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환자분은 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 하나요? 힘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돼요."
나
"남편은 일이 정말 바쁘고요, 친청언니는 애를 둘이나 키워 정신이 없어요. 엄마는 한 번 쓰러지신뒤로 도움받기도 힘들고요"
의사
"그래도 환자분 지금 상태를 알리셔야 해요. 주변 가까운 사람들이 알고는 있어야 해요. 당장 도움을 못받더라도 환자분이 지금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주변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릅니다. "
나
"그렇긴 한데... 제가 공황장애로 병원을 다니고,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것을 알리는 게 무서워요. 엄마가 특히 충격받으실 듯해서 오픈을 못하겠어요."
의사
"그렇다고 해도 오픈하셔야 해요.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부터 바꾸셔야 해요. 환자분도 가족이나 친구들이 이렇게 힘들다 하면 당장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
나
"네 그건 그렇죠."
의사 선생님은 내 병을 가족에게라도 알리라고 하셨다. 나는 아예 안 친한 사람들이 내 상태에 아는 것은 사실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유독 내 가족이 내가 정신과를 다니는다는 사실을 모르길 바랐다.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싫었다. 특히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엄마가 내 상태를 알게 되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내가 가족에게 오히려 감정을 숨길수록 희한하게도 가족들 앞에서 불안감이 심해졌다. 소중한 사람들일수록 내 상태를 알리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난 친정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최악의 선택이었다.
한 번은 친정가족들과 한강을 걷고 있는 데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가슴 전체가 뜨거운 조영제를 부은 것처럼 뜨거워졌다. 식은땀이 나고 쓰러질 것 같았다. 엄마에게는 배탈이 난 것 같다고 급히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남편이 눈치를 채고는 나를 집으로 급히 데려갔다.
병원을 다니면서 공황증세는 많이 호전이 되었는 데 유독 가족들 앞에서만 증세가 심해지니 미칠 노릇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친정언니에게 먼저 오픈을 했다. 언니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이미 내 상태를 인지했던 모양이다. 언니에게 내 상태를 털어놓은 뒤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뒤로 나는 주변 친한 지인들에게 하나둘 내 상태를 오픈했다.
친구 A
"야 내 남편도 사실 우울증으로 약 오래 먹었어. 이제 우울증 5년 차다. 그냥 심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말 안 한 거지."
친구 B
"그래 우리 주변에 정말 많아. 우리 시어머니도 불면증, 불안장애로 오랫동안 치료받으셨어. 회사동료 중에도 공황장애 오픈하고 회사생활하는 사람도 있어. 주변에서 오히려 편하게 생각해주고 증상이 오면 그 분도 잠깐 쉬다 오시고 그래. 다들 걱정해주고 도움주려 하고 있어. 꼭 숨기지 않아도 돼. "
알게 모르게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았나 부다. 무슨 대역죄인처럼 주변에 내 병을 숨길 때는 오히려 증세가 심했는 데 다 털어놓고 보니 나는 많이 편해졌다. 꽁꽁 숨긴다고 해도 숨겨지는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는 시작은 바로 '공밍아웃?!'이 아닐까. 공황이 정말 죄는 아니다. 그냥 마음이 아플 뿐이다. 치료하면 그만이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공황증세가 와서 쓰러질까 봐 너무 두려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쓰러지면 분명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거야'라고 생각한다. 내 증상을 그냥 직면하는 것이다. 그러면 희한하게도 불안이 오다가도 꽤 빠르게 사라진다.
나는 불안이 높아지거나 공황증세가 올라오면 내게 거는 주문하나 가 있다.
"조카 어쩌라고 신발"
하하. 참고로 나는 정말 평소에 욕을 안 한다. 그렇데 이런 욕설을 막 속으로 거칠게 뱉어내면 뭔가 '내가 나를 지키려는 의지가 발동하는구나.', '공황발작이 오면 오는 거지 어쩌라고!'라는 자신감이 올라온다. 그러면 좀 마음의 안정이 온다.
꼭 이런 문구가 아니더라고 공황증세가 올라오려고 하면 자신만의 주문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공황으로 쓰러진다고 해도 잠깐이다. 진짜 죽지 않는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분명 사람들은 나를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불안한 생각만큼 실제로 발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적다. 실제로 정말 힘든 것은 그 발작이 일어날까 봐 무서운 내 마음상태다. 빌어먹을 불안감이다.
외쳐보자! "공황장애! 조카 어쩌라고 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