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가 죽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내가 가족보다 가까이 지낸 유일한 친구였다. 모든 감정을 가감 없이 나누고, 온전히 의지하고, 일상을 함께하던 친구가 예고도 없이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것도 너무나 억울하고 허망하게.
친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적지 않겠다. 그녀와 유가족을 위함이다.) 그리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가족도 친구도 어느 누구에게도 마지막을 알리지 않았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들은 이후 나는 별의별 감정이 다 들었다. 그녀에게 상처 준 빌어먹을 그 사람을 정말 찢어 죽이고 싶었다. 사회에서 매장시키고 단죄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다신 당당히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인터넷에 그의 몹쓸 행적을 낱낱이 고발하고 싶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분노한 적이 있었을 까. 결과적으로 나는 그 누구도 응징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원하지 않았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모두가 분노를 삼켰다.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지금 내 곁에 그 아이는 없다.
분노가 한차례 휩쓸고 가니 자괴감에 시달렸다. 변명을 늘어놓자면 친구가 가장 힘들 때 친정엄마가 쓰러지셨고, 나는 친정을 챙기기 바빴다. 설상가상으로 아이에게도 문제가 생겨서 정말 나도 숨 쉴 새가 없었다. 친구가 너무 힘들 다는 것을 알아서 한 번씩 들여다는 봤지만 그저 내 가족 챙기기가 먼저였다. 친구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결국 그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됐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내 곁을 지켜주던 친구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그 아이가 떠나고 난 후 죄책감이 정말 컸다. 그리고 이 현실이 너무나 억울했다. 가해자는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는 데 애꿎은 사람들의 세상은 여전히 지옥이었다. 가슴이 턱턱 막히고 얼굴 홍조는 점점 더 심해졌다. 갑자기 밥을 먹다가 눈물이 쏟아져 엉엉 울었다. 그냥 장을 보러 가는 길에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감정적으로 너무 불안해 지자 예민한 나의 아이가 영향을 받는 것 같아 꾹꾹 참았다. 죽을 것 같았는 데 괜찮은 척하니 또 살만했다. 우습게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부서졌던 마음이 조금씩 조각을 맞추고 있었다. 난 어느새 웃기도 하고 가족과 여행도 가고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일상은 찾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감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아무래도 친구의 죽음이 내 공황장애와 불안의 방아쇠 역할을 한 것 같다. 난 그 이후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종종 새벽녂에 혼자 거실에 나와 밖을 멍하니 쳐다봤다.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왜 멀쩡하던 내 친구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곱씹었다. 처음엔 어이가 없다가도 결국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진심으로 이해가 됐다. 그 이해가 되는 내가 소름이 끼쳤다. 평소 그런 선택에 대해서 엄청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나인 데... 나 조차도 그런 마음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너무 괴로우니 정말 죽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냥 아픔 없이 한 순간에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에 나는 매우 위태로웠다. 지금의 나라면 당연히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먹었을 것이다. 주변에게 알리고, 햇빛을 보고, 운동을 하고,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감정을 삼키고 눈물을 닦아낼 뿐이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무력하다 느낄 때 절망하는 것 같다.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도 보내주지도 못하는 무력감에 참 많이 힘들었다. 이별이 주는 아픔을 그저 삼키기만 하다보니 나의 마음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세상을 살다 보면 수많은 아픈 이별이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