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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딧쓴 Dec 08. 2023

사용성 글쓰기, 브랜딩 글쓰기, 돈이 되는 글쓰기

UX라이팅이라는 단어 자체가 UX라이팅 하지 않아..

정말 오랜만에 쓰는 글입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면 항상 느껴지는 기묘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마치 짠! 하고 화려한 복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누가 들으면 분명히 우스울만한 부담이지요. 사실 제가 오랜만이라고 쓰지 않으면 오랜만에 업로드된 글이라는 것을 눈치챌 사람은 얼마 없거든요.


글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문장의 표현을 다듬기 이전에, 언어화 자체가 이미 어떤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감각이 아주 예민해야 된다고 봅니다. 글을 통해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게 하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거든요. '분홍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세요.'가 불가능한 것처럼요. 그래서 사람에 대해 예민할수록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심리학과 경험에 대한 이해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사용성 글쓰기: UX라이팅 하지 않은 UX라이팅


UX라이팅 하고 있지 않아


그런 면에서, UX라이팅이라는 단어 자체가 참 UX라이팅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UX라이팅이라는 일을 한다고 소개한 뒤에,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된 적이 별로 없거든요.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입니다. 듣는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요, 추가로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러모로 좋지 않네요.


제가 생각하는 UX라이팅은 사용성 글쓰기입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가 사용성이거든요. 사용성이라는 표현도 조금 설명이 필요해 보이네요. 쉽게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알아듣게 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읽는 사람입니다. '짧게 쓰세요, 한 문장에 한 내용만 담으세요, 극존칭을 쓰지 마세요' 같은 기술들은 그다음이지요. 읽는 사람이 지도교수님이라면 쉬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보다 이 내용이 누구의 어떤 연구를 참고했는지, 어떤 검증법을 사용했는지 그 전공에서 쓰는 단어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연구자는 그래야 알아듣기 쉽거든요.


읽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알아듣게 쓸 수 있다면 그다음은 읽히는 글인지가 중요해집니다. 알아는 듣겠는데, 읽기 짜증 나는 글들이 있잖아요. 번역이 엉망인 번역서라거나, 요리 순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레시피북 같이요. 표현상의 유려함은 그다음입니다.


이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글이 오랜만이라고 했는데, 그 사이에 크몽에서 몇 건의 의뢰를 받았었거든요. 이래저래 퀄리티에 욕심부리다 보니 글을 쓸 시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표현을 다듬고 싶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표현을 다듬기 이전에 해당 맥락에서 읽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인지 판단이 우선입니다. 그러다 보면 표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 써야 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브랜딩 글쓰기: 이것은 UX라이팅인가 카피라이팅인가


우리 서비스만의 글쓰기, 분위기, 톤 앤 매너에 대한 니즈가 정말 정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브랜드, 대기업 할 것 없이요. 이제 단순히 알아듣게 쓰는 영역은 다들 정복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머지않아 AI로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단계가 되면 UX라이팅은 이제 사용성 글쓰기를 넘어 브랜딩 글쓰기가 됩니다. 글을 통해 어떤 뉘앙스를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우리의 브랜드 정체성을 포함하고, 표현하길 바라는 것이지요. 사실 이렇게 되면 카피라이팅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아요. 특정한 향을 입히려다 보면 무난히 정제된 글과는 다른 요소들을 더해야 하기 마련이거든요.


쉬워 보여도 이런 게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예..


개인적으로는 기생충의 위 장면을 자주 떠올립니다. 극 중에서 송강호 님은 자신을 '운전을 잘하는 기사'로 소개하지 않았거든요. 대신 회장님(이선균 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속 시끄러우실 텐데.." 하면서 조용히 네비를 끄면서요. 그리고 소개는 '고독한 남자의 아침을 함께 여는 길동무' 정도로 표현합니다.


일단 달라서 기억에 남았을 겁니다. 특히 작은 브랜드에게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정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아야 합니다. 단순히 사용성만을 고려한다면 '내가 얼마나 운전경력이 있고, 차량 관리를 얼마나 잘한다'를 어필했을 겁니다. 그게 '정석'이니까요.


지금은 마치 UX라이팅의 정석처럼 되어버린 '~해요'체도 토스가 사용할 땐 다른 금융앱과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토스만의 글쓰기로 느껴졌고요. 지금은 아닙니다. 너무 많은 서비스가 '~해요'체를 사용하다 보니, 그것만으로는 개성을 드러내기 어려워졌습니다. 당근처럼 "~습니당!" 정도를 쓰지 않고서는 다르게 쓰기 어렵기도 하고요. 저도 항상 고민이 되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표현적인 특징보다는 느껴지는 뉘앙스의 통일감에 집중해보기도 하고요.


어김없이 등장하는 토스


토스의 요즘 라이팅은 이런 식인 것 같더라고요. '~하고 ~하기', '~하는 ~하기'처럼, 행동과 이득을 동시에 말해줍니다. 사용성은 사용성대로 챙기면서, 형식 자체로 브랜딩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미션 하러 가기], [포인트 받기]보다 길이는 길어졌지만요. 토스의 '잡초제거'는 유명한 원칙이잖아요. 군더더기를 덜어내서 최대한 간결하게 쓴다는 내용으로요. 길이가 길어도 군더더기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유혹하는 글쓰기의 최소 단위를 행동과 이득 두 가지로 보는 것 같습니다.



UX라이팅은 돈이 될까?


이 필드에서는 갑론을박이 정말 많은 주제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돈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마이너스를 감소시키는 것이지 어마어마한 플러스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어요. "버튼명을 바꾸었더니 전환율이 늘어났다."고 한다면, 접속했다가 그냥 나가는 사람의 비율이 줄어서 결과적으로 매출이 상승한 것이지, 접속자 자체가 늘어난 것은 아니니까요. '벌지 못할 뻔한 돈을 놓치지 않게 해 주었다'의 역할 정도로 보는 겁니다. UX라이팅이 잘 되었다는 이유로 선택받는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토스가 단순히 글쓰기만 잘해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글쓰기는 돈이 된다고 봅니다. 단순히 '전자책 만들어서 팔아라', 혹은 'UX라이팅 개선 작업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요, 글쓰기라는 영역 자체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물론, 제가 관심이 많은 주제다 보니 알고리즘 추천들 때문에 그렇게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긴 합니다. :D..


예전에도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콘텐츠는 많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분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전의 글쓰기가 보고서, 자기소개서, 소통과 관련된 표현적인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글의 역할 자체가 더 중심을 차지하게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이미지 기반의 SNS였던 인스타그램이 텍스트 기반의 SNS를 새로 출시하는 식으로요. 쓰레드가 인스타그램만큼 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와 쓰레드의 출범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다고 보거든요. 뉴스레터와 텍스트 기반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의 수도 늘어나고, 이용자도 증가하는 것 같고요. 생성형 AI가 앵간한 텍스트를 다 써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프롬프트를 글로 입력해주어야 하고요. 자연어처리가 가능해진 것이 어찌 보면 축복이기도 하지요. UX라이팅이라는 분야의 유행(?)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윗 문단은 데이터 기반으로 검증된 생각은 아니고요, 그저 제가 요즘 느끼는 뉘앙스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일부러 과감하게 주장해 봤어요. 요즘 집중해보고 있는 영역이 뉘앙스라서요.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글쓰기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독자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기반으로 하는 글쓰기 능력이요.


광고비를 목적으로 한 애드센스 블로그도 운영해 보았고, 여전히 특정 시즌이 되면 방문자가 늘어나고 있긴 한데요. 시험 삼아 한 달 하고 말았다 보니 유의미한 수입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제 검색 기반의 유입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기도 하고요. 네이버도 구글도, 검색 결과를 AI가 요약해주다 보니, SEO(검색엔진 최적화)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검색에 걸리도록 하는 글쓰기는 더 이상 돈이 되는 글쓰기가 아니게 되고 있어요.


거의 죽어가는 그 블로그에는 댓글이 거의 없기도 한데요. 저만해도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으러 들어간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요. 그 와중에 딱 하나 있는 댓글이, 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벌써 3년이나 지났었군요


위로가 된다는 저 표현 때문에 오히려 제가 위로를 많이 받았었거든요. 당시에는 검색 키워드 잡겠다고 해놓고, 쓰다 보니 한 주제로만 글을 쓰게 되었는데요. 이럴 거면 퍼스널 브랜딩을 해보자 싶어서 애드센스 블로그는 방치하게 되었지요.


저분이 얻어간 것은 글의 내용일지 몰라도, 위로를 받은 부분은 글의 뉘앙스였을 겁니다. '좋은 정보를 전달했다'보다는 '글을 통해 위로를 전했다'라는 부분이 저에게도 만족감이 크더라고요. 표현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한 글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글인 것 같기도 합니다.


UX라이팅도 그 부분에 집중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돈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것보다는, 소비자(사용자)와 어떤 정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요. 그 부분에서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단기적인 매출 상승도 좋지만, 장기적인 브랜딩을 고려해 보자는 것이지요. 단기적인 매출 상승에는 다크패턴만 한 게 없을 겁니다. 일종의 약물도핑이라고 생각해요. 다크패턴의 약발이 끝나면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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