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김영옥, 이지은, 전희경,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돌이켜 보니 30대 중반쯤부터 시시때때로 했던 말이다. 주로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 술자리 다음 날이었다. 지난밤으로 인한 피로감을 하소연하며 20대에는 밤새워 놀아도 다음 날 멀쩡했다며 동료들과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마흔이 되니 정말 그때의 말들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한 말이었구나 싶었다. “옛날에 몸이 예전 같지 않니 어쩌니 그랬잖아? 정말 마흔이 되니... 야, 진짜 그건 뭘 모르고 한 소리였어. 이젠 정말 죽었다 깨나도 밤샘은커녕 새벽 1, 2시도 못 버텨” 하는 말을 또 뭘 모르고 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로 접어드니 그런 말은 아예 쑥 들어갔다. 그저 피곤하고 못 견딜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몸은, 아주 구체적인 통증으로 단계별로 존재감을 증명했다.
처음 시작은 ‘나만 아는’ 고통이다. 괴롭지만 일상에서 크게 표 나지 않는 정도다. 그저 조금 무리한다 싶으면 금방 목이 부어오른다거나 비염이 심해진다거나 없던 알레르기가 생기니 인후염이니 편도염이니 비염이니 하는 병명으로 각종 염증약이 가방에 수시로 등장하는 정도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냥 좀 “죽을 것처럼 피곤”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구체적인 진단명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원인은 모두 “면역력이 떨어져서” 혹은 “과로나 스트레스”로 그렇다는, 그래서 뭐 어쩌란 것인지 싶은 이유들이다. 이런 것들은 족저근막염이니 결막염이니 하며 출몰하는 지점에 따라 이름만 달리하며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다. 염증과 더불어 사는 몸이 된다고나 할까. 그래도 앞서 말했듯 이때까지도 그저 나만 아는 고통이다. 표시 내지 않으려면 안 낼 수도 있고 나 이렇게나 피곤하오, 하듯 약봉지를 꺼내는 정도로 엄살을 좀 떨고 싶으면 떨 수도 있다.
그러다 아주 구체적으로 진짜 내 ‘몸’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40대 후반 무렵인 것 같다. 20대나 30대에도 우리는 아프다. 특별한 질병은 제외하고 ‘그 정도는 나도...’ 하는 경우를 말한다. 감기몸살로도 아프고 두통으로도 아프고 어디 한 군데 찢어지거나 부러져서 아픈 경우도 있다. 그때는 대개 끝이 있다. 어떠어떠한 치료를 받으면 언제쯤 낫는다는 끝. 내가 내 ‘몸’을 새삼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제 완전히 낫는다는 건 없고 계속 이렇게 아프다 말다 또 아프다 그러겠구나, 시시때때로 불편하겠구나, 수시로 괴롭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어느 밤이었다.
어깨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점점 괴롭더니 특정한 각도로 팔을 쓸 수가 없었다. 웬만한 괴로움이 아니고는 병원에 잘 가지 않는 편인데 내 발로 병원을 찾았다. 그만큼 괴로워서 갔는데 ‘어깨 충돌증후군’이라고 했다. 곧 죽을병은 아니란 말이다. 처음 갔던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연이어 3번 맞으니 신기하게 통증이 싹 사라졌다. 한 6개월쯤 통증 없이 살았는데 다시 되살아난 통증은 더 심해져서 팔을 움직이는 것도 괴롭고 밤잠도 설칠 정도가 되었다. 자다가 ‘아, 아ㅡ’ 괴로운 통증에 몇 번을 깨며 생각했다. ‘병원에 또 가야겠네. 그런데 스테로이드 성분 주사를 이렇게 계속 맞아도 되는 건가?’ 그런 의구심에 다른 병원을 찾았고 이후 도수 치료니 체외충격파 치료니 하는 치료법들을 전전했는데 큰 차도가 없어 어느 순간 병원 치료는 포기해 버렸다.
밤잠을 설칠 정도로 괴롭지만 밤잠을 설치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니 미루기가 가능한 것 같다. 그 결과 아직도 불편한 밤을 보내고 있다. 어둠 속에서 서너 번 잠을 깨는데 그런 밤들을 보내며 처음으로 내 몸이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어깨, 어깨의 어느 부분, 여기, 저기, 그래 거기.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을 짚으며 대체 왜 그럴까를 생각하기도 하고 근육이, 뼈가, 힘줄이 대체 뭐 어떻게 되었길래 이렇다는 것인가 궁금해하기도 하고 그러다 우리 엄마의 70대를 생각했다.
할머니가 된 엄마는 언젠가부터 관절염이니 류머티즘이니 하는 병명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일상이 괴로웠다. 밤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낮도 괴로운, 통증이 일상인 노년의 날이었다. 상대적으로 관절이 건강한 아버지의 일상과 비교하면 불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리가 아파서, 손가락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고 이곳저곳 놀러 다니기에도 불편하니 생활 반경이 매우 좁았던 건 물론이다.
“내 마음대로 훠이훠이 다니면 얼마나 좋겠냐”던 엄마의 말이 짠하고 안 돼서 그때 꽤 마음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정말 그 고통의 십 분의 일도 몰랐구나 싶다. 매일매일 아픈 어깨가 생기니 어느 순간 ‘아, 이젠 노화 단계로만 이어질 테니 이런 데가 어깨가 됐다가 무릎이 됐다가 허리가 됐다가... 계속 이어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드니 ‘아, 엄마는 이런 밤과 낮을 매일매일 겪었겠네’ 싶어서 또 몰랐던 것을 뒤늦게 짐작하며 먹먹했다.
나이가 드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더 나아질 일 없이 하루하루 고장 나는 몸을 하나씩 알게 된다는 것. 언제나 내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대로 내 것일 몸인데 그동안 내 ‘것’인 것이 이토록 선명히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게 내 몸을 자각하고 있는 날들이다.
그렇게 자기만의 우주를 누리던 저 숱한 새벽 세 시의 시간들은 이제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몸이 우리를 데려가는 시간으로 바뀐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중
젊은 날, 각자의 감성으로 공상으로 고민으로 “자기만의 우주”를 누리느라 잠 못 들었던 새벽 세 시의 시간은 이제 다른 의미로 나이 든 우리를 잠 못 들게 한다. 처음 겪는 생소한 감각을 던지는 그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 바로 몸이다. 어느 밤엔 아직은(?) 멀쩡한 손가락을 쫙 펴보며 너도 설마 언젠간 내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거냐, 물어본다.
밤에 불빛이 번져 보이기 시작하는 눈을 느끼고, 점점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카락을 보고, 조금만 오래 서 있었다 싶으면 끊어질 것 같은 허리가 부담스럽고, 가끔 징- 하는 이명이 들리는 귀에 당황하고, 불규칙해지는 생리 간격이 낯설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보이고 알게 되면 몸이 이끄는 “미지의 세계”로 한 발, 발을 내딛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온몸의 구석구석이 하나하나의 실재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 어느 곳이든 앞으로 내게 고통을 주고 위협이 될 수 있는, 모든 내 몸.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에서 기획한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여는 글에서 “몸으로 사는 삶에 대하여”라는 표현을 보는 순간 그 표현이 그대로 내 몸을 관통했다. 그만큼 직관적으로 와닿은 말이다. 내 몸의 각 부분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서 내 삶의 많은 부분이 ‘몸 상태’에 따라, 몸이 허락하는가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일은 하고 싶어도 체력이 안 되어서 거절해야 하고, 어떤 일은 컨디션이 괜찮아 가능한 일들이 생긴다. 열정과 용기와 치기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이제 내 나이는 몸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질병은 아픈 사람의 책장도 바꾼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중
어떤 식으로 펼쳐질까.
모를 일이다. 저마다 모두 다를 이야기.
꿈꾸고 원하고 욕망하고 쾌락하며 꽂혔던 책장의 책이 어느샌가 건강 상식과 특정한 질병 이름과 나이 듦에 관한 책으로 채워진 것을 발견하게 되는 기분은 어떨까. 그렇게 이룩되어 온 자신을 발견하는 어이없음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를 일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
어렴풋하지만 점점 자연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이루고 싶었던 꿈과 그를 위해 애쓰고 달렸던 노력 그리고 좌절과 성취, 사회적 존재로 살며 거둬들이고 가졌던 이런저런 정체성 따위는 아무것도 개입하지 못할 우리의 ‘몸뚱이’ 들을 생각하니 그 어느 때보다 자연에 가깝게 느껴졌다. 알몸으로 세상에 나와 본능에 따라 살던 그때의 모습처럼 이제 다시 몸으로만 삶을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싶었다.
자연으로 돌아간다거나 자연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라고 해서 편하다거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자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비자연적인 존재로 오래 살아왔다. 여전히 몸의 통증이 잠을 물리치면 어둠 속에 앉아 더 나빠질 앞으로의 밤을 걱정한다. 그러니 덜 나빠지려면, 더 천천히 나빠지려면 지금 더 잘 살아야 돼, 하고 다짐하는 것도 부질없다. 이미 생각이나 이론 따위는 끼어들지 못할 만큼 당장 느껴지는 아픈 몸으로 살다 보면 내가 사는 사회의 평등과 불평등을 생각하고 의료체계를 불안해하며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뾰족해지기도 한다. 그러다 내 심장이 타협해 그나마 나를 다독여준 것은 라이너 쿤체다.
땅이 네 얼굴에다 검버섯들을 찍어주었다
잊지 말라고
네가 그의 것임을
-라이너 쿤체, <늙어> 전문
그리하여 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있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나는 좀 편해졌다. 아니 많이 안도했다. 당장 느껴지는 통증이 여전히 괴롭고 불편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 아직은 덜 아파서 뭘 몰라서 20대, 30대, 40대를 거치며 했던 어리석은 말에 또 하나를 보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을 해놓으면 내 “미지의 세계”에 여유를 좀 확보해놓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그의 것임을 잊지 않으며 마침내 그에게 가서 포옥 감싸일 어느 날을 생각하면 이런 순간들마저 좀 애틋해져서 마음을 조아리게 된다.
**인용글 출처:
김영옥, 이지은 외 1,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봄날의책, 2020)
라이너 쿤체 <나와 마주하는 시간>(봄날의책,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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