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서점에서 읽어낸 생각을 공유합니다.
시험관 속 뇌 이야기를 아시나요?
우리 뇌는 전기자극으로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시험관 속 배양액에 살아있는 뇌를 이식하고
생체신호와 유사한 전기자극을 주면 뇌는 살아있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자각이 없다면 시험관 속 뇌도 우리와 동일하게 삶을 경험할 겁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그런 실험실 상황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나요?
라는 디스토피아스러운 가정입니다.
만일 제가 저 상황이라면 저는 시험관이 아니라 만두 찜기 속에 있나 봅니다.
너무 덥고 습하네요. 더위를 많이 타는 찐만두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요즘 손에 쥐고 있는 고민은 "뭐 해 먹고살지?"입니다.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살고 싶은지 고민하다 보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까지 고민이 이어지더라고요.
답이 없는 문제에 고민만 너무 깊어지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동력과 관련된 고민이다 보니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일을 관두고 그냥 쉬는 청년들이 4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때보다 더 하다고 하네요.
청년 중 한 사람으로서 말해보자면, 이들이 정말 '그냥' 쉬고 있지는 못할 겁니다.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400만 명이 모두 일을 안 해도 생계가 유지되는 상태는 아닐 거라고 봅니다.
저번 글에서, 이럴 때 서점을 간다고 말씀드렸었죠.
7월의 서점에서는 그런 고민들이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는데, 사진을 캐러셀 슬라이드 형식으로 넣을 수가 없네요..?
여러 장의 사진을 넘기면서 볼 수 있도록 넣으려 했는데 절망적입니다.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셔도 브런치 에디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제 눈이 오래 머무는 곳은 인문/자기 계발 영역입니다.
경제 코너는 '돈 버는 법' 책들이 쉽게 내려가지 않아서 늘 비슷하더라고요.
서점에서 책을 찾는 분들은 대부분 입문자들이고, 그 입문자들이 블로그에 추천을 하면
다른 입문자들이 같은 책을 사서 그렇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제 눈에 들어온 키워드는 세월, 소통, 습관 세 개였어요.
세월
교보 에세이 1위인 <허송세월>에 이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진짜 나를 찾아라>, <시한부>가 눈에 띄었고, 이어 인문 1위인 <초역 부처의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문에 가장 많이 보이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은 차갑고 날카로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와 대비되는 부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이 1위에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어요.
불교의 명상, 수행과 같은 요소들이 리추얼, 인센스, 내면성장 같은 키워드와 만나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느낍니다.
영풍 베스트셀러인 <인생의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와 <제철 행복>,
<마인드 박스>도 비슷한 뉘앙스로 보였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금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저만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내심 반가웠습니다.
소통
<말하기 수업>, <어른의 말습관>, <이렇게 소통하면 모두 내 편이 된다>, <1분 말하기 기술>
<대화의 힘>, <말하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대화와 관련된 책이 많이 보였습니다.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타인과의 소통이 꽤 많이 줄어들거든요.
만나던 친구만 만나게 되고, 며칠씩 누굴 만나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다른 연령층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청년층은 분명 소통이 줄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온라인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댓글 소통 말고, 인친들과의 갓생 소통 말고,
실제 사람과 음성언어로 하는 소통이요.
소통, 대화법과 관련된 책이 많이 보이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졌어요.
다들 소통이 끊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 대한 걱정,
그리고 다시 소통이 재개되었을때의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습관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결정하는 습관>, <어른의 말습관>,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신자산가의 인생 습관> 등 습관을 주제로 한 책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회사를 다니던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하루 루틴이거든요.
매일 일어나던 습관, 같은 시간에 밥을 먹던 습관, 퇴근 후 운동을 하던 습관 등,
습관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하루가 망가진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저도 제 생활 습관을 돌아보고 루틴을 정하려고 애쓰던 참이어서 그런지,
습관에 대한 책들도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불안을 이기는 심리학>이 위 이야기들의 종착지가 아니었을까요?
세월, 소통, 습관, 불안, 대화, 피로, 소모..
눈에 들어오는 키워드들은 전반적으로 나를 지키기 위한 요소들로 느껴졌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둘러보면서 역시 알고리즘에 갇혀있었다는 것 또한 체감하기도 했습니다.
선재업고튀어가 인기인건 알았지만, 대본집이 1위를 할 정도인 줄은 몰랐거든요.
마찬가지로 유시민 작가님이 책을 낸 줄도 몰랐습니다.
이런 알고리즘에 갇혀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필터월드>라는 책도 있더라고요.
완전히 좁은 타겟을 노리는 제목과 넓은 타겟을 노리는 제목이 극명히 대비되는 것 같았습니다.
왼쪽의 책은 '걱정이 많아서 걱정인 당신'이라는 명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오른쪽의 책은 '성숙한 어른'이라는 비교적 큰 집단을 지칭합니다.
넓은 타겟팅과 많은 노출로 인지도를 노리는 책과,
뾰족한 대상을 노리는 책은 제목에서 명확히 구분됩니다.
<캔바로 크리에이터 및 N잡러 되기>, <우리는 왜 더 이상 껌을 씹지 않을까>,
같은 제목의 문장들은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반면,
<환상 상품>, <위대한 탈출> 등은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하기 쉽지 않지요.
개인적으로는 생생한 느낌의 문장을 사용한 책 제목들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준비 중인 제 책에도 반영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좌상단 사진처럼 벽면을 같은 책으로 가득 채우면 눈이 갔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광고 느낌이 너무 들다 보니 호감이 가거나 펼쳐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노출이 먼저인지, 전환이 먼저인지, 전략에 따라 다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소설 <테라피스트>도 눈에 들어왔지만, 인스타에서 광고를 너무 많이 봐 버린 탓인지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데 이미 본 책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또 완전히 뇌피셜입니다만,
일본의 에세이들이 특히나 개인적인 맥락을 섬세하게 다룬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반면 서양의 에세이들은 좀 더 일반 명사로 묶어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가장 눈에 들어오는 책은 역시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였습니다.
표지 일러스트도 귀엽지만, 일단 내 얘기 같잖아요.
이미 인스타에서 광고를 보고 담아두었던 책인데, 자기 계발 1위에 올라있더라고요.
단순히 '캔바 사용법' 같은 책들이 팔리던 시대는 지난 것 같습니다.
방법론들은 너무나 빠르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기 때문에
방법론을 팔기 위해서는 더 뾰족하게 집어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몰입의 기술>이라는 책도 발견했습니다.
몰입하면 황농문 교수님이 떠오르는데, 기술이 붙으니 조금 더 실전 느낌이 났지요.
실용적이고 바로 적용 가능한 것들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변호사분이 쓴 책이었거든요. 몰입에 대한 심리학적인 전문가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몰입을 통해 성과를 낸 분으로 보였지요.
전문가의 이야기도 좋지만, 생생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 하는 시대인가 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은연중에 책은 1차 저작물이라고만 생각했더라고요.
책이 먼저 나오면, 원작을 중심으로 영화화나 드라마가 되는 것으로요.
교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인 <선재 업고 튀어>부터가 반례였네요.
찾아보니 드라마는 웹툰이 원작이라고 합니다.
웹툰 > 드라마 > 책(대본집) 순서로 3차 창작이 되었나 봅니다.
예전에 만화 <원피스>를 통해 리더십을 설명하는 책도 본 적이 있었어요.
재미있는 조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귀멸의 칼날>과 <짱구>도 발견했습니다.
<멀쩡한 어른 되긴 글렀군>에는 짱구 만화 일부도 들어가던데, 저작권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이미 유명한 콘텐츠와 엮는 것 만으로 꽤 흥미로워 보이는 이야기가 탄생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베르나르의 에세이라니.
상상해 본 적도 없지만, 그래서 더 눈이 갔습니다.
'사람'의 유명세를 활용하는 책도 많더라고요.
충주시 김선태 주무관님의 <홍보의 신>, 오사카 사는 사람들 tv 마츠다 님의 <마츠다 리스트>처럼요.
이 경우에는 저자의 이미지가 책의 내용을 예상하는 근거가 되더라고요.
가끔 저자가 유명하지 않다면,
추천사를 써준 유명인들의 이미지가 책의 내용 예상에 영향을 많이 미쳤습니다.
영풍문고와 교보문고 두 곳을 다녀왔는데요,
두 서점의 공간경험에 차이가 많이 느껴졌습니다.
일단 입구에서부터 교보문고는 아래 같은 웰컴존이 있지요.
영풍은 특별히 웰컴존이라고 할만한 공간은 발견하지 못했고요.
교보는 들어가자마자 교보에 왔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원목 우드톤의 인테리어, 교보 특유의 향, 시선을 끄는 책과 보드게임 서가 등.
반면 영풍문고는 갔던 매장마다 분위기가 크게 달랐던 것 같아요.
사당점, 가산디지털점, 종각점 모두 느낌이 달라서
특별히 '영풍의 분위기'라고 할만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두 브랜드 모두 문구류를 같이 팔고 있기는 하지만
교보는 저자 사인회뿐만 아니라 팝업스토어까지 다양한 행사를 하려는 것이 느껴집니다.
교보의 베스트셀러는 강남점의 중심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분야와 순위가 명확하게 안내되어 있고요.
반면 영풍의 베스트셀러는 다소 광고판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누워있는 매대 역시 베스트셀러라고 적혀있어서,
어느 쪽이 신뢰할만한 데이터인지는 알기 어려웠지요.
그리고 이번에 발견한 사실인데,
교보 매대 서가에는 서브카피가 붙어있더라고요?
처음 알았습니다. 오프라인 UX라이팅은 찾을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았는데 반가웠습니다.
누가 썼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영풍의 팻말은 소비자가 여기가 몇 번 구역인지 찾기 쉬운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습니다.
검색해서 찾아가는 손님은 영풍의 팻말이 더 반가울 것이고,
저처럼 둘러보는 사람은 교보의 팻말이 더 편하고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온라인을 두고 굳이 오프라인 서점을 찾는 이유는 '둘러보고 싶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교보의 UX에 한 표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에세이라는 구분과 비소설이라는 구분이 눈에 들어오지 않나요?
분류를 나누는 방식도 차이를 보였는데, 이게 서점 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역사와 심리학은 어쩌다가 한 곳에 묶였을까요?(여기도 베스트셀러네요)
스크롤이 너무 길어져서 사진은 첨부하지 않았지만,
서가를 활용하는 방식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에서도
두 서점의 공간은 많은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특히 신기했던 점도 하나 있었어요.
책을 표지방향으로 올려놓을 경우, 펼쳐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저렇게 표지가 벌어집니다.
보기 안 좋지만 많은 사람이 오가다 보면 피하기 어려운 모습이기도 하죠.
신기한 점은 교보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계속해서 관리를 하는 걸까요?
원래 이 아래는 '기타 발견한 책들'이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구매는 하지 않았지만 표지만 찍어온 책들도 한 무더기지요.
하지만 이미 글이 너무 길어졌고, 너무 잡상이기에 생략해 버렸습니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길어질 줄은 몰랐거든요. 하하
월간이라고 이름 지어놨는데, 다음 달의 서점이 크게 다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벌써 됩니다.
매월마다 책 리스트가 확확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제 고민도 마찬가지고요.
역시 생각하는 것과 해보는 것은 다른가 봅니다.
서점 산책은 한 번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달에 서점을 다녀와봐야 알 것 같습니다. 슬프지만요.
이 글에서 이래 저래 둘러본 책들이 통계적인 트렌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제 눈에 들어오는 책들을 임의로 잡았으니까요.
어쩌면 서점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렇게 서점을 둘러보고 결국엔 발견한 책이 아닌 찾아낸 책을 읽고 있는데요.
늘 많은 아이디어를 주시는 촉촉한 마케터님의 신간 <능동적 아웃풋>입니다.
마침 아웃풋을 하아아안참 고민하던 차에,
마치 지금 딱 필요할 줄 알았다는 듯이 책이 나왔더라고요.
저는 한 달에 한 번 쓰는 글도 어려운데
어떻게 주 2회씩 그렇게 양질의 레터를 보내주시는지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