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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졍 Mar 16. 2019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1994

Chungkingexpress Scene Pick’


영화 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express),1994



누군가와 함께 본 영화라거나 영화 속 이야기가 개인의 추억 속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경우에 그 영화는 특별한 영화가 되고 특별한 감상을 남긴다. 어떤 경험과 연결되는 영화일수록 더 깊이 있는 여운과 감상이 남는다.


‘중경삼림’이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 떠오르는 이가 있다. 그에 대한 마음을 혼자 시작했다가 혼자 슬그머니 관계를 정리하자 마음먹을 때쯤 찾아본 영화다. 그래서인지 더 짙은 여운이 남는다.


이 영화로 나를 이끈 그 사람은 왕가위 감독이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여러 편을 보았다고 했던 그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그동안 그리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관심이 생겼고, 나는 그 영화들 중 한 편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추천해준 영화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 ‘중경삼림’이었다. 그 당시 나의 모든 촉수가 그에게 향해 있었으니 그 사람이 좋아한다고 하는 영화는 당연히 나에게는 꼭 찾아봐야 할 영화 1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동기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쭉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스토리와는 별개로 또 다른 감상이 나를 따라다니겠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노트북>이 나에게 더 특별한 감상을 남겨준 것처럼.)


영화는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어느 패스트푸드점을 기점으로 하여 두 커플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펼쳐진다. 두 에피소드 모두 예사의 만남이나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경찰 223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뒤를 이어 경찰 633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EP. 01 경찰 223(금성무)과 마약밀매 중개업자(임청하)의 우연한 만남.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지 얼마 안 된 경찰 223이 등장한다. 경찰 223은 헤어진 여자 친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생일이자 헤어진 지 딱 한 달째인, 5/1까지인 통조림을 하루하루 사 모은다. 그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다 될 때까지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기다림을 그만 두기로 결심한다. 파인애플 통조림은 그렇게 속절없이 쌓여만 가고, 시간도 그만큼 흐른다. 그리고는 툴툴 털어내 보고자 어느 바에 들러 한 여자를 만나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되는 이야기.



장면 Pick’

통조림을 사 모으며 스스로를 다독여가는 귀여움과 결국에 모은 통조림들을 한 번에 한 자리에서 다 까먹는 지질함이 좋았다. 먹다가 물려서 통조림에 후추인지 뭔지 모를 소스를 뿌려서까지 먹는 지질함까지도 측은한 마음에 애정이 갔다.


허전함과 쓸쓸함을 이겨보려고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 기필코 ‘그’ 혹은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자기 마음과 하는 게임 같은 것이 있다. 꽃잎을 한 장 한 장 떼어내며 ‘온다, 안 온다’ 점 쳐보는 일과 같은 것. 기다림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어떤 형태로든 해보았을 일일 것 같다.


EP. 02 경찰 633(양조위)과 패스트푸드 점원 페이(왕페이)의 만남


그리고 이어 시작되는 두 번째 에피소드.


매일 가는 패스트푸드점의 직원과 손님으로 경찰 633과 페이가 만난다. 이쪽 에피소드에서는 페이가 경찰 633에게 먼저 반하고, 우연히 얻게 된 그의 집 열쇠로 그의 집을 몰래 방문하며 하나하나 그의 집을 바꿔나가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면 Pick 01’  

몇 차례에 걸쳐 페이가 경찰 633 몰래 장을 보러 갔다 오는 길에 그가 집을 비운 시간을 틈 타 그의 집을 들어가 청소를 하는 장면이 있다. 페이의 행동은 당돌하며 발랄하고 순수하다. 하지만 처음에 나도 모르게 ‘이건 주거침입죄 아냐?’라는 생각이 들며 현실주의 감성 파괴자가 불쑥 튀어나와버렸다. 그 주거침입(?)한 주체가 여성이고 남자 주인공이 경찰이라서 조금 아름답게 이해될 수 있는 장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하는 사람이 내 집에 몰래 들어온 것이 아니어서도 가능했고(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누군가가 나 몰래 내 방에 들어와 내 물건을 만졌다고 생각하면. 으) 번호키 집이 아니라 열쇠 잠금장치인 집이라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고. 실지로 따라 하는 사람이 없기를. 영화는 영화일 뿐. <도어록>이라는 영화도 나온 마당에 공포감 조성해 신고당하기 딱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장면은 중경삼림에서 빠져선 안될 장면이고 나도 결국엔 사랑하게 된 씬이다.


장면 Pick 02’

경찰 633이 집에 돌아와 닳아있는 비누에게 ‘왜 이리 홀쭉해졌냐’, 젖어있는 걸레에게 ‘왜 눈물을 흘리냐’는 말을 건네는 장면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웃음 터지는 장면인 동시에 감독의 독특한 사상에 반했던 장면이다. ‘경찰 맞으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싶은 순간이다. 경찰이 이렇게 주변에 둔감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풉하게 되는 장면. 실연의 상처가 많이 컸구나 애잔하기도 했고. 아마 이 장면은 앞으로도 쭉 잊혀지기 힘든 장면 중 하나일 것 같다.



장면 Pick 03’(스포가 될 수도 있으려나)

둘의 만남이 성사될 것 같았지만 페이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둘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둘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패스트푸드점에서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동글동글 귀여운 선글라스에 단정한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페이가 닫힌 패스트푸드점의 셔터를 들어 올리며 들어온다.(왕페이여서 저 언발란스 패션이 가능했던 것 같다.) 다음 장면을 보지 않아도 둘이 어떻게 되었을지가 그려지는 엔딩이다. 돌고 돌아 만나는 인연에 이상하리만치 애정이 간다. 결국엔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사랑이나 재회하고 싶은 사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결국에는 해냈다 라는 대리 성취감이 작동되는 것인지.



왕가위 감독이 그리는 사랑의 변주곡

이 영화 이전에 먼저 본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들,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사랑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어 좋다. 누가 먼저 시작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고, 사랑의 승자와 패자도 없이 사랑이 시작되는 로맨틱함이 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왕가위 감독. 타이밍 그리고 시간의 소중함, 찰나의 소중함 만큼이나 동시에 우연과 사랑의 소중함도 함께 드러난다. 왕가위의 영화를 보면 이성보다는 감성에 많이 치우쳐진 영화들이 많다. 사랑에 이성이란 감정이 끼어드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공감이 많이 간다. 사랑에 이성보다는 감성이 작용해야 되는 게 맞지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예전 중국 근현대사 수업 중 영화 <첨밀밀>을 보여주며 교수님이 덧붙여 설명해주셨던 내용이 생각났다. 90년대 홍콩의 정체성.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홍콩의 모습. 이런 정신없는 홍콩 요지경 속, 그 혼돈 속에서 속속 틈틈이 사랑을 챙겨가는 모습이 참 이 영화에도 잘 드러나 있다.



오브제를 통해 만드는 비유

 #블루베리파이 #통조림 #비누 #금붕어


감정을 투영해 곳곳에 배치한 사물의 상징들이 좋다. 이렇게 왕가위 감독이 만들어내는 미장센이 좋다.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는 ‘블루베리 파이’와 ‘코인’ 이겠고, 이 영화에서는 ‘비누’와 ‘금붕어’, ‘통조림’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홍콩에 다시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가보면 지난 홍콩 여행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회를 느껴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인상이 없던 홍콩 여행이었기에 이 영화를 봤으니 '중경삼림'을 핑계 삼아 다시 꼭 홍콩에 가보아야겠다.



<♬California dreamin>

영화가 그리워질 때, 외로워질 때, 차 안에서 혼자 적막할 때 이따금씩 돌려 듣는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양조위와 왕페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운이 참 긴 영화다.


계속 돌려보고 싶은 영화를 꼽으라 한다면 꼭 이 영화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게 될 것 같고, 계속 돌려 듣고 싶은 음악을 꼽으라 하면, California dreamin 을 꼽게 될 것 같다.



+ 영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해보고 싶다면,

팟캐스트 2/12(화) MBC FM 영화음악 정은채입니다. - (필 소 굿 with 이은선 기자) 코너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시라는 주제로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중경삼림>의 두 영화를 소개해주는데, 각 영화의 배경 도시의 분위기와 더불어 영화들을 소개해준다. 이은선 기자의 풀이를 들으면 더욱더 이 영화가 좋아진다. 두 도시의 풍경을 떠올리며 또 다른 사색을 느껴볼 수 있다.


이은선 작가의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이 영화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었다는데, 이렇게나 잘 만들어졌다. 실력 있는 사람이 만드니 그냥 만들어도 잘 만들어지는 거지. 좋은 작품에 절대 우연이란 건 없는 것 같다. 바꿔 말해서 작품을 만들 때 실력 없이 운과 우연에 기대어 만드는 일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을 것 같다.


(팟캐스트 앱에서 무료로 다시 듣기가 가능하다. 물론 저작권의 문제로 어플로는 노래를 풀로 들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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