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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Mar 24. 2019

타인 속 타인이 되는 여행

합법적 휴식이 필요해

새초롬한 화장품 냄새와 단정한 얼굴, 무거운 어깨, 목적지를 아는 걸음들이 뒤섞이는 아침. 이 분주한 모습을 전지적 시점으로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여행 중일 것이다.


“뼈 빠지는 수고를 감당하는 나의 삶도 남이 보면 풍경이다.”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 나도 여느 여행자처럼 웅장한 곤돌라에 그림처럼 드러누워 있는 곤돌리(Gondolier)를 카메라에 여러 컷 담았다. 그날도 이곳저곳 휘젓고 다니다 외진 골목에서 늙은 사내를 봤는데, 문득 그림, 아니 상품처럼 화려한 곤돌리에의 ‘연극이 끝난 뒤’ 같은 장면 같았다. 쭈그리고 앉아 휴대폰을 만지는 그가 실제 일과를 끝내고 유니폼을 벗어던진 곤돌리에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손철주의 <인생이 그림 같다>에 나오는 문장은 어쩐지 그가 하는 말 같았다.






여행자는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지만, 다른 시간을 느낀다. 여행에서 돌아와 흔히들 ‘그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하철에 파묻혀 쓸려가던 어제의 내 모습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면 삶은 심미적으로 변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가 카메라에 담고 싶은 풍경이 된다. 쉽게말해 연애든, 여행이든 콩깍지가 문제다.


여행 기자를 하면서 남들보다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고, 따라서 주변에선 늘 엄청난 이야기를 기대한다. 사실 출장 후에 동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얘기는 시시껄렁한 게 더 . 독특한 이력을 지닌 뱃사공 아저씨, 즉석에서 명함을 만들어야 했던 가이드의 땜빵 친구, 속는 셈 치고 들어갔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골목식당 같은 거 말이다. 여행지의 어마어마한 풍경이나 평생 내 돈 주고는 못 누려볼 호텔 서비스, 미슐랭 별을 달은 레스토랑의 음식 같은 건, 감히 간접 경험조차 상상이 안 돼서 그런지, 누구 앞에서 얘기해도 말이 허공을 맴다. 그리고 보통 눈으로 봐서 멋진 건 말보다 사진이 더 명쾌하게 전달하지 않던가. 


최근에 여행 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에게 여행을 왜 떠나느냐고 물었고, ‘합법적 휴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회사에 반차를 내고 늦잠을 자고, 청소를 하지 않은 채 침대에서 밥을 먹는 휴식은 불법인가? 반박은 삼켰지만, 그녀는 이내 덧붙여 말했다. “일상에서 빠져나와 멈춰있는 시간을 보내는 거죠. 음, 휴학한 것처럼요. 남들은 다 4학년인데, 내 시간은 아직 3학년에 멈춰 있는 거지.”


문득 작년 10월 뉴욕에 갔을 때,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변태처럼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4년 만에 아무 목적 없이 떠난 여행이라 그랬을까? 그날따라 유독 낯선 공기와 흩날리는 외국말이 혈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기분 좋은 긴장감을 뿜어냈다. '아, 또 다른 세계에 왔구나. 어제의 나에서 빠져나왔구나. 탈출 성공' 어쩌면 그건 일상의 시간을 잠시 멈춰둔다는 신호였을 것이다.


여행은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타인의 타인이 되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언어와 문화, 삶이 뒤섞인 낯선 공간에서 잠시 길을 잃었던 나의 인생을 위안받고, 되돌아오는 길을 찾는다.


세계적 여행작가 타히르 샤가 쓴 <카라블랑카에서 일 년 >에서는 '긴 여정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집으로 돌아올 때'라고 말한다.          .   쉬움       . 분명 떠났던 나와 돌아가는 나는 다르니까.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제일 좋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말이, 마치 산이 있으니 오른다는 말장난과 비슷해 보이지만, 여행이 전하는 순수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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