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본질은 경험에 있다.
어떤 해결방안은 아주 멋지게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다. 반면 어떤 해결방안은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심지어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생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해결방안은 오히려 임시방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만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까다로운 해결책이 오히려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고생은 더 하는데 덜 완벽한 해결책이라니.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해결책을 만드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문제에 대한 정의가 명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느려 터진 것을 절대 참지 못한다. 설령 그것이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터는 편하고 빠르게 여러층간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장비다. 사람을 직접 실어 나르는 기계인만큼 안전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빠르게 움직이면 안에 있는 사람이 균형을 잃거나 내부의 무언가에 부딪혀 다칠 수 있다. 급발진과 급제동에 따른 에너지 소모도 클 것이고 멀미를 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여러모로, 엘리베이터는 지나치지 않은 수준에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그 지나치지 않은 수준에 대한 기준이 제각각인 것이 문제가 된다. '이거보다는 빨라도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꼭 몇 명씩 있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이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거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린 거 아니오!"
건물 관리 업체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는 민원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더 부드럽게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부드러운 제동을 위해서는 엘리베이터 소재의 무게가 가벼워야 한다.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안전하기 위해서는 동시 탑승 인원을 지금보다 더 제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1인당 평균 대기시간은 늘어날 수도 있다. 해결책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거울이었다. 내부 벽면에 거울을 설치하자 엘리베이터가 느리다는 민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안전하게 이동하는 동안, 탑승한 승객은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거울을 보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엘리베이터 이용객이 느끼는 문제의 본질은 '속도가 느리다'가 아니라 '이동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였던 것이다.
이동 시간이 지루하면 승객들은 엘리베이터가 느리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문제를 제기한다. 본질을 찾는 것은 이용객의 역할이 아니다.
여러 쇼핑 서비스가 사용 최적화를 위해 노력한다. 사용자 경험(UX)을 고려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로딩 속도를 빠르게 만들기 위해 트래픽 서버를 늘린다. 더 빠르게 물건을 찾을 수 있도록 추천 목록을 제공하고, 오늘 본 목록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저장해준다. 그렇게 해서 완벽한 사용성을 갖추는 것으로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소비자의 입장으로 들어가 보자. 쇼핑몰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매처를 결정하는데 가장 큰 요인을 미치는 것은 가격이다. 특정 브랜드의 상품을 원하거나 독점 판매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용성이 다소 불편해도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곳에서 구매가 일어난다.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성은 기존의 고객들에게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요소이다. 모객이 목적이라면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 사용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구매처를 결정하는 고객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레브잇은 이러한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이들은 빠른 배송과 편의에 초점을 맞춘 대기업들의 문제정의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유통구조 혁신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다. 그 결과 이들의 서비스 '올웨이즈'는 이례적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레브잇의 문제정의 방식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이들의 조직은 기능 단위가 아닌 문제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각자의 구성원은 자신이 해결해야 할 한 가지 문제를 할당받는다. 그리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보안, 개발, 디자인 등 기능적으로 접근하던 기존의 조직 구성을 벗어나 실제 소비자가 경험하는 문제를 기준으로 조직을 구성한 것이다. 고객을 모으기 위해 각각의 팀에서 UX를 적용하고 트래픽을 늘리는 대신, 모객이라는 문제를 할당받은 problem solver가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에 집중한다. 덕분에 레브잇의 문제정의는 철저히 소비자의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쇼핑몰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가격이 더 저렴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미 가장 저렴한 가격을 찾아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렴한 가격 때문에 선택은 했는데, 막상 사용하기 불편한 경우에 그제야 불만을 제기한다. 이 경우,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불만과 실제 소비자가 경험하는 문제의 본질 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이 제시하는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느리다'였지만, 실제 문제의 본질은 '지루함'이었다.
소비자 스스로도 자신이 겪는 불편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이때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기획자의 역할이다. 문제의 표면적인 형태 너머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서는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이 문제를 경험하는 방식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모든 것은 경험의 형태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기업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경험 상품의 영역은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을 상대로 무엇인가 제공하고 있다면, 사람과 경험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