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움직여라
우울과 불안은 아주 지독한 놈들이다. 내가 겪은 그것들은 사람을 완전히 무력화한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지고 어느새 샤워할 힘조차 나지 않는다. 안 씻고도 캄캄한 방 안에서 몇 날 며칠을 지낼 수 있다. 그리곤 씻지 않고 먹지도 않는 것이 편해진다. 혹은 폭식증을 유발한다. 어디 몸에 큰 병이 난 것도 아닌 데 여기저기 아프고 어떤 에너지도 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마치 숨 막히는 폭염 속 형체 없이 녹아내린 플라스틱이 있었다면 그게 바로 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일단 뛰어'라고 말하고 싶다. 걸을 에너지도 없는 데 어떻게 뛰란 말인가. 나 역시도 그랬다. 한동안 아예 침대에 한 몸이 되어 살았으니까. 그래도 진짜 죽을힘을 다해 집 밖을 나와야 한다. 적어도 이 우울한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말이다.
우울과 불안에 잠식되어 있으면 밖을 걷는 것도 힘들어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에 가장 좋은 것은 운동밖에 없다. 평생 약을 먹고, 병원에만 의지하고 살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명상, 요가, 걷기, 러닝을 많이 했다. 그중에 공황장애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바로 '러닝'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공황장애, 불안, 우울을 탈출하고 싶은가? 제발 하루 5분만이라도 뛰어라. 아니 처음엔 딱 2분만이라도 뛰어도 된다. 매일 조금씩 늘려나가면 된다. 시작부터 너무 많이 뛰는 것도 좋지 않다. 처음엔 나도 체력이 바닥이 나서 5분 뛰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숨이 너무 가빠지고 심장이 너무 뛰어서 이러다 또 내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천변에 나가 조금씩 뛰는 시간을 늘려갔다. 5분도 못 뛰던 나는 지금 50분은 가뿐히 뛴다. 올해 남편과 함께 10킬로 마라톤을 나가는 것이 목표다.
뛰게 되면 정말 마법처럼 불안이 줄어든다. 뛰다 보면 정말 힘들어서 불안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내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의 희열은 상상이상이다. 특히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진다. 이게 공황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공황장애를 앓게 되면 자기 신뢰가 바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대는 데 어쩌지"
"나 어디 아픈 거 아닐까"
공황장애가 생기면 별별 생각이 다 들고, 사람이 많은 곳을 기피하게 된다. 자율신경이 활성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잘 조절이 안 돼서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뛰면 달라진다. 뛰면 체력이 늘고, 잡생각이 사라지고 나에 대한 자신이 생긴다.
우울, 불안, 공황 등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데 무슨 러닝이냐고 싶을 것이다. 말이 거창한 거지 정말 딱 하루 5분씩만 뛰어 보자. 천천히 뛰어도 된다. 어느새 10분이 뛰고 싶고, 어느새 1시간은 뛸 수 있어진다. 나도 했는 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못할 게 무엇인가.
나는 밀폐된 실내공간에 대한 공포심이 높아 헬스장에 가지 못했다. 러닝도 꼭 밖에서 사람이 많지 않은 공간에서 시작했다. 꼭 운동복 주머니에는 상비약을 넣어 다녔다. (정신과를 다니다 보면 신경안정제류의 상비약을 처방해 준다. 급하게 공황발작이 올 때 먹을 수 있다.) 상비약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물론 그 상비약을 먹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처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 시작해서 체력과 자신감이 늘었을 때는 한 번씩 헬스장에도 갔다. 물론 사람이 가장 적은 시간부터 시작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보다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늘려가는 것이 좋다. 꾸준하게 하다 보니 바글바글한 주말시간대에 헬스장 가는 것도 가능해졌다. 처음부터 욕심은 금물이다. 너무 오랜 시간 뛰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 초반에 너무 힘이 들면 포기하기 쉽고, 꾸준하게 하기 어렵다.
매일 5분, 아니 딱 2분만 뛰어보자. 그마저도 숨이 턱턱 막히고 죽을 것 같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 뛰어보라. 우울과 불안에 잠식되어 내 인생이 좀먹는 것보다 낫지 않는가. 막상 일단 나오면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다. 너무너무 힘들 때는 집 밖에 나오는 것도 힘든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나와야 한다. 나와서 햇살을 쐬고, 자연을 보고, 사람들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뛰어라. 정말 한 달만 해보면 마법 같은 일이 생겨날 것이다.
아, 참고로 요즘 기안 84, 션 같은 연예인들의 영향 때문인 지 뛰는 사람이 정말 많다. 예전에는 제법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나 뛰는 모습이 많았는 데 지금 천변이나 한강에 가보면 깜짝 놀란다. 나처럼 운동이라고 몰랐을 법한 아줌마, 배 나온 아저씨 심지어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뛰고 있다. 생각보다 잘 뛰는 사람들이 많아 자극받기도 좋다. 너무 힘들다면 그냥 눈앞에 보이는 한 사람 잡고 그 사람만 따라가 봐라.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일단 뛰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