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가 제시하는 공간 경험의 미래
ETERNAL NATURE
(영원한 자연)
d'strict(디스트릭트)의 미디어아트 전시 <아르떼뮤지엄 강릉>의 이번 테마는 '시공간을 초월한 자연'이다. 본디 자연이란 영원하지 않다는 고유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귀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자연이라니.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공간은 현대 기술이기에 가능한 여러 작품을 보여준다. 휘황찬란한 디지털 기술로 그리고 있는 것은 자연이다. 한없이 디지털로 그려진 자연. 이 역시 어찌 보면 역설적인 조합이다. 그러나, 이 전시는 그것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기획자와 예술가는 공생관계다. 예술가가 사고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면, 그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기획자의 역할이다. 미디어아트는 그러한 전달 매개체의 일종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언어와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예술을 통해 전달한다. d'strict(디스트릭트)의 미디어아트 전시 ‘아르떼 뮤지엄 강릉’ 역시 디스트릭트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그 해석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의 관점에서, 아르떼 뮤지엄 강릉의 전시는 가상현실의 미래를 제시해주는 것으로 느껴졌다.
전시 구역은 WATERFALL, FLOWER, BEACH, GARDEN, STAR, WAVE, FOREST 등 자연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각 구역의 공간은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자연이다.
WATERFALL 구역에 가면 소리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힘찬 폭포수 소리에, 함께 방문한 지인에게 무언가 말하기 위해서는 실제 폭포 앞에 선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에 비해 물소리가 그치면 자연의 폭포 앞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고요함이 공간을 휘감는다. 둘의 대비로 인해, 실제 자연에서 느껴지는 웅장함과 미디어아트이기에 가능한 신비감이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그럼에도 다른 구역에서는 WATERFALL 구역의 폭포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THUNDER 공간의 찢어지는 천둥소리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차음 처리를 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 같은 경험은 청각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혹은 실재하기에는 지나치게 환상적으로 그려져서 머릿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비주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시각적인 경험을 리드하는 것은 단순히 정교한 그래픽만의 역할은 아니었다. 이들은 거울을 통해 공간감을 장악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거울을 사용하여 깊이감을 끝없이 확장한다. 자연만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광활한 공간감을 좁은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다.
각 구역은 저마다 다른 향을 풍겼다. 후각으로도 공간을 분할한 것이다. 굿즈샵에서는 각 공간의 이름이 붙은 디퓨저를 구매할 수 있다. 덕분에 참여자는 경험했던 전시 공간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된다. 전시 경험의 훌륭한 연장이었다. JUNGLE존에서는 직접 색칠한 동물 그림을 스캔하여 정글 속에서 뛰어놀도록 방생할 수 있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문자 그대로 전시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미디어아트가 시각과 청각 경험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해당 전시는 후각과 촉각을 넘어 공간감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한쪽 공간에서는 차를 마시며 도슨트를 듣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오감을 모두 만족시키고자 하는 시도로 느껴졌다.
전시는 어떤 면에서 실제 자연보다 나은 경험을 주기도 한다.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자연 속에 있었지만 춥거나 덥지 않았다. 바닷물에 들어갔으나 물에 젖거나 위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요소를 장점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단점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은 실제 경험이 주는 생생함과 긴장감을 전달하지 못한다.
현대의 가상현실(VR)은 시각과 청각에 한정되어 있다. 제 아무리 고도로 그래픽이 발달한들, 실제 경험이 주는 만큼의 감각을 느낄 수 없다. 생생한 촉감, 공간감, 유발되는 정서 등 공간에 대한 경험은 총체적인 자극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상현실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고글을 필요로 한다. 현장감 부족과 접속 매체(기기)의 불편함. 이 두 가지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가상현실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블랙미러가 제시한 방법은 관자놀이에 손톱만 한 기기를 부착하여 뇌에 직접적으로 자극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등장인물은 아주 작은 기기를 통해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아르떼뮤지엄 강릉의 공간은 디지털로 재현된 가상현실의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공간은 VR기기를 사용한 가상현실보다 많은 문제가 해결된 공간이었다. 가상현실에 접속하기 위한 별도의 기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단순한 시각과 청각 이외에 공간감까지 전달하고 있었다. 자연의 냄새는 아니지만 후각을 통해서도 공간을 느낄 수 있었으며, 가상공간만의 장점도 충분히 살려냈다.
디지털화된 현실에 대한 관심이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은 공간의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까? 저마다 가상현실의 미래에 대해 그리는 그림이 다르다. 안경 형태의 기기를 착용하는 방식, 머리에 칩셋을 부착하는 방식, 그리고 고도로 발달한 디스플레이로 공간을 도배하는 방식. 강릉에 있는 아르떼뮤지엄은 VR기기에 한정하여 가상현실의 미래를 그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는 가상현실의 미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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