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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편 Feb 06. 2021

당신은 웹소설을 공부해야 한다 (2)

순수문학 작가인 당신에게

웹소설은 쓰기도 쉽고, 읽기도 쉽다.

접근성도 좋아 정말 누구나가 다 향유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은 어쩌면 마음 한편으로는 웹소설을 무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전 글에서도 설명했다시피 난 어설프게 석사 과정까지 문학을, 정확하게는 창작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같은 과 석박사 과정들 사이에서 몇 안 되는 특이점을 갖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등단을 못 한' 사람이었단 것이다.

수많은 작가 선생님들 사이에서 풋내기인 내가 함께 작품을 공유하고, 읽고, 합평하는 일은 정말 매 순간 심장이 쫄깃해지는 일이었다.

여기에 대한 것도 할 말이 많지만 이건 일단 이 정도로만 얘기하고 넘어가겠다.

어쨌든 이런 내가 글을 쓰다 말고 편집자가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웹소설 알고는 있지만 뭐 썩 관심은 없는, 딱 그 수준이었다.

일례로 네이버에서 초기에 웹소설 작가들을 모집하던 당시에 나한테까지 그 작가 모집 메일이 날아들어 왔었는데 '아니 이게 뭐람' 이러고 무시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돈을 써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현실에 부딪혔고, 그 돌파구로 선택한 게 바로 웹소설 편집자 일이었다.

순전히 이것도 지인 소개를 통해서 시작한 것이고, 딱히 나에게 웹소설 개념은 없던 시절이라 봐야겠다.

어릴 때 판타지나 무협, 기타 장르소설을 많이 봐 왔으니 어떻게든 볼 수 있겠거니, 그냥 이 정도 생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웹소설 편집을 하기 위해서 내가 알고 있는 상식들이나 공부한 것들을 많이 내려놔야 했다.

문학을 한다는 생각으로 뻣뻣한 자세로 하나하나 평가를 해대며 접근할 게 아니었다.

나름대로 90년대 말부터 수많은 장르소설을 읽어왔지만 지금의 웹소설은 그것들과도 결이 달랐다.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와도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제법 시간이 지나고서야 난 이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생긴 거구나.


편집자 일을 하면서도 대학원 생활을 병행했다 보니 웹소설의 위상이 변하는 걸 실시간으로 느끼게 되었는데, 이게 퍽 흥미로운 일이었다.

어제의 작가 선생님들은 '웹소설, 그게 뭔가요?' 이랬다면

오늘의 작가 선생님들은 '웹소설, 그거 돈 잘 번다면서요?' 이렇게 달라졌다.


이렇게 웹소설이 자리 잡은 것까진 좋은데 문제는 순수문학을 쓰는 작가들의 인식은 아직 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서두가 길었는데, 오늘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바로 이것이다.


웹소설이 돈이 된다.

하지만 수준 떨어진다.

웹소설이 잘 팔린다.

하지만 그거 아무나 다 쓴다.


저 '하지만'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순수문학을 전공했던 당신이 그러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미 어떤 식으로든 등단을 했고, 어디서든 선생님 소리를 들어본 당신이라면 자신의 글이 어떤지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장점, 단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구조적으로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 문장은 어떤 식으로 쓰는 게 한층 유려할지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당신의 어깨와 목을 딱딱하게 만든다.


문학을 각 잡고 접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가치를 찾으려 한다.

문학사적 가치든, 예술적 가치든, 그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하지만 웹소설은 당신의 이 가치관과 미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흥미와 재미 위주라니, 대체 이걸 문학이라고 할 수나 있는 것일까.

이 저급함에 치를 떤 당신은 유려한 자신의 글 솜씨를 뽐내며 나름의 웹소설을 쓰기에 도전한다.


그래서 결과는?

당연히 실패다.


안타깝게도 웹소설에서 문장의 완성도나 작품의 예술성은 마지막의 마지막에나 가서야 평가되는 부분이다.

당신이 독자의 흥미를 구 할 끌어올렸을 때 그 작품을 일 할 채워주는 수준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작품은 '명작' 소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웹소설에서 명작은 그다지 칭송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저 일 할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게 이 판인 것이다.


순수문학 작가인 당신이 웹소설을 쓰기 위해서 당장 해야 하는 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당신이 그토록 무시하는 웹소설을 읽는 게 먼저다.

유행을 알고, 연재의 감을 익히고, 무엇보다 서브컬처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당신이라 해도 당신이 이 시장을 무시한다면 당신은 여기서 돈을 벌 수 없다.

독자들에게 당신은 매해 수없이 쏟아지는 무명의 작가 중 한 명에 지나지 않기에, 굳이 당신의 완벽함과 예술성을 끝까지 인내하며 보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결승전용 필살기를 준비해도 당장 예선 통과가 안 되는데 무슨 소용일까.


순수문학을 한 당신에게 웹소설을 놓고 어떤 예를 들면 좋을까 고민을 해봤다.


웹소설은 이를 테면 넷플릭스 드라마다.

보다가 언제든 놔버릴 수 있고, 나중에 보려고 하다가 그냥 잊어버리게 되는 그런 부류다. 그러니까 초반에 흥미를 이끌지 못하면 영원히 놔버릴 공산이 크다.


그리고 웹소설은 뮤지컬이다.

스토리와 노래가 다양한 것 같아도 기본적인 틀은 늘 유지하고 있다. 메인 테마를 알리는 오프닝-엔딩 넘버가 있고, 중간에 꼭 앙상블이 나와 군무와 함께 노래를 하고, 분위기를 환기하는 우스꽝스러운 조연이 있다. 모두가 이 약속을 알고 있고, 활용을 한다.


당신이 웹소설을 쓰고 싶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을 잘 가공해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당신은 이미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러니까 어깨의 힘을 풀고 웹소설이란 장르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면(그 감성을 이해한다면) 정말 특별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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