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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딧쓴 Mar 25. 2022

그럼에도 나는 영화관에 간다

넷플릭스가 채워주지 못한 영화관의 빈자리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훌륭한 OTT 서비스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들이 들고 나오는 콘텐츠 역시 놓칠 수 없다. 자체 제작, 독점 콘텐츠들의 질은 날이 갈수록 훌륭해진다. 작년(2021) 영화관 관객수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15일 만에 550만 명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7월에 개봉한 <모가디슈>로 관객수는 360만 명에 그쳤다. 시청률이 떨어진 것은 TV 드라마와 예능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만큼 영화관을 찾지 않는다.


2020년은 문화콘텐츠 산업에게는 특히나 재앙과 같은 한 해였다. 모든 공연과 축제가 취소되었다. 영화관도 그 여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영화관은 극히 제한적으로 운영되었고, 심지어 한 명이 한 관을 차지할 수 있는 티켓도 판매됐었다. 비단 코로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많은 OTT 서비스가 등장하며 지나간 명작을 거실 소파에 누워 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혹자는 영화관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관에 간다. 


영화관을 전세 낼 수 있었던 CGV의 이벤트


사실 콘텐츠로만 본다면 넷플릭스의 압승이 맞다. 넷플릭스에서는 눈치 보며 화장실을 다녀올 필요가 없다. 잠시 멈춰 놓고 급한일을 처리한 뒤 이어서 볼 수도 있다. 내 취향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주고, 지나간 옛 명작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올라오는 영화나 시리즈의 완성도도 높다. 그에 비해 영화관은 개봉작 자체가 줄어들었다. 상영시간도 한정되어 있고, 대사를 놓쳐도 다시 들려주는 친절함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있음에도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 있다. 집에서 느끼기 힘든 타격감 있는 사운드,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더욱 실감 나게 해 줄 커다란 스크린. 여기까진 당연한 이야기다. 코로나 이후 영화관에서 주력해야 하는 경험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집에서도 최고급 헤드폰은 얼마든지 착용 가능하고, 고성능 빔프로젝터로 집에서 상영관 못지않은 화면을 즐기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은 총체적인 경험을 판다. 영화관에 들어서면 달콤한 캐러멜 팝콘 냄새가 가장 먼저 반겨준다. '영화관에 왔다'는 기분을 선물한다. 이것은 단순히 입맛을 돋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영화관에 가기 위해서는 보통 최소 4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동시간, 발권, 대기, 상영관 입장, 영화 관람, 퇴장의 모든 경험을 포함하면 4시간 이상의 여유가 되는 날에만 영화관을 찾을 수 있다. 모처럼 맞은 여유로운 날, '영화나 한 편 볼까' 하고 찾는 영화관에선 항상 달콤한 팝콘 냄새가 난다. 달콤한 팝콘 냄새는 휴일의 여유로움을 떠오르게 한다. 달콤함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함께, 휴일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관에는 같이 영화를 보는 다른 이들이 있다. 대부분 이들은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곤 하지만, 이따금 같이 웃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콘텐츠 감상 경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직도 TV 예능에서는 가상의 방청객 웃음소리를 넣고, 음악 프로그램은 관객의 리액션을 잡아준다. 타인의 존재는 콘텐츠 소비라는 혼자만의 경험을 타인과의 교감이라는 종합적인 경험으로 확장해준다. 물론, 타인의 존재가 경험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경험 상품에는 항상 이런 리스크가 존재한다. 사람이 많으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누군가의 벨소리에 몰입이 깨지게 될 수도 있다. 영화관에는 이런 의외성이 존재한다.


또한 소비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도착해야만 한다. 지나간 장면은 되감아 볼 수 없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현장감을 만들고 '지금 이 순간'을 유한한 자원으로 만든다. 인간은 무한함을 갈망하지만 오히려 유한한 것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조화보다 생화가 감동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유한한 것은 희소가치가 있다. 되돌려볼 수 있는 온라인 강의가 현장 강의보다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넷플릭스는 멈춰두거나 되감으면 그만인 콘텐츠 소비에 불과하지만, 영화관은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경험의 시간이다.


넷플릭스는 서비스를 팔고, 영화관은 경험을 판다.


이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영화관에 가는 이유다. 제 아무리 대단한 OTT 서비스가 등장해도 영화관이 망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관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자원인 '콘텐츠'에서는 넷플릭스에게 선두를 빼앗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 좋은 스크린, 더 좋은 사운드로는 더 이상 소비자를 묶어둘 수 없다.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을 수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책으로 나오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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