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거나하게 취한 술자리. 대학 친구가 느닷없이 ‘황금폰’을 열었다. 얘는 대체 무슨 청승인지 10년 전 ‘싸이언’으로 찍은 핸드폰 사진을 아이폰에 옮겨 담고 다니더라. 손가락으로 아이폰의 액정을 밀어내니 시간이 자꾸 거꾸로 흘렀다. 흐릿한 화질의 사진 속, 볼 빵빵한 청춘들은 해맑았고, 낯설었다. 지금에야 모든 게 좋았을 시절이라 쉽게 말하지만, 해가 바뀔수록 내 모습은 미간을 찌푸린 채 허공을 보거나 무릎을 움켜쥐고 고개를 푹 숙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너는 꼭 뜨거운 볕이 쬐는 날엔 공대 테라스에 가서 콜라를 마셨어.”
별걸 다 기억하는 애다. 심지어 촬영 정황까지 정확히 설명한다. 산자락에 콕 박힌 우리 학교는 매년 봄이 늦었다. 개강을 하고도 한참 춥다가, 서서히 기온이 오르고, 볕이 뜨거워지면 나는괜히 머리가 아팠다. 세상 빛에 적응 못하는 죄수처럼 움츠리고 다니다 탄산 가득한 설탕 덩어리를 수혈하며 고달픈고학년의봄을 보냈던 것 같다. 당시 무엇이 나를 괴롭혔는지 정확히 기억은안 나지만, 얼른 졸업해서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작년 2월, 니스 카니발을 취재하기 위해 1주일 동안 남프랑스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취재에 선뜻 나선 건, 그저 지중해의 이른 봄볕을 쬐고 싶어서였다. 언제부턴가 겨울을 끔찍하게 싫어하게 됐는데, 그해에는 유난히 혹독한 추위가 내 주변을 애워쌌다. 비행기 안에서 보라색 라벤더로 뒤덮인 가이드북을 뒤적이다가 항공사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노란 햇살만 생각했다. ‘따뜻할 거야. 따뜻할 거야. 곧 따뜻해질 거야.
엑상프로방스는 불순한(?) 마음으로 방문한 이방인에게 변덕스러운 텃세를 부린 걸테다. 첫날부터 뿌연 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말이 안 나올 정도로(어이가 없어서)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둘째 날엔 노여움을 거두고 은혜롭게 햇볕을 내리는가 하더니, 떠나는 날 다시 차디찬 겨울바람으로 환송의 인사를 건넸다. 프로방스는 호불호가 거의 없는 여행지로 알려졌지만, 내 기억엔 음..지하상가의 크레페 집(허름하지만 현지 대학생 사이에서 유명한 맛집입니다)과 세잔 아틀리에서 본 그림 몇 점만 남아 있다.
마르세유를 거쳐 니스까지 가는 동안 날씨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좋았다 말았다. 천성적 ‘날씨 노예’인 나의 기분도 들쑥날쑥. 그러나 진짜 문제는 내 기분 따위가 아니다. 돌아가면 이런 날씨로 어떻게 남프랑스를 포장해 페이지를 채우냐이다. 애초부터쪽빛 바다 같은 상투적인 문장은 쓸 생각도 없었지만, 그마저도 사진으로 담을 수 없게 되자 원통했다.
돌아가 밥값을 해야 하는 직업 여행자를 위로한 건, 앙리 마티스였다. 마티스 뮤지엄에서 발견한 친필 쪽지를 보고 비로소 이번 여행의 의미를 새로이깨달았으니. 그가 니스에 처음 도착한 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고 한다.
여행은 예상이 무너질 때 보이는 것
이대로 소제목을 달고 니스 기사를 써내려갔다. 메인 사진도 우중충한 바다 사진을 보정 없이 사용했다. 지면에 담지 못하고, 인스타그램에 메모해 두었던 현지 가이드의 '전자레인지 인생론'도 원고의 가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누군가 나에게 니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한다면, 에메랄드 바다(니스에서 난 그런 걸 본 적이 없으니) 얘기는 집어치우고,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뜨겁게 해주는 도시라고 말하겠지.
그나저나 10년 전, 봄볕을 쬐며 탄산을 들이켰던 나는 삶을 전자레인지에 넣었던 모양이다. 무던히도 떠나고 싶었던 청춘은 저 멀리 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고맙게도 다시 봄이다. 그 볕은 매년 어김없이 당신에게도 찾아왔을 것이다. 만약 지금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전자레인지 속에 인생을 넣고 뜨겁게 돌려보는 건 어떨지. 무작정 떠나지만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