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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딧쓴 May 24. 2024

글쓴이의 개성이 묻어나는 글에 대하여

정작 나도 못하는 걸 가지고 머선 브랜딩을 하겠다고 깝쳤는지 자백하는 글

능이버섯 챌린지


살면서 가장 신나게 일했던 사무국 팀장님의 초대로, 오늘은 패스트 파이브 라운지에서 일해볼 수 있었다. 

미뤄둔 숙제 같은 것들을 쳐내고 To do리스트 목록을 모두 체크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브런치를 열고 있었다.

어감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했으니, 늘 그래왔듯 초반 스퍼트로 매일 써야 한다는 일종의 나 혼자 챌린지였다.

그렇게 브런치의 빈 화면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보며 3시간가량 멍을 때렸다.


나는 멈춰있었지만 시간은 멈춰주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멍 때리기보다는 명상에 가까웠다.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떠다녔을 터.

이게 될까? 안 되겠지? 안될 거야 아마.
그럼 뭐 먹고살지?
아냐 그래도 책도 내봤잖아, 나름 성과 봤잖아.
그럼 뭐 해 주제가 바뀌었잖아.
이게 피벗이냐 도망이지.
디지털 풍화가 됐을 정도로 오래됐구나 이 짤이

머릿속을 표류하다 흘러가는 생각들이 죄다 부정적인 것 밖에 없었다. 

괜히 울적해져서 운동이라도 하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밖을 나와보니 하루종일 에어컨 때문에 추웠던 게 아니라 그냥 날이 좀 서늘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날이 선선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괜히 내가 멍청해서 얇게 입고 나온 것 같았다.


나는 틱톡 챌린지를 끝까지 버티고 볼 수 없는 뒤떨어진 기획자다.

항마력이 떨어진다는, 우리 세대 사람들만 쓰는 표현으로 변명해 왔었다.

근데 내가 사는 매일이 챌린지였다.

능이버섯 챌린지.


#능이버섯챌린지 #MZ #어른이니까..☆



#피지컬 메모리


요즘 하는 운동은 권투다. 줄넘기를 하는 동안 뇌를 비울 수 있어서 좋다.

웜업을 하고 샌드백을 치는데 어퍼컷 동작이 잘 안 나왔다.

가드 자세에서 주먹이 곧장 위로 뻗어야 하는데, 자꾸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가 워류겐처럼 포물선을 그렸다.


점프는 안 했다.


코치님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이리저리 동작을 시켜보더니 바로 솔루션을 주셨다.

"주먹을 치켜올리지 말고, 팔꿈치를 든다는 생각으로 해보세요."

바로 자세가 좋아졌다.


"급하게 하지 말고, 거울 앞에서 천천히 동작부터 익힌 다음에 다시 샌드백 때려보세요.

피지컬 메모리에 제대로 된 동작을 새겨야 돼, 딱."

코치해 주신 대로 연습하니 내가 보기에도 동작이 간결해졌다.


사실 코치님이 말씀하신 기억의 정확한 이름은 피지컬 메모리가 아니라 머슬 메모리다.

코치님이 전공자가 아닌 이상 머슬 메모리에 대해서는 아마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전공지식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적어도 머슬 메모리를 언제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코치님이 훨씬 전문가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오다가 한 글자도 쓰지 못한 백지의 브런치가 생각났다.

브런치도 어퍼컷 쳐올리듯이 쓰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어퍼컷을 치는 방법일 텐데, 머슬 메모리만 주구장창 설명하고 있지 않았나?

그거 알아봐야 이쁘게 어퍼컷이 나오는 게 아닌데.



팥 없는 붕어빵, 앙금 없는 찐빵


나는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하고, 문외한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할 줄 안다.

UX라이팅도, 진술분석도, 글쓰기도, 심리학도, 마케팅도, 기획도, 죄다 그렇다.

이것 저것 건드려보는 성격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도 그랬다.

전문가로 포지셔닝하는 건 '대기업 12년 차 헤드 디렉터' 같은 멋진 분들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고,

나는 '변방에 조금 모자라 보이지만 쟤 만의 관점이 있는 녀석'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전문가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 같다.


일하면서 읽었던 글, 참고했던 글들이 모두 설명의 형식을 갖췄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무언가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같은 글을 써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이 갇혀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그걸로 무언가 해보려면,

에세이틱 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머슬 메모리에 없는 글쓰기가 될 리 없었다.


어영부영 첫 챗을 내고 난 뒤, 단정적인 어조 때문인가 싶어 문체를 "~이다"에서 "~입니다"로 바꿨었다.

누구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문체로 바꾸니 글은 훨씬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하지만 설명충인 내 본능이 꿈틀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말을 건다는 것은 곧 설명이었다.


나는 '퍼스널 브랜딩 하는 사람'으로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게 싫었다.

'유명한 걸로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분이었다. 왠지 팥 없는 붕어빵이 될 것 같은 찜찜함.


하지만 그게 싫다고 해서 내가 퍼스널 브랜딩을 하려는 사람이 아닌 건 아니었다.

사실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하기도 민망하고, 그냥 온라인에서 무언가 해보려고 끄적대는 사람.

좋든 싫든 그건 사실이었다. 변하지 않는 사실.


왜 갑자기 얘만 왼쪽 정렬이 되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는 '텍스트로 퍼스널 브랜딩 하는 SNS 전문가!'라는 걸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실제 내 모습을 감추려다 보니 스스로 느껴왔던, 그래서 글에 묻어났던 이질감을 해결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껏 안 하던 이런 방식으로 글을 써보고 있다.


이게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방식의, 그나마 에세이스러운 글이려나? 하는 기대로.



아직도 우려먹는 5년 전 유럽여행


5년 전에 혼자 유럽 여행을 갔었다.

혼자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었고, 아무도 일정이 맞지 않아서 혼자 갔다.

이러다 못 가겠다 싶어서 출국 5일 전에 충동적으로 비행기 티켓팅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의 가장 큰 적은 심심함이었다.

새롭고 낯선 풍경을 보면서 같이 호들갑 떨고 같이 추억할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수다도 떨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에 잘하지도 않던 인스타에 매일 여행 기록을 남겼다.

친절하게 남기기는 또 귀찮아서 지금 이 글처럼 대충 읊조렸었다.


아직도 그 글은 가끔씩 되새김질을 한다.

그 글을 보면 여행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쓰면서도 재미있었고, 그래서 읽으면서도 재미있다.

그런데 이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책도 사서 봐주고 내 글도 많이 읽어봤을 여자친구가,

그 여행 글이 본인이 봤던 내 모든 글 중에 제일 재미있다고 했다.(5년 전에 쓴건데...?)


당시에도 재미있다고 계속 올려달라는 지인들이 많았다.

내가 쓰면서 재미있는 글이 반응도 제일 좋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주절주절 말이 엄청 많았다.


쓸데없이 공들인 모자이크


지금도 이 주절주절 말 길어지는 것 때문에 에딧쓴 인스타도 못하는 중이다.

이거 고치는 법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코치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결국 최고의 어감은 글쓴이의 분위기 인가보다. 파고들면 글을 당시의 분위기.

정답이 있는 글이 아니라면, 글을 쓸 때 쓰는 사람이 편하면 글쓴이의 개성이 가장 많이 묻어난다.

약간 시니컬하고 염세적이면서 까불거리고 싶어 하는 듯한 이 글이

가장 내 실제 성격이 많이 반영된 글이 된 것 같다.


힘 빼고 편하게 쓰기, 에세이스럽게 쓰기는 얼추 성공인 것 같은데,

솔직히 지금까지의 글이랑 결이 완전히 다른 이런 글을 발행해도 되는지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여진다.

그래도 해야겠지 나아가려면.


이런 식으로 글을 쌓아서 글밥을 먹게 될 수나 있을런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치만 어감 얘기하면서 내 개성조차 내 글에 못 묻히는 것 보다야 낫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내일 보고 아니다 싶으면 지우면 되니까..!


사실 대다수의 글이 이렇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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