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RE Jul 20. 2023

여행에서까지 경쟁을 해야 해?

콘텐츠 경쟁이 되어버린 '대여행시대'

지난달, 코로나 시국 이후 처음 해외 출장길에 다시 올랐다. 개인적인 여행이 아닌 공식적인 업무로 떠나는 게 언 4년 만인 셈이었다. 그동안 시간이 약이 된 것인지, 고단하게만 느껴졌던 해외 출장이 내심 반갑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해외 출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내 돈 안 들이고 호강하는 거 아니냐며 여전히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행 기자로 일하는 4년 동안 나의 한 달은 원하든 원치 않든 해외 출장과 원고 마감으로 빈틈없이 채워졌고, 결국 그토록 좋아했던 여행에서 번아웃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결국 나는 무작정 콘텐츠만 좇는 여행에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여행 기자를 관뒀고, 마침 코로나 시국의 강제적 멈춤이 찾아온 것이다. 어쩌다 보니 여행 권태기와 맞물린 이 시기에 나는 취재하느라 급급했던 지난 여행들을 뒤늦게 음미하며 권태와 애증을 지우는 데 애를 썼다. 아마 그맘때쯤 브런치에 <여행을 싫어해도 괜찮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평생 여행을 하며 글을 쓰며 살고 싶은데, 어쩌다 왜 여행이라는 것이 일상의 부채처럼 느껴질까'라는 것에 대한 자문의 답을 찾는 시작인 셈이었다.


며칠 전 평소 애정했던 여행 유튜버 원지 님이 유튜브를 잠시 쉬어간다는 걸 알게 되고, 그녀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조심스럽게 전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읽다가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그녀와 함께 해외 출장을 동행한 적이 있어서 평소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는 이유 너머의 깊은 고민이 전해지는 듯했다. 어쩌다 보니 뭐든 이슈화가 되기에 조심스럽게 써 내려간 문장임이 티가 났지만, 문장 속 보이지 않은 행간에서 느껴지는 고충이 어쩐 지 더 짠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내가 유일하게 구독하는 여행 유튜버였기에 나로서는 원지 님이 나오는 첫 여행 예능을 안 볼 도리가 없었다. 첫회부터 본방사수하듯 매회 챙겨보다가 문득, 원지 님은 내가 알던 대로 늘 여행을 하는데 왜 어색할까라는 생각이 서서히 잠식했다. 스마트폰 작은 화면에서만 만나던 그녀가 50인치 큰 화면에 등장해서 그런 것인지, 연예인과 뒤섞여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낯설어서였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방송을 본 후에 괜히 정화 과정을 거치듯 스마트폰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녀의 예전 여행을 곱씹곤 했다.


콘텐츠 경쟁이 된 여행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행에서조차 우열을 가르듯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게 나에게는 무척 낯선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근거로, 나의 여행이 당신의 여행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과학자의 말대로 모든 것이 숫자로 수치화되어가는 세상인데, 나 같은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 흐름에 따르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걸까. 인생에서 여행이 주는 효용에 대해 앞장서 주창하던 내가 여행을 멈춘 이유는 당분간 콘텐츠만 좇는 여행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어떤 부의 창출을 일으킬지 혹은 내가 만든 여행 영상이 나에게 어떤 명예와 조회수를 가져다줄 지에 대해 나 또한 무수한 갈등과 집착에 빠진 적이 있다. 극적인 장면과 사건에 전전긍긍하고, 어떻게 서든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애를 썼던 목적성 짙은 여행에서는 어떤 우월감을 탐하는 승자를 꿈꿨을지 모른다. 그 승리의 전리품으로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 채 없이 콘텐츠 경쟁에 뛰어들었고, 결국 모든 것에서 확실성을 잃은 채 표류된 사람처럼 겉돌 수밖에 없었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비로소 작년 12월 나는 다시 용기를 내서 여행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떠나 감흥이 남달랐기도 했지만, 그 여행에서 비로소 4년 동안 여행 번아웃을 겪으며 괴로워했던 자문에 뒤늦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원했던 건, 내 인생에서 여행이라는 영역만큼은 성역처럼 순수함을 잃지 않길 바란다는 것. 다양한 여행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글을 쓰고 기록을 하는 업이 내 인생에서 가장 충만함을 주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다시 깨달았고, 어느 순간 그 순수함을 잃은 채 콘텐츠만 좇게 되는 태도에 나는 삶이 흔들릴 정도로 큰 자괴감을 느꼈던 것이리라. 여전히 여행은 어떤 식으로든 배움과 경험으로 남고, 그것이 인생을 토닥이는 효용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업무로든 개인적 여행이든 다시 여행으로 여행을 치유하고 싶다. 세상이 어떻게 변한들 콘텐츠 시장이 어떻게 달라진다 한들 나에게 여행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평생 여행하며 글을 쓰고 싶은 내 인생의 목표를 다시금 되새기며 나아갈 때가 온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