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때로 용기를 내볼 용기

제2화.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

by 김편

1인 가구로 십여 년을 넘게 살았는데,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운을 떼면서도 좀 하찮고 유치하다 싶지만… 가령, 악몽에서 퍼뜩 깨서 어둠 속에 혼자 있을 때의 무서움 같은 거다.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니고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할 걸 뻔히 알고 있는데도 그 뭉근한 전율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도 허상에 떨다니… 빨리 빠져나와”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좀체 그 저릿한 무서움은 익숙해지지 않아서 닥칠 때마다 매번 무섭다. 그럴 때 아쉬운 것이 사람의 온기이다.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살갗과 살갗이 맞닿을 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고플 때가 있다. 하지만 폭신한 사람의 품속을 조금만 헤집으면 금방 사라질 무서움을 어른이 되면, 1인 가구를 선택했다면, 그 정도쯤 혼자 해결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애디 무어는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다.” -7쪽


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날 그녀 애디 무어는 선선한 저녁 무렵의 거리를 걸어 루이스 워터스의 집으로 간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한 그에게 백발이 성성한 그녀가 제안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9쪽


터무니없는 제안에 루이스는 의문과 더불어 경계심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별 호들갑 없이 차분한 대화가 이어지는 건 아마도 이들이 한 동네에서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이웃인 만큼 서로를 안다는 신뢰 때문이었을 것 같다. 누군가와 매일 소통하거나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알 때가 있다. 동네 혹은 커뮤니티에서 띄엄띄엄 소식으로만 알던 사람이지만 오랜 세월이 쌓이면, 그렇게 가끔 들리는 소식이 쌓이면, 저절로 생기는 믿음도 있는 법이다. 훌륭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인 건 내가 안다, 하는 정도의 존중이랄까. 아마 루이스와 애디는 그렇게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어쨌건 ‘잠’이 어려워진 노년의 밤을 조금은 수월히 견뎌내기 위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마음 깊은 속에서 밑도 끝도 없는 허전함이 차오를 때가 있다. “2% 부족”한데 당최 영문을 알 수 없고 심지어 그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그런 밤, 우연히 이 책을 펼쳤다가 두 주인공의 우아한 관계 맺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두 주인공의 믿음과 우정이 차츰차츰 쌓여가는 과정에 함께 젖어들며 ‘노년’이라는 인생의 단계와 ‘사랑’을 상상했다.


마흔 중반에 접어들었을 즈음 친구와 나이 먹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데 결혼하고... 애들 크는 거 보고... 그런 것도 뭐 나쁘진 않은데 이제 옛날에 연애하던 때처럼 가슴이 막 설레고 두근두근하고 그럴 일은 없겠다 싶어서 그건 좀 그렇더라. 이제 진짜 그럴 일은 없겠지?” 하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나 또한 비혼이지만 먹을 만큼 먹은 이 나이에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듯 쿵쾅대고 설레어 얼굴 붉어질, 그런 일은 이제 없겠다 싶어서 덩달아 좀 허전해졌고 쓸쓸했다. 그건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 이젠 좀 무뎌져버린 것 같은, 세월에 바랜 가슴과 감성에 관한 안타까움의 문제다. 설렘도, 화도, 긴장도, 기쁨도, 어느 때부터인가 그 강도가 좀 약해졌다는 걸 느낀다. 심장이 벅차게 기뻐하고, 머릿속이 얼어붙는 듯 분노하고, 당장 세상이 끝장날 듯 슬퍼하던 가슴이 언젠가부터 ‘덜’ 그렇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다. 그러니 그런 무뎌진 가슴으로 무슨... 나이 먹어서 그렇게 가슴이 뛰면 차라리 좋겠다며 친구랑 웃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쓸쓸한 일이다.


그 남자 루이스와 그 여자 애디는 이제 밤을 함께 보낸다. 저녁 무렵이 되면 루이스는 간단한 세면도구와 잠옷을 챙겨 애디의 집으로 향한다. 천천히 잠자리에 들어 쉽게 잠들지 못하는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서로의 인생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 젊은 날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눈다. 새벽이 오면 루이스는 천천히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걱정스러운 것, 기대되는 것, 섭섭한 것, 고마운 것... 상념으로 가득해지는 밤의 어둠 속 시간은 한없이 느리고 고요하다. 그 고요는 가끔 막막함이나 고독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사정없이 떠밀기도 하는데 그럴 때 자기 것이 아닌 남의 체온이 곁에 있다면 그 따뜻함을 부여잡고 밖으로 기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영원한 동지를 꿈꾸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깨 한번 다독이고, 손 한번 잡고, 눈 한번 맞추며 씩 웃는 짧은 순간에 마음은 닿는 법이다. 마음이 닿는 일이 잦으면 외로워 망가져버리는 영혼은 없겠지.


"여기 깃든 우정이 좋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요. 밤의 어둠 속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102쪽


밤에 우리 영혼이 이렇게 잠들고 안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지 않을까. 신뢰가 바탕이 된 잔잔한 관계는 부럽기도 하고 나도 갖고 싶다. 애디와 루이스처럼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 그 시간에 깃든 우정이 좋은 관계가 가능하다면, 그래서 충분히 ‘그냥 좋은’ 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결혼이라든가, 동거라든가, 하는 삶의 방식과도 다른 이야기다. 말을 늘어놓다 보니 그런 ‘존재’에 허기마저 느껴진다.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히 서로를 지켜봐 주며 언제라도 어깨를 다독이고 손을 잡을 수 있는 존재라고 하면 너무 판타지인가. 그런 걸 친구라고 불러도 좋고 연인이라 불러도 좋다. 삶에 그런 복이 있다면 좋겠다.


“네가 수치스럽다. 애디가 말했다. 할 말이 없어. 이 모든 게 구역질이 나고 한없이 슬프구나.

“저 사람을 만나지 마세요.” -179쪽


내게 충족감을 주는 행복한 일을 누군가가, 심지어 내가 애정을 주었고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무지막지하게 재단해 진창인 상황으로 정의한다면, 당연히 그 모든 상황이 구역질 나고 또 한없이 슬플 것이다. 동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하고 자식이나 그들의 지인 사이에서 말이 오가는 불편한 상황을 무릅쓰게도 되지만, 이제 그런 건 별로 개의치 않게 된 나이의 주인공들은 나름 현명하고 품위 있게 일상을 잘 꾸려간다.


그리고 사랑도 한다. 함께하는 시간에 교감하며 동지애가 생기고 서로가 무리 없이 스며들면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언가.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안타깝게도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맙소사. 칠십이 넘은 나이에 시작된 행복도 영원해지기는 이리 어렵다.)


이들이 택한 “평범하지 않은” 행복의 방식은 결국 벽에 부딪힌다. “평범하지 않은”이라는 표현이 내포한 의미는 타인과 방식이 다르고, 달라서 눈에 띄고, 눈에 띄어서 누군가는 거슬려한다는 의미다.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때로 잔인해진다. “남들은 안 그래. 누구도 안 그래.” 하는 식의 말로 가차 없이 남의 삶의 방식을 재단하는 무례도 범한다.


이 소설에서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복을 궁리했던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해 가장 치명적인 무례를 범하며 중단할 것을 요구한 존재는 자식이다. 결국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애디 아들 진의 표현에 따르면 “슬그머니 기어들어오는 꼴”로 이어나간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이 모두 그렇듯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그저, 이러나저러나 계속 이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에고, 그렇지 뭐' 하고 그저 씁쓸하다고만 하기에는 두 사람이 보냈던 그 밤들의 고요와 깊은 어둠을 감싸며 흘렀던 이야기가 너무 반짝이고 따스하다. 이 책에는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특유의 속도가 있는데 어쩌면 그 속도는 두 주인공의 나이와 품위의 속도 같기도 하다. 그 유유한 시간 속에서 나이 듦에 관한 생각이 절로 드는 건 현명함과 여유와 품위는 물리적 나이와 상관없이 구축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왠지 낙심에 차 책장을 덮는데 희한하게도 새삼 두 사람이 보냈던 그 밤들이 반짝이며 덮쳐와서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첫 장을 펼치게 했다. 애디 무어가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던 "오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바로 전의 저녁" 시간이 다시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루이스는 그 저녁 무렵의 거리를 걸어와 자신의 집 문을 노크하고 제안을 해 준 그녀의 행동을 ‘용기’라고 표현했다. 육체적 한계로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가고, 그로 인해 체념과 고독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나이 먹은 언젠가의 나도 그저 '조금 더 나은' 일상을 위해서라면 그토록 용감해질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누구의 시선도, 어떠한 통념도 개의치 않고 오직 내 행복만을 위한 행동을 실천으로 옮기려 용기낼 수 있을까. 그런 용기가 과연 있을까.


애디의 용기가 내게 인상 깊었던 건 삶을 바꿔 줄 대단한 충족감을 성취하기 위해서라거나 위대한 사랑을 이룩하기 위해서라거나 하는 거창한 명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조금 더 나아질지도 모를, 혹은 아주 조금 더 기대할 뿐인 일상을 위해 특별한 용기를 냈다는 것 때문이다. 어떤 나이의 나일지라도 내 삶을 지치지 않고 가꿀 마음과 그 마음을 위한 용기가 그 정도는 남아있으면 좋겠다.



**인용글 출처: 켄트 하루프 <밤에 우리 영혼은>(뮤진트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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