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획자 에딧쓴 Apr 04. 2022

우울해 죽겠는데 방 정리를 하라고?

공간 경험으로 나 자신을 돌보는 법

우울에 대한 단골 처방이 몇 가지 있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 나가서 걷기, 감사일기, 그리고 방 정리.


극도의 우울로 집을 방치하기 시작하면 소위 '쓰레기집'이라고 불리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 사진: 네이트뉴스


밥조차 먹고 싶지 않은 우울에 빠져있는데 방 청소라니. 선뜻 이해되지 않기도 한다. 팀 페리스의 저서 <타이탄의 도구들>에는 세계의 거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이불 정리'라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의 이불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방 정리가 뭐길래, 이불 정리가 뭐길래 상담사도, 정신과 의사도, 세계적인 부자들도 이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아침에 일어나 이불 정리를 하면 작은 성취감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방 정리도 작은 성취감을 선사한다. 깨끗하게 정리된 방을 보면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조금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이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자기효능감이라고 한다. 자기효능감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병원에서도 작은 성취를 이룰 수 있는 미션을 주는 것이다.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은 일시적인 감정이다.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경험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공간 정리에는 다른 한 가지,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효과가 숨어있다. 정리된 공간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본인의 경험.


즉, 공간경험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 사진: 오늘의집


보기 좋게 정돈된 공간을 가장 많이 보게 되는 사람은 그 공간에 머무는 자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사용하는 이불과 방을 매일 보게 된다. 정리된 공간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대접받는 느낌'을 준다. 공간을 소중히 가꾸는 것은 그 공간을 사용하는 나를 가꾸는 일이다. 우울에 빠진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방치하기 시작하면, 머무는 공간을 관리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방치를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어질러진 방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에 빠진 사람에게 방을 정리하라고 하는 것이다. 방 정리는 자신에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공간경험을 긍정적인 경험으로 바꾸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다시 어지르지 않는 이상, 공간이 깔끔하게 유지되는 동안 계속해서 긍정적인 공간경험이 쌓이게 된다. 자신이 생활하는,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에서 계속해서 긍정적인 경험이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정서도 함께 누적된다. 정돈된 공간에서 경험되는 하루는 그렇지 않은 공간의 하루와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 되는 것이다.


공간경험이 강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긍정적 정서의 누적'에 있다.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아주 강력하지만 짧은 한 방, 그리고 소소하지만 꾸준한 지속. 우연히 만난 행운은 커다란 기쁨을 한 순간에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코트 주머니에서 발견한 잊고 있던 지폐, 에어팟 이벤트 당첨 등의 사건이 그렇다. 이것은 강력하지만, 일시적이다. 가끔 만나는 행운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여기에 의존하게 되면 나머지 순간이 상대적으로 시시하게 느껴진다. 행복의 그래프가 상승하고 난 뒤에는 평균으로 회귀하기 위해 그만큼 하락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순간의 쾌락에 과하게 집착하기 시작하면 중독이 시작된다. 도박 중독은 이러한 방식으로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지속되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소소하지만 꾸준한 기쁨으로 삶을 채워야 한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유행은 이러한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행복은 고군분투하여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한 순간의 강렬한 기쁨도 아니다. 계속해서 불행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감사일기는 이것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무기다. 자매품으로는 방 정리가 있다. 자신이 매일 경험하는 공간을 자신이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유지하는 것. 이것은 가장 빠르게 우울을 탈출하는 것을 넘어, 지속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반대로 어지럽고 더러운 공간에 머무르는 것은 계속해서 부정적인 정서를 누적시킨다. 자신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 이러한 느낌을 받으면 점점 더 공간을 관리하지 않게 된다. 우울의 악순환은 그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얼마나 챙기고 있는가? 당신 눈앞의 공간은 지금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잠시 눈을 들어 화면 너머의 공간을 둘러보자. 이 공간에 있는 자신이 마음에 든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혹시 눈에 들어오는 공간이 '스윗 홈'이 아니라 '집구석'으로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럴까' 생각하기 전에 몸을 먼저 움직여 공간을 정돈해보자. 상태가 심각하다면 대청소로 일을 벌여도 좋다. 묵은 먼지를 싹 털어내고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뒤 깨끗해진 방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우울하지 않고 행복하기,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 사진: 야나두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을 수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책으로 나오게 된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