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뉴욕 여행 반성문
뒤늦게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 <모든 요일의 여행>를 찾아 읽었다. 워낙 글솜씨가 좋아서 여러 권을 흥행시킨 인기 작가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글을 직접적으로 대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 애호가답게 촘촘하게 모은 여행기는 부드러운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켜듯 술술 넘어갔다. 한 챕터만 더 읽어야지를 반복하다 '반성문을 쓰는 여행' 편에서 잠시 멈춰 섰다. 내가 그동안 브런치를 통해 또, 준비하고 있는 책에서 주야장천 이야기할 작정인 '여행의 군더더기, 여행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 대한 이야기가 절절했기 때문이다. 이 챕터에서 그녀는 유독 파리만 가면 욕심을 내게 된다고 고백한다. 숙제를 하듯 가야 할 곳, 봐야 할 것, 먹어야 할 것,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로 파리를 꽉 채운 지난 여행의 허망함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오랜만에 또다시 찾게 된 파리에서 그는 여독을 풀기도 전에 에펠탑 불꽃놀이를 보겠다며 꿋꿋이 버티고 있는 자신의 욕심을 책망하며 나름의 반성문을 쓰는데, 그 부분에서 나는 아주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파리에서는 그랬다. 물질에 대한 욕망과 그럴싸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누구에게도 보여줘도 부러워할 만한 여행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았기에 나는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다. 먹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지만 겨우 찾아가서 먹은 것들은 모두 의아한 맛이었다. 이걸 위해서 왜 여기까지, 라는 생각을 억지로 밀어냈다. 맛있어야 했다. 나는 행복해야 했다. 파리에 왔으니까.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안 행복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감히 행복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어느새 나는 행복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다."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여행은 무조건 행복하고 좋은 결말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때때로 우리를 아주 불행하게 만든다. 그것이 여행의 본질이다. '남들'이 지나간 여정을 똑같이 밟으면서 남들처럼 여행하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종종 '행복한 여행'을 보장받은 것처럼 구는데, 나는 그들이 정말로 그 여행을 온전히 즐겼을지 의문이 든다. 꼭 먹어야 할 것을 먹었을 땐 행복이고, 꼭 해야 할 일들을 하나라도 놓치면 스스로를 불행으로 내모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녀에게 파리가 숙제 같은 도시라면, 나에게는 뉴욕이 그렇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 정도 미국 여행을 계획했을 때, 제일 먼저 뉴욕이 떠올랐다. 당시 우물에만 갇혀 있는 기분에 사로 잡혀(사실은 회사에 갇혀 있었던 것이었지만) 무작정 큰 도시로 나아가고 싶었다. 이방인과 현지인의 경계가 모호한 익명의 도시.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에 크게 놀라지도 않고 놀랄 필요도 없이 형형색색인 도시. 나는 묻고 따지지 않는 이방인의 세계에 파묻히고 싶었다. 부러 시끌벅적한 도시로만 골라 뉴욕을 거쳐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로 여정을 잡았다.
원래 계획은 친한 선배네 집에 머물며 뉴욕에서는 일주일 정도 느긋하게 지낼 생각이었는데, 뉴욕에 도착한 첫날 저녁 선배는 나를 앉혀 두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악명 높은 뉴욕의 지하철을 실수 없이 타는 법을 설명해 주고, 아무 계획 없는 나 대신 뉴욕에서 갈만한 곳들을 지역별로 나눠 끼니때마다 먹어야 할 것과 가야 할 식당 정보까지 세세하게 적어 일정표를 완성해줬다. 현지에 지인이 있다는 건 무척 든든한 일이었지만, 그로 인해 나는 마음에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동안 겪지 않던 시차 적응에도 실패해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판이 다 펼쳐지기도 전에 브루클린 빈티지 마켓이 열리는 골목을 어슬렁거렸고, 살 것도 없고 별 흥미도 못 느꼈지만 열심히 소호의 편집샵을 두리번거렸다. 브로드웨이에서 계획에도 없던 뮤지컬을 한 편 보고, 시간에 쫓기는 뉴요커처럼 서서 쉑쉑 버거도 먹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밖으로 나가 걸었고, 저녁 8시면 집에 돌아와 일찌감치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새벽 4시. 하필 뉴욕을 떠나 포틀랜드로 이동하는 날 비행기 일정도 이른 아침이라, 그날도 새벽부터 길을 나서야 했다. 도요타 프리우스를 끄는 우버를 잡아 타고 희미한 회색빛 안갯속을 헤쳐가는데, 중후한 향수 냄새를 풍기던 기사가 의례적인 인사처럼 물었다.
"여행? 집으로 돌아가니? 뉴욕은 어땠니?"
"아니, 나는 포틀랜드로 도망가는 중이야. 뉴욕은 너무 피곤해."
"뉴욕의 비밀을 들켜버렸군."
아직도 이 대화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혹시 나중에 뉴욕에 관한 여행기를 쓰게 된다면 제목은 '시크릿 오브 뉴욕'으로 해서 지금의 이 피곤함을 낱낱이 적어 내려가야겠다고 메모해 놓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보낸 일주일이 미국 여행의 워밍업이 된 것인지 아니면 비로소 얼떨결에 받아 든 일정표에서 해방되어서 그런 건지 포틀랜드에 도착하니 기분이 홀가분했다. 뉴욕과 달리 가야 하는 곳도,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식당도 몰랐기에 길을 걷다가 대학생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도넛 집에 따라 들어가 생기 넘치는 아르바이트생이 추천해주는 도넛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호텔 앞에 보이는 쌀 국숫집에 들어가 뜨끈한 국물을 그릇 째 들이켰다. 그리고는 호텔 로비에 앉아 오후 내내 책을 봤다.
소설가 김영하가 말했던가. 도시에 대한 무지는 여행자의 특권이라고. 나는 뉴욕에 관해선 지인이 들려준 생생한 정보를 누구보다 많이 쥐고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나에게 뉴욕은 기가 죽은 도시(물론 주체는 여행자, 바로 나다)로 기억될 뿐이다. 반면 포틀랜드에 대해서는 뭐 딱히 아는 게 없었지만, 내가 우연히 기웃거렸던 모든 곳이 좋았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유쾌한 일화로 남아 있다.
지금도 종종 뉴욕에 대해 말할 기회가 오면 "사실 저는 뉴욕이 좀 별로였어요."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운 눈초리(어떻게 그 도시가 싫을 수 있지?라는 표정으로)로 나를 회유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대에 부흥해 어떻게서든 여행을 재조합할 수도 있겠지만(분명 뉴욕의 어떤 풍경은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답기도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기억의 잔재에는 언제나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하염없이 길을 걷는 내 모습이 아른거린다. 분명 여행을 하는 내내 '내가 뉴욕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에 사로잡혀 있었고, 종국에는 '과연 어떻게 지금까지 여행 기자를 하며 밥벌이를 했을까?'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사적인 여행을 일과 연관시키며, 욕망을 채우기 급급한 여행이 좋았을 리 만무하다. 떠나기 전, 퇴사 후 뉴욕(그것도 가을의 뉴욕이라니!)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로 부러움을 한껏 받은 여행이었지만, 주변의 기대에 부흥하는 것에는 실패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여행이 때때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 여행 중 사사로운 일에 쉽게 흔들리는 감정의 요동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여행의 본질을 일깨운다. 우리는 꿈과 희망만이 존재하는 원더랜드를 찾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여행의 기쁨은 스스로 찾는 것이지, 결코 빚을 수거하듯 거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