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편 Jan 25. 2021

당신은 웹소설을 공부해야 한다 (1)

타 장르에서 넘어온 작가들에게

뜬금없이 내 소개를 해 보자면 이렇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위 말하는 문학소녀였고, 그때부터 이미 각종 글짓기 대회를 나가 수상했으며, 고등학생 때부터 웹진 작가로 활동하고, 학석사 때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했다.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학사 때는 소설을 주로 썼고, 석사 때는 희곡을 썼다.

그리고 장르가 달라 피를 봤다.

바로 위에 쓴 문장이 핵심이다.


웹소설을 하기 전부터 이미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작가 타이틀을 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작가'는 굉장히 많은 걸 포괄하는 상위 카테고리 개념이다.

글로 쓸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글깨나 써 봤다는 사람들은 이미 어디선가 숱하게 글 잘 쓴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글이 모두 같은 영역에 속하지는 않는다.


이 부분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다.


글 쓰는 것 중에서도 '창작'이라고 하면 으레 스토리를 짜는 걸 떠올린다(시는 논외로 하고).

그런데 문제는 그 스토리를 짜는 것과 창작 행위를 동일시한다는 데에 있다.

둘은 비슷하다. 하지만 결코 같지 않다.


웹소설은 그 특유의 가벼움을 보고 쉽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나 쓰고, 아무나 읽고, 운 좋으면 떼돈 벌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웹소설이 '소설'이라는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약 당신이 대본(희곡, 시나리오, 트리트먼트 등)을 썼다가 웹소설로 넘어왔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소설 쓰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다.

아무나 다 쓰는데 이미 작가인 당신이 왜 그걸 공부해야 할까.

그건 당신의 손이 대본 쓰는 데에 익었기 때문이다.


작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건 상당히 치명적이다.

웹소설 편집자인 내가 소설이 아닌 원고를 받게 된다면 당장 하게 될 일이 뭘까.

그건 그 원고를 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넣는 일이다.

당신이 소설을 쓴 게 아니라면 웹소설 편집자는 애초에 당신 글을 읽지도 않는다.


대충 조악한 예문을 하나 만들어 보자.


작가들에게 화가 난 임편, 무섭게 타이핑을 한다. 그녀의 안경 위로 모니터 색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다.
임편: (중얼거리듯) 진짜 일 좀 만들지 말라니까.
바쁘게 움직이던 그녀의 손가락.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뚝 멈춘다.


당신은 정말 이렇게 쓴 걸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는가?

이건 대본이지,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웹소설' 원고가 상당히 많다.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단계조차 무시하고, 무작정 창작을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당신은 지시문만 삭제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 대답은 당연하게도 'NO'다.


저 대본식 작법에서 파생한 문제가 웹소설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데, 이게 상당히 골치가 아프다.

작가의 습관이라 편집자가 원고 전체의 문장을 다듬어야 하는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소설은 문장의 완결성이 중요하다.

온전히 글로만 내용을 전해야 하는데 문장이 엉망이라면 전달이 어렵다.

이 엉망이라는 말에 대부분 비문, 오탈자 등을 떠올릴 텐데 거기에 대고 난 감히 말하고 싶다.


완결되지 않은 문장이 가장 엉망이라고.

그리고 그 엉망인 문장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게 대본식 작법이라고.


직접적인 지시문이 없다 해도 가끔 소설과 대본의 경계에 놓인 글을 발견하곤 한다.

위에서 들었던 예를 여기에 다시 갖고 와 보자.


(1) 작가들에게 화가 난 임편. (2) 그녀의 손이 무섭게 타이핑을 한다. 그녀의 안경 위로 모니터 색이 시퍼렇게 비쳤다. 임편이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일 좀 만들지 말라니까."
(1) 임편이 말하는 대로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가락. (2) 임편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움직임을 멈춘다.


이건 소설일까?

혹자는 소설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난 '이 글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된다.


(1)과 같이 명사형 종결 어미는 어쩌다 한 번 쓸 수는 있지만 정말 그건 그렇게 그 명사를 강조해야 할 순간에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게 필요해서 쓰인 글을 본 적은 1할도 없다.

그냥 어디선가 보고 밴 습관이다(이것도 할 말이 많지만 다음에 하기로 하고).

당신이 해당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난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문장에도 경중을 두라고. 저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장이라고.


(2)는 어쨌든 '~다.'로 끝나는 형태니 문제가 없다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저게 현재형으로 끝나는 지시문 형태라는 것이다.

대본은 그 자체로도 텍스트가 읽히기도 하지만, 중간 단계의 역할이 더 크다.

그걸 실현하는 최종 수단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 내에 감독이든 배우든, 누군가가 그걸 구현할 수 있도록 '지시하는 문장'을 넣게 된다.

그 형태가 (2)와 같은 현재형 문장이다.

하지만 소설은 텍스트 그 자체가 독자들에게 바로 전달되는 형태다.

굳이 저런 유사 지시문과 같은 형태를 고집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온 매 순간이 모두 과거다.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당신의 글 속에 있는 등장인물들도 당신의 지시 없이도 이미 연속해서 움직이며 과거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굳이 현재형 문장을 쓰지 않아도 된다.


웹소설은 분명 내용도 가벼운 게 대부분이고, 소위 말하는 '작품성'도 갖춰진 게 많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소설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달성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스토리는 빛을 보기도 전에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쓰고 싶은 게 웹소설일지, 대본일지.

난 묻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이미 웹소설의 프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