을 오가며 문학치료 박사 과정을 시작하신 김 선생님이신데 지난 봄, 학기를 모두 수료하시고 지금은 논문을 쓰시며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도서관에서 독서문화강좌 수업을 하신다. 마침 수업을 마치고 수강생 한 분과 함께 서점에 들르신 중이란다.

수강생이라는 분도 만만치 않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시고 명예교수로 퇴직하셨는데 김 선생님의 옛이야기 수업을 듣고 있으시다. 서점 바로 옆 시장에서 사 온 김밥과 고추튀김, 오징어튀김을 점심으로 먹고 차도 한 잔 나누며 유쾌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교수님의 전공이었던 유전과 생물학 관련한 이야기도, 지금 지역 도서관에서 동화구연 자원봉사를 하며 '꽃모자 할배'로 불리신다는 이야기도, 이번 달 구청 잡지에 명품 이웃으로 소개된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취미로 3년째 배우고 있는 연필화 이야기를 하시며 휴대폰에 저장된 그림을 보여 주실 때는 감탄의 박수가 절로 터졌다. 유쾌한 어른들을 만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가 오갔다.

시간과 여유가 있어도 그 시간과 여유를 제대로,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뜻대로, 그 시간과 여유를 톡톡히 즐기며 재미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이 경제적 여유에 따른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조금 생각이 바뀌고 있다. 노년에 가장 필요한 것 세 가지가 돈, 건강, 친구라고 하는데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건 배움, 배움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배움의 즐거움

늦가을출간된책.jpeg <무지의 즐거움> 사람도 나무도 익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낙하와 열매맺기가 필요하다. ⓒ 김은경


<무지의 즐거움>을 쓴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자기 쇄신 없이는 인간은 성숙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그릇된 점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하는 쇄신의 어려움은 세상살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해내야 제대로 사는 것이겠구나, 요즘 자주 생각한다. 여기서 "제대로"는 훌륭함이라든가 완성도의 문제는 아니다. 우선은 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알고, 그래서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도 제대로 알며 살고 싶다는 것, 내 주위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배움, 공부라는 걸 수시로 깨닫는다. 불과 어제도 독서 모임 후 저절로 내뱉은 말이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나 봐" 하는 푸념 섞인 한탄이었다. 푸념 섞인 한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건 그 일이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조금 세상을 산 어른이라는 것이다. 연륜이 주는 여유와 배짱이 그 어려운 일도 즐기며 할 수도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덕분이다.

"자신이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일, 자기가 가진 틀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을 기뻐"하는 이유는 "그 일이 자신의 이해와 설명의 틀을 한 단계 성장시켜 주기 때문"이라는 자세를 가진 우치다 다쓰루 선생.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활짝 트인 대청마루에 앉아 소나무도 보고 진달래, 개나리, 목련, 야생화도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상쾌하고 유쾌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곰곰이 생각에 잠겨 멍때리다 보면 희망적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즐거운 것이 배움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의 목록을 길게 만드는 것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을 길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인간의 지적 성장에 좋은 일일지 모릅니다."

- <무지의 즐거움> 본문 중에서



"어른이 되어 달라"는 당부

KakaoTalk_Photo_2024-12-18-21-03-28 003.png 한국에서 선출간된 <무지의 즐거움> 온라인 북토크 '배움에는 끝이 없다'에서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은경


이 책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일본의 저자이지만 한국에서 선출간된 책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출판사에서 먼저 기획해 우치다 다쓰루 선생에게 제안해 나온 책인데, 한국의 편집자와 박동섭 역자께서 고심하여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25가지 질문을 했고 거기에 우치다 다쓰루 선생이 답한 내용을 엮었다.

가령,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각자의 공부거리를 찾아야 할지에 관한 조언, 진정한 자아와 아이덴티티에 관한 내용, 쓸모 있는 배움이란 무엇이고 '학술'의 본질은 무엇인지,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등의 질문이었는데, 저자는 이전에 일본 미디어로부터는 받아 본 적 없는 질문들이라 놀랐다고 한다.

나는 올해 가을 초입 크로스 교정 단계에서 잠깐 작업한 정도이지만 처음 기획부터 원고를 받고, 11월 초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출판사와 저자 모두 어지간히 애를 썼구나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요청도 잊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어른이 되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자신의 일인데, 우리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른이 되어 달라'고 간청해달라는 것이다.

어른. 자신의 무지를 무구하게 받아들여 오랫동안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사람, 지난날의 낡은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평생 배우고자 하는 것이 많은, 지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걸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청해달라는 것이다. 진심 그 간청에 동참하고 싶고 나 또한 그런 어른이 되어가기를 진심 바란다.

우연히 동네서점 앞에서 만난 두 분은 은퇴 후에도 끊임없이 배울 것을 찾아 지적 성장을 멈추지 않는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무엇을 배우고 있냐의 문제를 떠나 끊임없이 주변을 들여다보는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장소나 수단에 얽매이지 않고 배우기를 즐기는 어른의 자세가 진짜 어른의 덕목이 아닐까.



"한국 국민들의 성숙한 모습에 경의"

한편 지난 9일 우치다 다쓰루 작가의 온라인 북토크가 열렸다. 12월 3일 한국에서 있었던 초유의 비상계엄령 사태와 계엄령 해제의 경과를 지켜보셨는지 그 비상 사태에서 "한국 국민들의 성숙한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고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날 북토크에서 인상깊게 남은 말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줌인, 줌아웃, 초점을 자유자재로,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다양하고 다각도로 볼 수 있는 것이 배움의 자세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말과 "언제든 평상시와 비상시가 있을 수 있는데 각각의 상황에 모드를 달리할 수 있어야 하고 비상시에 그에 맞추어 코드 체인징을 해야할 때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러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직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모드에 맞추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누구도 상상도 못했던 사태에 직면했던 12월 3일 밤, 즉각 국회로 달려가 맨몸으로 군인과 장갑차에 맞섰던 깨시민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눈앞에서 일어난 비상시의 일에 즉각 무슨 일인지,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곧바로 행동할 수 있었던 '깨어 있는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KakaoTalk_Photo_2024-12-18-21-03-29 005.jpeg 2024년 12월 14일, 탄핵 표결에 앞서 대구 동성로를 가득 메운 대구시민들 ⓒ 김은경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편집의 책산책'에도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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