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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E Aug 06. 2020

결국 남는 건 '사진' 뿐인 여행

디스 이즈 낫 컴페티션

 작년 여름 베트남 달랏으로 휴가를 갔을 때의 일이다. 렌트를 하기에는 신호 체계가 불명확한 베트남의 도로를 누빌 자신이 없어 이동할 땐 택시를 주로 이용했다. 하루는 반나절 동안 기사를 고용해 근교를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반나절이라 해봤자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한 두 군데가 전부였다. 미리 우리의 일정을 건네받은 현지 투어 기사는 이동하는 내내 한국인 관광객이 자주 가는 장소를 알려주며 일정을 추가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팁을 달라는 소리인가 싶어 지폐 몇 장을 건네며 우리가 한 군데에서 좀 오래 있더라도 편히 기다려달라고 부탁하자 기사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30분 정도 떨어진 두 장소를 느긋하게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투어 기사는 재차 이대로 끝내도 괜찮냐고 물었다. 오늘 하루는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겠냐며 다독였고, 정 미안하면 한국까지 좀 데려다 달라고 농담을 건넸더니 그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넋두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종종 한국인 관광객을 태우는데, 반나절 내에 소화할 수 없는 일정을 가지고 와서는 사진 몇 장 찍고 엔진이 식기도 전에 후다닥 돌아와 다른 장소로 ‘빨리빨리’ 가달라며 재촉한다고 했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만 골라와 그 앞에 내려달라고 조르는 사람도 많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받는 경우도 흔하다고. 그는 분명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정보력에 대해 칭찬하고 싶었던 것 같았지만 듣는 나는 어딘가 씁쓸해져 버렸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여행 사진이 구구절절한 여행담보다 파급력이 더 크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소설 속 이야기에 꽂혀 무모하게 여행을 떠났던 ‘라테’와는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SNS 속의 여행 사진을 구경하며 여행을 갈망한다. 그들은 전 세계의 숨은 풍경이 담긴 묵직한 사진집을 구입하는 대신 손가락을 밀고 당기며 숨은 여행지를 검색하고, 남들보다 더욱 드라마틱한 앵글로 자신의 여행이 돋보이길 바란다.

SNS에 올라오는 여행 사진을 보면 카메라의 성능은 두말할 것 없고, 보정 어플의 놀라운 진보까지 힘을 보태 초보자도 전문가 못지않은 솜씨다. 마치 경쟁하듯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진들에 매겨지는 하트의 개수는 인기 여행지의 척도가 되고, 누군가는 똑같은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그곳을 찾아, 아니 정확히 그 포토 스폿을 찾아 여행을 한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옛 말에 동조해서인지, SNS에 올릴 신박한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한 사명감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진실에 나는 매번 놀란다.


 내가 유달리 공공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에 인색해진 것은 1년에 약 2천만 명의 관광객이 오가는 런던에서 잠시 살면서부터다. 오직 사진을 찍기 위해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은 관광객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고, 따라서 런더너의 대부분이 출근길에 관광객이 길을 물을 때가 가장 싫다는 농담 섞인 진담도 이해할 수 있었다(그들은 결코 짜증을 내거나 불쾌한 기분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부터 카메라를 함부로 들이대기 전, 그곳이 누군가에겐 치열한 삶의 현장이거나 당사자가 느낄 불편함을 유난히 신경 쓰게 된 것 같다.


물론 여행하는 동안 악착같이 사진을 남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받고 싶고, 여러 사람이 눌러준 하트의 개수로 여행을 고평가 받았을 때, 내가 여행을 잘 하고 있다는 만족감도 덩달아 상승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여행은 결코 서바이벌 경쟁이 아니다. 남들보다 멋진 사진을 찍어 올리는 미션을 받은 것도 아닌데, 앞다투어 인증하는 사진에 애써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행복의 단편만 교집해 놓은 SNS 세상에서 빠져 종종 자신의 처지를 불행으로 내모는 이들이 있는데, 같은 맥락으로 여행의 환상만을 담은 SNS 속의 여행스타그램이 당신을 괴롭힐 때면, 도장 깨듯 움직이는 ‘인증 여행’의 이면도 한 번쯤 떠올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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