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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자 에딧쓴 Jul 12. 2022

부장님은 왜 재택근무를 싫어할까?

비대면 환경에서도 함께 있는 것처럼 일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재택근무는 더 이상 프리랜서들만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제 끝이 보이지만, 코로나가 바꿔 놓은 일의 방식은 여전히 답을 찾는 중으로 보인다. 특히 리모트 워크, 워케이션, 디지털노마드 등 비대면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나만 없어 홈오피스 (오늘의집)


비대면 근무의 가장 첫 번째 과제는 생산성이었다. 우리는 출근을 하지 않고도 출근을 할 때와 같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무실에 모여 일을 하지 않으면 기존의 아웃풋을 내기 어렵지 않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협업 툴과 업무 프로세스의 발전이 있었고, 그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오히려 비대면 환경에서 오프라인 사무실 공간의 유지비를 아끼면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기업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기 무섭게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 모으는 회사들이 많다. 비대면 근무의 두 번째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대면 업무환경이 제대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 두 번째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비대면 근무의 두 번째 과제, 생산성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조직문화다.


비대면 환경에서는 사회적인 감각이 형성되기 어렵다.


우리는 만나지 않고도 기존의 조직문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유대감, 소속감, 연대감과 같은 사회적인 감각들은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그러나 비대면 환경에서는 이런 감각들을 느끼기가 어렵다. 대면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호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중에는 동료와 함께하는 흡연시간도,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 사적인 질문도, 회사 근처 맛집에서 함께하는 점심시간도 없다.


교류를 강제하는 것으로는 사회적인 감각이 형성되지 않는다. 직원들을 회사로 불러 회식자리에 앉히는 것으로 갑자기 유대감이 솟아날 리 없는 것처럼. 비대면 회식도 자발적이지 않다면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대면 환경과 사회적인 감각은 상관관계가 크지만, 사회적인 감각을 위해서 반드시 대면 환경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비대면 환경에서도 강력한 유대감을 느끼는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비대면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까? 심리적 안전감이나 여타 어려운 이야기들보다 쉽게 접근해볼 수 있는 예시가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강력한 유대감, 연대감, 조직력을 갖는 경우. 게임과 덕질이다.


역효과나 안 나면 다행인 회식 (인스타그램 @yangchikii)


소환사 협곡에는 공통의 목표와 협업의 경험이 있다.


우리는 게임 속에서 종종 동지애를 경험한다. 그것은 일면식도 없는 남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강력한 사회적인 감각이다. 게임에는 공통의 목표와 그것을 이루기 위한 협업의 경험이 있다. 보스를 사냥해야 하는 레이드 형태의 게임이든, 상대의 진영을 하나씩 함락시켜야 하는 (롤과 같은)AOS게임이든, 팀을 이룬 게이머들은 어떠한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가 상호 보완하며 힘을 합쳐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은 비대면 환경에서도 효과적으로 사회적인 감각을 느끼게 해 준다.


회사라는 조직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조직의 목표와 비전이 뚜렷하고 강력하게 제시된다면, 그리고 구성원들이 그것에 동의한다면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그 목표를 바라볼 수 있다. 장기적인 비전이든, 한 문장으로 정의된 아하 모먼트이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동료’로 느끼려면 우리는 같은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대표님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것은 쉽지 않다. 옆 자리 동료는 그저 승진해서 부장이 되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다. 앞자리 후배는 고객사의 클레임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목표일 수 있다. 각각의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목표가 다르다고 여기게 되면 ‘우리’라는 인식은 성립되기 어렵다.


다음, 우리는 제대로 협업하고 있을까? 같은 과정에 있는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 협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제안서를 쓰더라도 자료 조사를 한 사람과 제안서 초안을 잡은 사람, 제안서 내용을 쓴 사람, 디자인을 손본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일을 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에서 내가 맡은 분량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방식은 협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같이’ 일한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동시에(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자신의 일이 전체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속하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전체 그림을 함께 볼 수 있어야 내가 그리는 것이 잎인지 줄기인지 가지인지 열매인지 알 수 있다.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고 함께 협업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면, 대면인지 비대면인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게 된다. 그때 중요한 것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동지애를 느끼는 순간은 손발이 잘 맞아서 성공적으로 게임에서 승리했을 때다. 환상의 플레이를 했다면 패배 후에도 GG(Good Game)를 외칠 수야 있겠지만, 동지애가 가장 뜨겁게 불타오르는 순간은 함께 승리를 쟁취했을 때다.


더 나아가면, 같은 승리였어도 순탄하고 무난한 승리보다 어렵고 치열하게 쟁취한 승리가 더 짜릿한 법이다. 공동의 적이 있고, 함께 어려움을 겪어냈을 때 끈끈함은 배가된다. 그때가 되면 억지로 직원들을 모으지 않아도, 함께 승리의 축배를 들기 위해 직원들이 먼저 회식을 원하게 된다.


그리고, 함께 겪어야 할 것은 보스 레이드뿐만이 아니다.


최애가 같다고? 우리는 동료다.


덕질의 위상이 드높아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분야에 심취하여 그것을 파고드는 일을 덕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덕질 중에서도 가장 조직력을 갖춘 덕질은 아이돌 덕질이다. 그들의 동지애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공연장이다. 그러나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웠던 지난 2년 동안에도 아이돌 팬덤의 동지애는 죽지 않았다. 최애를 괴롭게 하는 소속사에게 함께 화를 내거나, 최애가 힘들어 보이면 함께 슬퍼했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공연 소식에 같이 기뻐하기도 한다. 같은 대상을 좋아하고, 같은 대상에게서 같은 종류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은 같은 정서를 공유한다. 


비대면 환경의 조직에서는 정서를 공유하기 어렵다. 각자의 환경에서 각자의 정서로 일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는 각기 다른 정서를 느낀다. 함께 기뻐하는 것도, 함께 화를 내는 것도, 함께 아쉬워하는 것도 함께 있을 때만큼 강력하게 느끼기 힘들다. 누군가는 혼자 있는 자취방에서 일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아이가 울고 있는 집에서 일하고, 누군가는 부모님이 청소하고 계시는 집에서 일한다.


함께하는 웃참도 없다 (MBC)


비대면 환경에서도 구성원들에게 사회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공유하는 정서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것은 긍정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우리가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전 국민이 하나가 되는 올림픽과 월드컵 기간.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소리 질렀다.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것은 유대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라인으로라도 회식을 진행하든, 메타버스 오피스에 출근을 하도록 하든, 표면적인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으로 문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구성원 개개인의 경험적인 측면을 깊게 고려해야 한다. 직원들이 재택을 선호하는 것을 단지 ‘편하게 놀면서 일하고 싶어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진짜 이유는 사무실에 가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출근하고 싶은 회사는 출근하지 않아도 조직력이 강한 회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났다. 우리는 다시 사무실에 나가야만 할까? 직원들을 사무실로 출근시켜야만 할까?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일까?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은 이유가 될 수 없다. ‘부장님이 원하기 때문’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이후는 리턴이 아닌 뉴노멀로 불린다. 코로나라는 경험을 한 우리는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위 글은 책 <당신의 경험을 사겠습니다>의 초고입니다.

책이 출간되면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을 수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책으로 나오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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