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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졍 Sep 15. 2019

영화 벌새, 2019

두서없는 영화 감상 기록



                              영화, 벌새




갑자기 툭 튀어나와버린 혹처럼, 마지막 영지의 대사에서 처럼,


“인생은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살아가며 원치 않는 이별을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도 있고,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 은희와 영지가 나누는 대화에서 어느 정도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엉켜있는 인간관계 안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나누는 교감에 대한 이야기와 삶의 반짝임에 대한 이야기가 넘실댄다.



세상에는 답답하고 갑갑한 일들 투성이고,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들이 정말 갑자기 들이닥치게 되는데,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거니와 이것으로 삶에 대한 끈을 놓지 말고 그래도 살아가 보자는 희망을 내보인다. 답답한 현실에 대한 분노나 들어주세요 하는 호소보다는 덤덤한 위로가 느껴지는 영화다.


언뜻언뜻 비치는 영지의 모습이 닮고 싶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롭고 연약한 듯 보이나 속이 꽉 차 단단하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의 모습. 싸워서 데면데면한 두 학생들 앞에서 수업 대신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 시의 노래를 덤덤하게 부르고, 뜨거워진 마음으로 찾아온 은희에게 무심한 듯 차를 내려주는 모습이 다른 어른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싸우고 온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을 보면서 나라면 그들에게 어떤 제스처를 취하고, 어떻게 그 분위기를 다듬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너나 할 것 없이 30대의 영지는 영지대로, 10대의 은희는 은희대로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는 그 시기의 고민과 짐을 지고 살아간다. 억눌린 채로 살아가지 않고, 답답함은 드러내 보이고, 저항하는 방법도 알아가며. 이별을 경험하며. 아프고 쓰라린 경험을 삼키며.



보기에 덜 매끄럽고 조금 서투른 기술적인 부분들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들 덕분에 많이 가려진 것 같다. (독립영화의 경우, 투자가 많지 않아 기술적인 수준을 높게 끌어내기 어렵다고..들은 것 같은데, 이런 영화들이 많이 많이 투자받으면 좋겠다.) 인물들의 감정 감정을 긴 러닝타임 안에 오롯이 담아냈고, 충분히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게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수작이다. 쏟아내고 싶은 이야기들이 수두룩하지만 여기까지.


(영화 막바지쯤 끝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었는데, 후련하게 (남 눈치 보느라) 펑펑 울지 못한 게 아쉽다.)




#두서없는영화감상기록 #벌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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