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백 Feb 18. 2021

초라한 사랑으로부터의 도망


 내가 살아낸 어떤 것도 부끄러워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흔적들과 생채기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생각하기로 했고, 부족한 대로 나 자신을 사랑해보자는 다짐도 함께였다. 그런 나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지나간 사랑들의 흔적이었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사랑이 그들의 것에 비해 너무도 얇고 가벼워 늘 무너진다. 그뿐이랴. 내 못난 과거의 사랑들이 참으로 부끄럽고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내 사랑은 지고지순하지 못했다. 사랑 사랑 노래를 부르다가도 더 가까이 손 닿는 이에게 옮겨갔다. 한없이 그리워 기차 타고 왕복 4시간을 하며 만난 인연이었어도, 장미꽃 한 다발 품에 안고 서울에서 아산으로 데리러 오던 사랑이었어도, 갈비 사 먹을 돈이 없어 나는 이별을 고하고, 언제든 먹고 싶은 것을 사줄 수 있는 이에게로 옮겨갔다. 내게 없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이에게 끌렸고, 분위기에 취해 만나기도 했고, 한없이 드높아 보인 사람이 어느 순간 초라하게 비뚤어져 갈 때, 나는 나 자신의 초라함을 그와 함께 버리기도 했다. 한없이 싱그러운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그 싱그러움이 빛을 발해 더없이 고요해질 때쯤 또 다른 설렘과 새로움을 찾아 떠나기도 했다. 


 내 사랑은 늘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 다니기 바빴고 기다리기보다는 다그쳤으며, 하나같이 제대로 된 시작도 끝맺음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끊어졌다. 인연의 끈들은 깊게 패어 내 생에 흔적을 남겼다. 누구나 이불킥 하고 싶은 사랑의 추억들이 있다. 나에겐 그런 사랑이라고 부르기 싫은 시간들이 좀 많다는 것이 문제다. 


 가장 마지막 연애가 끝날 무렵 나는 깨달았다. 내 사랑의 결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한결같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참 좋은 것은 살아온 생을 진정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정말 꼭 죽겠구나 싶을 때에 그 사람 얼굴을 떠올렸다. 온몸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이불만 닿아도 아프고 촉감이 부드럽다고 해서 산 옷을 입어도 마찬가지였고 행여 살짝 찬 기운만 닿아도 전기고문을 받는 듯하던 항암치료를 받을 때, 땀은 좀 많았지만 손은 참 따뜻했고, 돈은 없었지만 늘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았으며, 자고 있든 깨어 있든 잠시 어딜 나가든 내 입술에 입 맞춰주던 그 사람이 가장 뜨겁고 소중했던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늘 한결같은 곳에서 무던히 자신의 존재함을 내게 비춰주던 사람. 그렇게 나를 지지하고 믿어줬던 사람. 한 생에 그런 사람 두 번이 올까. 나는 조금 두려워졌다. 


 부끄러움을 털어내는 것이 내일의 사랑을 위한 작은 시작이다. 지나간 사랑에게서 한없이 옹졸하고 비겁했으며 자만하고 교활했던 나를 찾아 내 앞에 놓는다. 지그시 본다. 그저 가만히 본다. 구멍이 뚫릴 것처럼 똑바로 마주한다. 그래야 다음 사랑에 그것들을 마주하지 않을 테니까. 내 사랑의 유통기한이 짧은 것은 돌아봄의 시간이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도록 두고 보고, 오래도록 추억하며 오래도록 아파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체감하지 못했다. 오래도록 두고 볼수록 그 진가가 서서히 표면에 드러난다. 


 나는 지금 나를 오래 두고 보고 있다. 




Photo by Omar Ram on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도둑년의 싱크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