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딧쓴 Apr 11. 2022

어머니와 나는 다른 지구에 살고 있다.

각각의 경험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다르게 산다.  - L.P. 하틀리


어머니와 나의 스무 살은 달랐다. 어머니는 상고를 졸업해 바로 일을 시작하셨다. 삼 남매 중 첫째로 두 남동생은 모두 대학에 갔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대학에 진학했다. 형제가 없었기에 등록금도 생활비도 나 하나만 해결하면 되는 문제였다. 80년대에 사회 초년생이 된 스무 살의 어머니와, 2010년대에 대학생 새내기가 된 나의 스무 살. 다른 세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어머니와 나는 같은 2022년을 살고 있다. 나의 세상에는 부동산, 재테크, 메타버스, NFT, 프리 워커, 크리에이터가 가득하다. 어머니의 세상에는 쿠팡 체험단, 봄나물, 제철과일, 단풍, 잘 나가던 연예인 A 씨의 이혼 뉴스, 멀쩡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대학원에 간 철없는 아들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여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다.


우리는 종종 '시간은 연속된 것이며, 모두가 같은 속도의 흐름 속에 살고 있다'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에 한정했을 때에만 맞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2010년은 나의 2010년과 다른 곳이었다. 나의 5년 전과 어머니의 5년 전은 같은 2017년이겠지만 명백히 다른 세상이다.


11세기 어느 프랑스 농부가 잠이 들어 5백 년 후 깨어난다고 하자. 그는 콜럼버스가 이끄는 산타마리아 호의 선원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깼다. 그렇지만 그가 깨어난 세상은 매우 친숙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만일 콜럼버스의 선원 중 한 명이 같은 방식으로 잠에 빠졌다, 21세기 아이폰 벨소리에 잠을 깬다면 아마도 이렇게 자문할 것이다.

"여기는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인가?"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中


시대의 변화는 점차 가속되고 있다. 11세기 프랑스 농부는 500년 뒤에 깨어났어도 거진 비슷한 세상을 살았을 수 있지만, 산타마리아 호의 선원이 500년 뒤에 깨어난다면 다른 지구에 와있는 느낌일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약 30년의 텀을 가지고 이곳에 태어났지만, 산타마리아 선원의 500년만큼이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는 어떤가? 설령 같은 해에 태어났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다르다. 글을 쓰는 지금, 2022년 4월 11일, 봄바람이 부는 날 나는 강릉 앞바다를 보고 있지만 당신의 오늘은 다를 것이다. 나와 성별이 다르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욱 다를 것이고, 부모님의 재력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우리는 각기 저마다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맹인 각자가 동시에 경험한 코끼리는 모두 다른 모습이다. | 사진: 오마이뉴스, 김영명


우리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불과 300년 전의 사람들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악령이 씌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을 불에 태우거나 물에 던지는 것으로 악령을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대의 사람들은 범죄자가 '내 안에 악마가 있다.' 따위의 발언을 하면 맹렬한 비난을 쏟아낸다. 지금의 우리는 300년 전의 사람들이 멍청하거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에는 그것이 상식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연속선상에 있는 세상이라기보다, 다른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나는 약 30년의 공백을 갖고 태어났지만 일생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 그럼에도 어머니와 내가 사는 지구는 다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한 순간도 삶이 겹친 적 없지만 1년 터울로 태어난 당신과 나의 세계가 유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나와 같은 해 태어나고 20년을 함께 보낸 친구와 나의 세상 역시 다르다.


어머니는 나의 세계를, 나는 어머니의 세계를 경험할 수 없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그것은 당신과 나도, 20년을 함께 보낸 나의 친구와도 마찬가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은 애정에 기반한 너그러운 포용심일 수 있다.


출처: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갈등과 혐오가 넘치는 시대이다. 그래프의 상승세가 가파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로축을 잘 보면 마지막 단위는 2022년 상반기의 3개월이다. 2021년 전체와 2022년 3개월의 수치가 유사한 것이다. 서로가 너무나도 다른 사회를 살고 있게 된 것 같지만, 그건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너무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잊은 것이 문제다.


오늘도 어머니는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때로는 속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 섭섭하게 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세상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 싶다. 물론 나와 다른 세상을 산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세상을 조금 들여다본다면 애정으로 여길 수 있다.


경험한 삶이 다른 사람과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논리적인 설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세상에서 좋은 것을 전해주며, '이런 세상도 있다'라고 넌지시 알릴 뿐이다. 비비빅만 좋아하던 어머니에게 넌지시 건네는 아이스크림처럼.


엄마는 외계인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을 수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책으로 나오게 된 과정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해 죽겠는데 방 정리를 하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