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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Jan 30. 2021

1-7) 상담원에서 상담사로 그리고 팀장으로

KT를 다닌다는 말에, 그럼 114에 전화하면 네가 받는 거야?라고 물어본 친구가 있었어. 

난생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친구의 뺨을 아주 세게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어.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내게, 몇 년 전 퇴사를 한 나의 전 매니저이자 오랜 동료이며, 내 인생의 든든한 조언자이신 분이 자신의 소싯적 이야기를 거진 한 시간 가량 이어진 전화로 들려주었다.

 두세 시간을 콧물 눈물범벅이 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전화 통화를 하던 나는 그 말에 빵 터졌다. 늘 매사에 신중하고 긍정적이며 밝은 에너지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시던 분께서 친구의 뺨을 그것도 아주 세게 후려치고 싶었다는 얘기를 듣다니 색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이 나라엔 묘하게 그러던 때가 있었다. (혹은 아직...)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생에게 '고기 1인분 더 추가' 혹은 '여기 사이다 한 병'이라고 뒤엣말을 생략하던, 114든 어디든, 전화로 상담받을 때는 쉽게 버럭 화를 내기도, 짜증을 내기도 하던, 서비스 센터에 가면 온갖 삿대질과 욕설이 난무하던, 그런 시절을 견디고, 우리는 법적인 보호를 받는 상담원이 아닌 상담'사'가 되었다. 


 난 꼬박 4년을 상담사로 근무했고, 2년을 중간 관리자로, 그 뒤로 지금까지 4년은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많은 고객을 시간 내에 응대했고, 좋은 고객만족도를 받아 부끄럽게도 몇 번의 수상도 했다. 내 주변에는 그런 동료들이 참 많다.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이메일 답변이나 채팅 상담을 주로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회사였고 꽤나 고객지원 측면에서는 알아주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입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했다. 그 마음만큼 정말 열과 성을 다했다. 하루 종일 많은 고객들과 채팅, 이메일 상담을 했고, 퇴근 시간 뒤에는 꼭 남아서 선배들의 답변을 참고서 삼아 나의 답변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같은 문의에 대한 답변일지라도 새로운 고객에게 보낼 때엔 반드시 다시 해당 고객의 상황에 맞게 수정하여 답변했고, 계절마다 날씨마다 혹은 그 날의 나의 마음에 따라 인사말과 맺음말을 수정했다. 간혹 타사에 문의를 넣어 어떤 문장들을 주로 사용하고 어떤 뉘앙스를 쓰는지도 검토했다. ‘넛지’라는 책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장 기법들을 차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글쓰기 서적을 구매하여 공부하고 후배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노하우도 차곡차곡 정리해나갔다. 명절이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엔 고객분들께 맞춤 답변을 해드렸고, 간혹 정말이지 간혹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고객을 만났을 때엔 일반적인 답변 뒤에 일주일 후 혹은 명절 때 맞춰 안부 인사를 전하곤 했다. 이는 단순히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회사가 시스템을 고안했을 때 의도한 내용들을 큰 거부감 없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노하우가 필요했고, 거진 1년 가까이 이용한 상품을 환불해달라는 억지스러운 불만에도 예의를 갖춰 불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부드러운 언변이 체득화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결코 빼놓지 않는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고객들의 불만이나 불편사항들을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담당부서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수정이 필요한 오류 사항들을 체크하여 리포트했으며, 타사의 동향도 파악하여 비교 분석했고, 이를 다시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나 혼자만의 성장이 아니라 기업 측면에서의 성장도 간절했다. 이를 통해 나를 만난 모든 고객들이 우리 회사를 우리 제품을 사랑해주길 진심으로 바랬다. 


우리는 누구나 총이 될 수 있는 말을 지니고 있다


 전화상담에 투입되었을 때에는 마음에 생채기가 더욱 자주 났다. 처음 교육을 받으면서 했던 상담에서 생전 처음 “시*년아”라는 욕을 들었고,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쌍욕을 들었다. 맹세코 고객이 원하는 무분별한 요청에 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들어야 했던 욕들이었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팀장이 되었을 때 나는 팀원에게 걸려온 욕설 전화에 당당히 경고를 날릴 수 있었고, 팀원들 마음에 새겨질 생채기를 대신 받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기 어려워한 친구들은 회사를 떠났고, 부서를 떠났다. 


 다행히 아직까지 우리 회사는 고객지원팀이 많은 분야에 깊이 있게 관여하고 있고 그런 자격이 보장되어 있다. 고객들의 불만을 응대하거나 불편을 일시적으로 해소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스템에 전반적인 개선사항들을 정리하여 각 부서와 미팅을 갖고, 고객응대로 다져진 혜안을 통해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나 프로세스 설립 등에도 많은 이바지를 하고 있다. 개발부서는 주기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고객지원팀의 의견을 수렴하려 하고 있다. 개발부서, 비즈니스 부서들과 풀어나가야 할 숙제는 많지만, 고객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명확히 이해하고 간파하여 실천할 수 있는 과제로 도출해낼 수 있는 부서는 고객지원팀이라는 신념은 아직도 내 안에 굳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회적인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 내 다른 부서에서도, 더더욱 인사부서에서도 고객지원부서를 얕게 보는 직원들이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상담원을 상담사로 칭하는 것, 법적인 보호를 받게 하는 것뿐 아니라 실질적인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요즘엔 고객 경험 매니저, 고객지원 매니저 등으로 호칭을 변경하는가 하면, 곳곳에서 CS 혹은 CX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질적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러한 보상을 해주려는 곳은 흔치 않다. 이부터 달라져야 한다. 


 또한 우리는 고객 된 입장에서 이들을 응원해야 한다. 고객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듣고 화답하며 회사로 전달하는 팀과 그 역할에 대해서 고객 스스로가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그 위상을 높여주어야 한다. 고객과 접점에서 정보와 감정을 교감하는 부서가 그만한 권리와 위상을 갖고 있어야 고객의 이야기가 실제 적용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단순한 불만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들의 역할이겠지만, 단순한 불만이 그저 강한 클레임 수준으로 그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정도는 현명한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 형제들의 CEO는 이런 말을 했다. 상담사가 행복해야 고객이 행복하다. 이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외주업체에 CS를 맡기다 Inhouse 시스템으로 고객지원팀을 받아들였고, 300명이 넘는 직원들에게 최고의 복지를 선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많은 업체들이 고객지원을 외주업체에게 할당하는 것에 비하면 큰 결심이 아닐 수 없다. 

 

 고객지원부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들에게 정말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제안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그들의 손에 쥐여주고 있는지는 각 기업이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현대 사회의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서비스를 받을 때와 서비스를 제공할 때 각각 다른 태도로 임하고 있을까 같은 태도로 임하고 있을까.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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